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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

외화내빈의 신앙을 경계하기

by ysong 2023. 11. 26.

마가복음 11:11~25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빈 수레는 자신이 요란하다는 것을 알까요?

잘 모릅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요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혹시 짐을 가득 실은 수레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을 발견할 경우입니다.

잎만 무성한 나무는 외화내빈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크고 화려한 성전, 수많은 제물과 사람들, 막강한 종교 권력으로 잎만 무성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자신들이 외화내빈의 상태인 것을 언제 깨닫게 될까요?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 깨닫기도 합니다.

고난, 질병, 사건을 겪으면 인생관, 가치관, 신앙관이 바뀌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외화내빈이 아닌 속이 꽉 찬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비유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비유에 관한 해석도, 설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예수님의 비유로 분류합니다.

이는 본문을 행위 비유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 행위의 상징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이사야가 애굽의 심판을 알리기 36개월 동안 위해 옷을 벗고 다닌 것이나,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한 것이나, 에스겔의 기쁨을 빼앗기 위해 아내를 데리고 가신 것과 같은 행위예언과 비슷하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은 행동으로 비유를 들려주셔서 제자들이 깨닫길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한 주간을 보내시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두 번의 성전 청결을 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성전 청결을 하셨고, 공생애 마지막 주간에 또다시 성전 청결을 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성전 청결 사건을 당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18절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본격적으로 논의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동에 모욕을 느꼈고, 불쾌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을 들어가신 사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전-잎만 무화과나무 저주-성전-뿌리째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말씀의 중요한 관점 포인트는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와 성전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성전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11절에 베다니에 머물렀습니다.

일행은 비좁고 어려운 형편에도 주님을 사랑했던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자매들이 살고 있는 베다니 집에서 그날 밤을 보내셨습니다.

비좁은 집에 머문 건장한 20대 청년 제자들을 생각해 보세요.

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일행은 나사로 집에 나오셨습니다.

12절에 시장하신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이른 아침이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생활 형편을 아신 주님은 가능한 신세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20대 젊은 제자와 예수님은 시장하셨습니다.

요기하려고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가까이 가셨습니다.

하지만 그 무화과나무는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자 곧 말라버렸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이 여느 때와 다릅니다.

예수님이 배가 고파서 화를 내셨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가뜩이나 무화과나무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지 못함에 분노하심은 인자하시고 온유하신 예수님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평소 예수님이라면 없구나, 아쉽다라고 하셨을 겁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까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원래 무화과나무는 4월에 잎과 함께 열매를 맺기 시작해서 10월까지 5차례 열매는 맺습니다.

첫 열매는 작고 맛이 없습니다.

파김이라고 불리는 첫 열매는 나그네나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따먹었습니다.

따 주지 않으면 이후 열매가 열리지 않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잎과 열매가 동시에 열립니다.

잎이 있다는 것은 첫 열매가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열매가 열리지 않으려면 잎도 없어야 합니다.

그만큼 첫 열매가 중요합니다.

나머지 4차례에도 열매가 없습니다.

 

첫 열매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호세아 9:10절과 미가 7:1절에 첫 열매를 기다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9:10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하나님이 무화과나무의 첫 열매를 봄 같이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첫 열매는 작고 맛이 없습니다. 그래도 기다리는 이유는 다음 열매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미가 7:1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처음 익은 무화과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처음 익은 무화과나무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첫 열매처럼 작고 맛이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처음 익은 이스라엘이 열매를 맺고, 나머지 4차례의 열매가 상징하는 열방들이 열매를 맺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첫 열매로 맺지 못하면 다음 열매도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잎만 무성했습니다.

열매가 없었습니다.

이어지는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시작으로 열방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성전과 유대교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대교와 성전은 겉으로 크고 웅장합니다.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이 놀랄 정도로 화려합니다.

종교적인 행위, 철저한 제사 절차, 십일조, 구제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성전이 크고 화려합니다.

성전 안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종교 행위가 많고, 동전을 바꾸고, 제물을 파고 사는 소리로 요란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활기가 넘칩니다.

그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하는 데 없습니다.

 

겉은 화려하고 속은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합니다.

제사장들은 상권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제물과 환전의 통해 취하는 이득이 대단했습니다.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주 받은 무화과나무는 타락한 이스라엘에 대한 임박한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유대교는 열매 맺지 못한 종교입니다.

외화내빈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겉은 화려하고 속은 돈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열매 맺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대안은 무엇인가?

22~25절이 대안입니다.

 

21~22절의 말씀을 보면, 나무가 말랐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이해가 됩니까?

동문서답 같습니다.

앞뒤가 연결되지 않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내용이 믿음, 기도, 용서입니다.

유대교에 믿음, 기도, 용서가 없습니까?

금식기도가 있고, 구제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없다고 하셨을까요?

그들의 믿음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거리에서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도록 구제했습니다.

그들은 3번은 용서했습니다.

긍휼히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용서하는 척했습니다.

 

믿음, 기도, 용서는 신앙의 본질입니다.

세 개의 주제가 안에 가득해야 합니다.

어떻게 가득 차 있어야 할까요?

기도는 산과 바다가 옮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산과 바다가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 40: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이스라엘백성이 회복되어 하나님께 돌아오는데 방해가 되는 산과 바다를 평탄하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회복과 위로의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문제를 제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산과 바다는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문제들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기도를 통해 제거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종교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면서 잎이 무성해져야 합니다.

겉과 속이 일치해야 합니다.

회복해야 할 참 신앙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적용) 내면을 아름답게 가꿔요.

화려하게 꾸민 교회, 파이프오르간으로 찬양했던 유럽의 교회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성실교회 오후예배를 드리면서 늙어가는 교회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겉에서 보면 크고 화려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점점 믿음이, 기도가, 용서가 비어가지 않길 기도합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있는 척하는 모습을 싫어하십니다.

크고 화려함이 아닌 진실함, 솔직함, 순수함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이는 게 아니라 내면이 꽉 찬 신앙인이 되길 바랍니다.

그것은 믿음, 기도, 용서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건물의 화려함이나 종교행위가 열매와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계 맺음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용서받아 서로 용서하는 삶이 있어야 하는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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