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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기쁨이 가득히

좋은 소식

by ysong 2021. 12. 26.

누가복음 2:8~20

초대교회는 오랫동안 성탄절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로마가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후 40년 후인 354년 로마교회에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이후 379년 콘스탄티노플, 388년 안디옥교회에서 경축되다가 점차 세계교회가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태어난 날짜도 정확히 모릅니다. 그래서 지역에 따라 지키는 날짜도 다릅니다. 우리가 기념해야 할 것은 1225일이라는 날짜가 아니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사건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은 무엇일까요?대부분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신변과 지인들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듣기를 원하는 기쁜 소식은 따지고 보면 모두 땅에서 진행되는 일들입니다.

수평적인 일들입니다.

수평적인 일들은 자신의 뜻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결되는 것이 최종목표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소식에 얼마나 기뻐할까요?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수직적인 사건에 큰 의미를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당장 현실적으로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탄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수직적인 사건입니다.

수직적인 사건의 최종목표는 생명을 구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생명은 가치관과 생각과 삶을 변하게 것에 있습니다.

저는 가깝게는 우리 아버지의 삶에서 보았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젊을 때 술을 많이 좋아하셨습니다.

큰 아들이 살리기 위해 많은 논과 밭을 팔아야 했고, 삶의 희망과 기쁨을 잃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저를 낳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삶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좋아했던 술도 끊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불태웠던 것입니다.

생활은 안정되었고 작은 시골마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데까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저의 형제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다릅니다.

1~4째까지는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자신들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로 많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위 바로 위 누나와 저, 동생에게 아버지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이로 기억합니다. 가정에 충실한 아버지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달라진 것은 예수님이 변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대학에 들어갔지만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적은 지식과 교만으로 주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술과 담배를 피웠고, 내 맘대로 살았습니다.

이런 제가 세상의 즐거움을 끊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살인자를, 노예상인을, 각종 중독으로 삶을 희망을 잃은 자를, 고통과 절망에 빠진 이를 변화시켜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변화입니다.

우리기 기다리는 기쁜 소식은 삶의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가 아니라 그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변했다는 것입니다. 이 역사를 이루기 위해 오신 성탄의 의미를 기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여름은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여름에는 집에서 양을 키웁니다.

가을이 되면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양을 몰고 들로 나갑니다.

들을 옮겨 다니면서 양을 칩니다.

 

목자는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다윗도 목자였습니다.

예수님도 나는 선한 목자라고 했습니다.

 

당시 목자는 가난한 사람이었고 무시당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겨울에 추운 들판에서 살아야 하고,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입지도 못하고, 잘 씻지도 못하고 무서운 짐승들과 싸워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주로 주인이 하기 보다는 돈을 주고 시켰습니다.

대부분 가나한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할 수 없이 목자 일을 했습니다.

대부분 목자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힘들었고, 손을 씻는 정결법을 지킬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목자들을 어떻게 대했을까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자신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자신들을 미워하고 벌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갑자기 한 천사가 나타나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빙 둘러 비추었습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기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천사가 그들에게 큰 기쁨의 복음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이자 주님이신 구원자가 태어나셨다는 소식입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의 내용이 11절입니다.

누가 태어났다는 것인데, 그 분이 태어났는데 구원자이며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복음, 그리스도, 주님이라는 신앙의 중요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특이합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가시적인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사건입니다.

신이 눈에 보이게 사람들 사이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인데 인간의 역사 안으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성탄은 좁히면 3가지 면에서 특이합니다.

먼저 예수님은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신이 인간을 위해 죽으러 오신 것입니다.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죽으러 오셨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람은 이 땅에 살기 위해 태어납니다.

살기 위해 젖을 먹고, 살기 위해 밥을 먹습니다.

살기 위해 노동을 하고 살기 위해 운동을 합니다.

더 좋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 의료시설을 갖추고, 돈을 벌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음을 향하여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살았습니다.

영원히 함께 살게 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성탄은 부활과 함께 생각할 때 의미가 명확해 집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특이한 탄생은 낮아짐입니다.

1~7절에 언급된 신분을 보면 잘 나타납니다.

1절에 당시 사화 구조상 최고 높은 위치였던 가이사 아구스도가 나옵니다.

2절에는 그 바로 밑의 신분인 구레뇨가 위치합니다.

이 구레뇨는 가이사 아구스도보다는 낮은 신분이지만 수리아 총독으로 명망과 권력을 소유한 자였습니다.

4절에 요셉이 나옵니다. 요셉은 신분은 갈릴리 나사렛 노동자입니다. 구레뇨보다 훨씬 아레에 위치한 신분입니다.

5절에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마리아는 여자이니 요셉보다 더 아래의 신분입니다.

7절에 가장 낮은 신분인 아기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8절에는 비천한 신분인 목자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인가요?

예수님은 가이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 분은 우주 만물의 창조자요 통치자요 주인입니다.

성탄은 무슨 대단하고 환상적인 탄생 신화가 아니라 평범을 넘어서서 너무나 초라하고 비참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부와 권력과 명예와 가장 반대되는 이야기입니다.

철저하게 낮은 모습으로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사랑하시죠?

사랑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낮아져서 섬기는 것 아닙니까?

목사가 교회를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낮아짐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 성탄의 기쁜 소식이길 바랍니다.

 

세 번째 특이한 탄생은 연약함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돌봄이 필요한 어린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백마를 타고 오실 수도 있고, 왕의 모습으로 오실 수도 있고, 완벽한 성인의 모습으로 오실수도 있습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을까요?

아기의 친구도 되고, 청소년의 친구도 되고, 청년의 친구도 되고, 장년의 친구도 되고, 사형수의 친구도 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서 튼 영광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연약한 자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입니다.

 

적용) 성탄의 의미를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성탄절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예배하는 날이고,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성탄절이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감사에 있어야 합니다.

또한 구원 받은 자의 변화가 뒤따라야 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 사람은 우리 주님을 만난 적이 없는 것입니다.

아직 성탄이 기쁜 소식으로 다가오지 않은 것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놓은 일을 하기 위해 주님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죽기 위해 탄생하셨고, 낮아지셨고, 연약한 상태로 오셨습니다.

이 성탄의 기쁨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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