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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기쁨이 가득히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by ysong 2022. 12. 21.

마태복음 2:1~12

우리는 25일 성탄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찬송가 104장은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며 부르는 찬송가입니다.

이 찬송가는 12세기에 불렀던 찬송가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언제 재림하실 줄 모르지만 앞으로 계속 불러질 찬양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성탄을 기다려야 할까요?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까요?

25일 성탄주일을 앞두고 주님을 찾아 나선 이들과 주님을 기다린 이들의 신앙을 살펴보고자 합니.

아기 예수님을 찾아간 동방박사와 아기 예수님을 기다린 시므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들의 마음에 담긴 신앙은 무엇인지를 나누고자합니다.

진정한 메시아를 만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제가 어릴 때 성탄절이 되면 늘 성극을 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빈방을 찾는 요셉과 마리아의 이야기, 마구간에 태어난 예수님을 만난 목동의 이야기, 동방의 박사의 이야기가 대표적인 성극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께 찾아와 경배한다는 내용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등장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페르시아제국이지만 주로 바벨론에 살고 있는 학자들입니다.

보통 천문학자나 점술가로 영향력 있는 지혜자나 존경받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이들이 어느날 아주 특별한 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들은 별을 보고 왕이 나셨다고 추측하게 됩니다.

 

이런 추측이 가능한 이유가 있습니다.

남유대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노예로 살면서 에스라처럼 율법을 연구하고 성경을 집대성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이런 율법책이 본토인들에게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읽고 후대에 이어져 왔던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특별한 별을 보고 민수기 24:17절의 말씀이 성취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발견한 별이 너무나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4:17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입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야곱에게서 세상을 비칠 별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별은 세상을 구할 구원자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최소한 4~6개월이 걸리는 멀고 위험한 여행길이었습니다.

 

어쩌면 확실하지 않기에 주변사람들은 무모하다고 만료했을 겁니다.

별을 보고 나선 길이 위험하고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을 구할 왕으로 나신 이를 만나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왕께 경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별이 계속해서 내비게이션처럼 이들을 인도한 것이 아닙니다.

찬송가 116동방박사 세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 따라 왔도다

찬송가의 영향으로 보통 동방작사들이 별을 따라 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동방에서 보았고, 별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2절에 동방에서 별을 보고 왔는데,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묻습니다.

헤롯에게 찾아가는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동방에서 별을 발견했습니다.

그 이후 별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왕이 태어나니까 궁궐일 것이라는 상식을 갖고 예루살렘에 방문한 것입니다.

9절에 베들레헴에서 가는 길에 동방에서 보던 별이 나타나 인도하게 됩니다.

 

박사들은 동방에서 별을 발견한 다음부터는 상식적인 판단에 따라 온 것입니다.

상식적 판단은 유대인의 왕이니까 예루살렘 왕궁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찾아온 것이 헤롯왕 이었습니다.

 

왕으로 나신 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상식의 판단이 틀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혹 우리들의 상식적인 판단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상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충격을 받은 헤롯왕은 사람들을 소집합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소집했습니다.

그들에게 알아내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지식이 대단했습니다.

너무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말씀이 미가 5:2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이들은 명쾌하게 대답을 할 줄 아는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보만을 제공하고 어떤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 지식이 그들의 인생과 신앙에는 아무 유익이 되지 않았습니다.

왕으로 나신 이를 보러 가지도 않았고 갈 생각도 없었습니다.

지식이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성경지식만 있는 목사, 장로, 교수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식의 유희를 줄 수 있지만 생명에 이르지 못합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그 믿음이 구원의 역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자식의 지위와 권위에 집착하여 모든 정보를 자신들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할 뿐입니다.

그들은 생명을 살리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정죄하고 죽이는 일만 일삼았습니다.

 

헤롯도 경배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헤롯은 박사들을 불러 자신도 아기에게 경배하길 원한다고 합니다.

찾게 되면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합니다.

헤롯은 말씀의 지식도 악하게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말씀을 살리는데 사용하지 않고 죽이는데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말씀의 정보를 가지고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말씀으로 정확한 지역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발견하게 됩니다.

 

9절이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생명이 없는 왕궁을 떠나 갈새, 가는데 동방에서 보았던 별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문득은 이런 표현입니다. “와 보라 별이다.”

그들은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그 별은 정확하게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정확하게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상식이 아니라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에 따라 나서니까 다시 별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별을 보내셔서 따라가도록 빛을 비쳐주셨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찾아와 아기 예수님을 보고 초라함 속에 위대함을 봤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본 순간 왕으로 이 땅에 태어나신 별을 직감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했을 겁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예후했습니다.

엎드려 경배함으로, 귀중한 선물을 드림으로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예후했습니다.

그들이 드린 예물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황금-왕권을 상징합니다.

유항-거룩을 상징합니다.

몰약-시신에 뿌리는 약입니다.

사실 몰약은 탄생한 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선물목록입니다.

예수님을 죽으심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엎드려 경배를 올렸습니다.

성탄의 기다림은 엎드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 이들은 변화되었습니다.

다른 길로 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2절에 다른 길로 가게 됩니다.

헤롯에 이르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변화됩니다.

인생이 방향이 달라지고 가는 길이 달라집니다.

이 땅의 길에서 다른 길로 가라고 합니다.

좁은 길, 찾는 이가 많지 않은 길, 우리들이 걸어 갈 길입니다.

주님이 그 길을 걸었습니다.

주님이 그 길에서 우리와 같이 걸아가십니다.

그래서 그 길은 축복의 길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만난 한 분 더 소개하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2:25~35절까지 등장하는 시므온입니다.

그가 어떻게 아기 예수님을 만났을까요?

동방박사가 만난 방법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시므온이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았습니다.

누가복음 2: 25절에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멋진 표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이 그 사람 머리 위에 계속 임재했다니, 이것보다 더 축복된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종교적으로 타락한 곳입니다.

대제사장들이 돈으로 직임을 사고, 제사 제물을 독점 판매하여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곳입니다. 형식적인 예배만 있는 곳입니다. 어디 하나 희망이라는 곳은 없는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정치는 로마가, 왕권은 헤롯이, 문화를 헬라문화가, 종교는 지리멸렬하여 성한 곳이 없는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시므온은 특별한 지시를 받았습니다.

26절에 메시야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기다리고 기다라고 계속 기다렸습니다.

날마다 이스라엘의 위로자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림으로 인해 오랫동안 성전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가끔은 회의가 들기도 했을 겁니다.

성령의 지시를 잘못들은 것은 아닌가 해서 의심도 했을 겁니다.

저라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낙심하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이스라엘의 구원자, 인류의 구원자이신 진정한 메시야인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므온이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것은 종이 세상을 평안히 떠나게 되었다는 그의 노랫말에 다 함축되어 있습니다.

 

동방의 박사는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지시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성전을 찾아온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과정은 다르지만 만나는 방법은 동일합니다.

동방의 박사는 미가서의 말씀을 믿고 베들레헴에 향했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기다렸습니다.

모두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적용) 온전한 경배를 준비합시다.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구원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습니다.

 

헤롯도 경배하겠다는 말입니다.

헤롯의 경배는 가짜입니다.

이 경배는 진심이 아닌 가짜경배입니다.

경배가 아니라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경배입니다.

헤롯은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경배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동방박사와 헤롯이 동일하게 경배를 말하지만 그 의미와 목적은 달랐습니다.

동방박사는 예수님을 왕으로 경배했습니다.

먼 여행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집에(태어나신 마굿간이 아닙니다.) 그들이 별을 봤을 때, 예수님이 마구간에 태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별을 보고 긴 여행을 했습니다.

신앙은 긴 여행입니다.

오래 걸리는 여행입니다.

처음에는 말씀에 대한 상식 수준에서 출발했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이번 성탄은 이런 준비로 맞이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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