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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

꼴찌가 일등이 되는 곳

by ysong 2023. 10. 22.

마태복음 20:1~16

지난주 씨 뿌린 자의 비유를 나누었습니다.

이 비유는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로 불립니다.

밭을 강조하면서 붙여진 제목이기도 합니다.

틀린 적용은 아닙니다.

여기서 눈을 돌려 씨 뿌린 자의 넉넉함을 보면 좋습니다.

낭비로 이룬 결실을 얼마나 귀한가를 알게 됩니다.

또 우리들이 묵묵히 씨 뿌리며 살라고 교훈합니다.

 

예수님이 일찍 믿었는데, 힘든 일을 겪으면 이런 말을 합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구원받은 우편의 강도가 부럽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맘대로 살다가 죽을 때 예수님을 믿을걸.

모태신앙으로 맘대로 놀아보지 못한 분들의 말입니다.

반대로 병상 세례를 받거나, 늦게 예수님을 믿게 된 분들도 아쉬움이 많습니다.

일찍 믿어서 봉사, 섬김을 많이 하면 천국에서 좋은 상을 받을 텐데 하면서 아쉬워합니다.

 

일찍 믿나 늦게 믿나 천국의 상은 다를까요? 같을까요?

여러 가지 봉사와 업적을 남긴 분들은 좋은 상을 받을까?

크고 화려한 큰 상을 받을까요?

늦게 믿어 구원받은 분의 상은 정말로 초라할까요?

오늘 비유는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줍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 너무나 크고 엄청납니다.

혹여 상급이 있다고 해도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구원 자체가 너무나 크고 화려하고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비유의 앞뒤 말씀을 살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비유도 말씀하신 배경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9:16절에 등장한 부자청년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부자청년이 예수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어떤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

예수님이 청년에게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고 했습니다.

부자청년이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부자청년이 돌아간 후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27절인데요, 우리는 부자청년과 달리 다 버렸습니다.

아버지와 배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며 헌신했습니다.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보상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당연히 상이 있다고 하십니다.

19:28~29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상을 받습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 받습니다.

분명 상이 있습니다.

천국은 상 주시는 곳입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천국에서 상은 행위에 따른 보상이 아닙니다.

공로의 대가가 아닙니다.

은혜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것을 확실히 하고자 했습니다.

베드로의 공로주의, 보상 심리를 바로 잡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들려주신 비유가 20장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입니다.

분명히 상이 있어, 그러나 네가 생각한 대로 주지는 않는다고 하시면서 들려주신 비유입니다.비유의 결론은 19:30절과 20:16절입니다.

19:30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20:16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순서가 바뀌었지만 의미는 같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됩니다.

무엇 때문에 순서가 바뀔까요?

비유의 내용에 담겨 있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이 장터(인력시장)에 나갔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했습니다.

주인은 이른 새벽에(아침 6) 나가서 일할 사람들을 불러 자기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그들에게 하루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보통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한 가족이 하루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비이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오전 9시에 장터(인력시장)에 나갔습니다.

놀고 있는 사람에게 적당한 품삯을 주겠다고 하면서 포도원에 보냈습니다.

또 주인은 12시에 인력시장에 나갔습니다.

그때까지도 일거리를 찾지 못해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적당한 임금을 주기로 하고 포도원에 보냈습니다.

3시에 나가서 그와 같이 했습니다.

오후 5시에 인력시장에 나갔습니다.

그때까지 놀고 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인이 그들에게 여러분들은 왜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우리를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들도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도록 했습니다.

이들은 1시간도 채 안되는 일하는 동안 감사함으로 열심히 일했을 겁니다.

 

오후 6시에 일이 마쳤습니다.

이들에게 일당을 주는데 상식적이지 않았습니다.

보통 일찍 온 사람부터 주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그런데 8절에 따르면 늦게 온 사람부터 주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온 일꾼부터 주었으면 받아서 집으로 갔기에 나중 온 사람이 얼마나 받았는지 몰랐을 겁니다.

주인은 청지기를 시켜서 5시 온 일꾼들에게 1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온 일꾼은 더 많은 일당을 생각했습니다.

원래 한 데나리온을 받을 것을 약속하고 일했지만, 그것은 잊어버린 채, 상식적으로 자기들은 약속보다 더 많은 품삯을 주인이 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들어와 하루 종일 일한 사람들이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그들의 불평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비유는 1절에 천국은 마치로 시작합니다.

천국의 특징입니다.

천국은 집주인과 같습니다.

천국은 집주인이 행한 모습과 마음과 같습니다.

 

집주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1시간밖에 일할 수 없는 사람도 데려다 쓰는 분입니다.

하루 일당을 채워주는 분입니다.

긍휼과 자비가 풍성한 분입니다.

 

이런 집주인을 오해한 사람이 생깁니다.

주인이 불공평하다고 주장한 이들이 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일한 사람입니다.

중동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11절에 원망하고 12절에 불공평하다고 따졌습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주인이 그들에게 잘못했을까요?

주인은 그들에게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게다가 13절에 주인은 그들을 친구로 대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일찍 온 품꾼을 친구로 대해 줬습니다.

주인은 사람을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친구라고 했는데, 그들을 친구로 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주인은 나중에 온 자에게는 불공평했습니다.

이 불공평을 은혜라고 합니다.

천국의 계산법과 세상의 계산법이 다릅니다.

주인은 전적으로 은혜로 계산합니다.

주인은 5시에 안 불러도 그만인데, 일당 주려고 불렀습니다.

 

천국은 은혜가 가득한 곳입니다.

인간의 공로가 개입하는 곳이 아닙니다.

 

은혜로 들어갔다고 아는 사람이 공로를 주장할 수 있는가?

공로를 주장하면 천국에서 나중 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 얻으려고 봉사, 헌신하는가?

아무것도 안 해도 천국 가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이 차질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말씀으로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부른 까닭은 무엇일까요?

월급 주려고 불렀습니다.

좋은 것 많이 주시려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일찍 불렀습니다.

먼저 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 된 자가 될 판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무엇을 놓쳤을까요?

베드로가 본전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먼저 되었다고, 일찍 믿었다고, 많은 업적과 공로를 쌓은 분들이 놓치기 쉬운 점입니다.

자신들은 일찍 온 품꾼처럼 손해 봤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일찍 온 품꾼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기의 처지에서 주인은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여겨졌습니다.

자기들이 고생한 것을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놓쳤을까요?

아침부터 좋은 주인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몰랐습니다.

가족의 하루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이 먼저 믿은 자에게 주어진 큰 복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 백성의 삶을 누리는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것을 잊으면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오후 5시까지에 들어온 품꾼은 하루 종일 걱정과 두려움으로 보냈습니다.

오늘도 공치면 어떻하나?

가족들의 먹거리를 어디서 구할 것인가를 걱정했습니다.

주인이 하루 종일 놀고 있느냐고 물을 때, 그들은 쓰는 이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일하고 싶었지만 기술이 없어서, 힘쓰게 보이지 않아서 쓰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늦게 믿는 게 좋겠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빨리 일찍 믿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 없는 불안한 생활이 얼마나 줄어들기 때뿐입니다.

일찍 주님을 믿는 것이 복입니다.

 

일찍 온 품꾼은 타인의 생존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를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비입니다.

먼저 온 사람은 돈만 보였습니다.

자신이 받을 대가만 봤습니다.

늦게 온 사람의 형편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일찍 온 품꾼이, 베드로가 주인의 마음을 닮기를 원했습니다.

긍휼을 여기는 마음, 재난을 당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길 원했습니다.

 

일찍 온 품꾼은 주인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15절을 보면, 주인을 악하다고 했습니다.

주인의 뜻은 언제나 선하십니다.

그런데 시기와 질투로 가득한 사람에게 선하신 주인이 악하게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주인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마치 포도원 주인과 같다고 했습니다.

자비와 긍휼로 사람을 대하시는 포도원 주인과 같습니다.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입니다.

그곳은 순서가 없습니다.

모두 은혜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현재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살아갑니다.

온전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살아갑니다.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자비의 법칙. 은혜의 법칙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똑같이 하루 일당인 한 데나리온 받았습니다.

그러나 원망과 은혜로 갈라집니다.

관계가 역전됩니다.

일찍 들어온 품꾼은 친구라고 부른 주인의 마음을 모른 까닭입니다.

비교하면 감사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첫째가 꼴찌가 됩니다.

일찍 예수님을 믿었으면 그만큼 이익이 큽니다.

보상이 기대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자비와 은혜, 감사의 심정이 앞뒤를 가름하게 됩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 있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습니다.

먼저 되었다면 은혜와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중 되었다면 먼저 되기 위해 은혜와 감사를 배워, 실천해야 합니다.

천국은 은혜와 감사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상은 동일합니다.

구원 그 자체가 크고 놀라운 상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대가를 바라지 맙시다.

천국은 상급로 나뉘는 곳이 아닙니다.

나 같은 죄인이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다른 것을 요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늦게 믿어 구원에 이르신 분들에 대해 어떤 상을 받을까 걱정하지 마세요.

가장 귀한 은혜를 선물을 받았습니다.

똑같이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너무 크기에 혹시 상급에 있다고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천국 백성으로 살고 있습니다.

먼저 되었다고 보상, 대가를 바라지 마세요.

늦게 믿었다고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다 은혜로 살아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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