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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

작은 차이로 갈리는 현실

by ysong 2023. 10. 9.

마태복음 25:1~13

지난주 문서 위조를 했지만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은 청지기의 비유를 나눴습니다.

주인이 청지기를 칭찬한 것은 청지기가 미래를 준비하는 능동적인 태도였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로 친구를 얻어서 미래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짧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이렇게 미래를 준비하는데, 너희는 영원한 가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를 묻고 있습니다.

재물를 도구로 삼아 친구를 얻어 영원한 생명을 알도록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평범하게 들립니다.

아주 쉽게 들립니다.

그러나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묵상하면 할수록 진리에 대한 확신이 확고해집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쉽게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잘하고 있고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이것이 슬기로움과 미련함을 나누는 차이라고 합니다.

 

오늘 비유의 결론은 13절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교훈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삶에 대한 교훈입니다.

13절은 지난번에 나눈 달란트 비유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단란트 비유도 어떻게 하는 것이 깨어 있는가를 가르쳤습니다.

주인되신 하나님과 신뢰의 관계를 맺고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로 착하고 충성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깨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와 다른 결혼 풍습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의 결혼식은 두 번 합니다.

첫 번째는 약혼식입니다.

약혼식은 신부의 집에서 진행됩니다.

약혼식을 마친 신랑은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신부는 신랑이 곁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신혼의 꿈으로 살아갑니다.

신랑과 함께 살 것을 소망하면서 신부 수업을 받습니다.

자기 집으로 돌아온 신랑은 부부가 살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신랑과 신부가 각각 자기의 집에서 생활하지만 법적으로 결혼 상태입니다.

이미 결혼했지만 아직 결혼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성도의 신분과 같습니다.

구원받았지만 완성되지 않은 상태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이 결혼 풍습을 빌려서 말씀하신 곳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2~3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신랑이 집을 완성하면 신부를 데리러 갑니다.

신랑은 신부를 데리고 와서 10일 동안 큰 잔치를 베풉니다.

결혼식은 저녁에 진행됩니다.

유대인의 저녁은 하루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비유에 등장하는 열 처녀는 신랑과 신부를 맞이하러 가기로 준비된 사람입니다.

들러리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늦게 오게 되어 다 졸게 되었습니다.

밤중에 신랑이 온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신랑을 맞이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5 명의 처녀들은 등과 기름이 준비되어서 신랑을 맞이하기에 충분하지만 나머지 5명은 기름을 준비되어 있지 않아 신랑을 맞이하다가 불이 꺼질 것 같았습니다.

미련한 5명의 처녀가 기름을 빌려 달라고 합니다.

슬기로운 5명의 처녀가 그러면 둘 다 불이 꺼질 수 있다고 합니다.

기름을 빨라 사 와서 신랑을 맞이하러 나오라고 합니다.

미련한 5 처녀가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왔습니다.

등과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5명의 처녀만 신랑을 모시고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이 닫혔습니다.

기름을 사러 간 미련한 5 처녀가 돌아와 문을 열어달라고 합니다.

주여 주여 열어 주소서.

어디서 본 듯한 표현입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선지자 노릇도 하도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주인이 알지 못한다며 매정하게 대합니다.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반 결혼 잔치라면 문을 열어주겠지만 천국 잔치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열 처녀가 주인공입니다.

5 처녀의 슬기로움은 무엇일까?

5 처녀의 미련함은 무엇일까?

 

처음부터 슬기로움과 미련함으로 나눈 것이 아닙니다.

같음과 다름이 있습니다.

먼저 같음입니다.

5절의 말씀으로 슬기로움과 마련함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깨어 있으라, 깨어 준비하는 것이 슬기로움이라고 하지만 모두 졸고 잤습니다.

졸고 자는 것은 차이가 아닙니다.

모두 신랑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자다가 깨어서 일어납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어서 졸다가 자게 되었습니다.

깨어 있으라고 하셨지만 졸지 말고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졸 수 있구요, 잘 수도 있구요, 힘들면 잠시 멈출 수도 있어요.

그것을 책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슬기로움과 미련함으로 나누지도 않았습니다.

 

13절의 말씀인 그때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슬기로움과 미련함이 나누지 않습니다.

모두 신랑이 올 때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재림의 날을 알지 못합니다.

어느 이단은 그날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를 아는 것으로 지혜로움과 미련함을 나누지 않습니다.

 

3~4절의 말씀처럼 등을 들고 기다리는 것으로도 지혜로움과 미련함을 나누지 않습니다.

여기서 등은 횃불입니다.

높이 들어서 비추는 역할을 합니다.

15분 간격으로 횃불에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모두 등이라는 겉모습은 있었습니다.

등이라는 종교 행위, 직분, 봉사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 등으로는 지혜로움과 미련함을 나누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깨어 있는 지혜로움인가요?

3~4절의 말씀처럼 기름을 가지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의 작은 차이가 지혜로움과 미련함을 나눈다고 합니다.

깨어 있는 지혜로움은 기름을 준비해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련한 5 처녀는 왜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을까요?

이 정도로 충분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측이 빗나갔습니다.

그런데 잠을 자고 있습니다.

설마 이 기름 떨어지기 전에는 올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처음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늦게 오는 것이 사인으로 알아야 했습니다.

빨리 알아차려야 했습니다.

그때부터라도 스스로 바꿀 수 있었다면 이것이 깨어 있는 슬기로움입니다.

기름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5 처녀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완고하게 가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형상입니다.

지금 잘못 믿는 것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미래에도 돌이키지 못하게 됩니다.

빨리 돌이키는 것이 깨어 있는 슬기로움입니다.

채워지고 있느냐? 소진되고 있느냐?를 아는 것이 깨어 있는 슬기로움입니다.

소진되고 있다면 다시 기름을 사서 처음처럼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은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이전에 가졌던 낡고 고루함으로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믿음의 새로운 길을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충천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은혜, 새로운 믿음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지금 여기까지 온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여행의 믿음 길은 아직도 멉니다.

소진되고 있다는 알아차리고 새롭게 채우는 것이 깨어 있는 슬기로움입니다.

비워가고 있다면, 충분하지 않다면 다시 채우는 것이 슬기로움입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기름을 준비한 것이 깨어 있는 슬기로움입니다.

지혜로움과 미련함은 영적인 준비의 유무입니다.

지혜로운 5 처녀는 등과 함께 따로 기름을 준비해 두고 있습니다.

영적인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름이 진짜 영적인 실력입니다.

1)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고 있는가?

예수님 때문에 고난 받고 감사했느냐?

2) 주님과 첫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있었는데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고갈되었습니다.

채워지는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가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진짜 믿음이 시간이 흐르면서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임재 앞에 서면 영적인 실력이 드러납니다.

영성은 남의 것을 빌려 쓸 수 없습니다.

각자 예수님을 만난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 전쟁터에 나왔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비유의 교훈은 현재만 살아가는 이들에게 향한 교훈입니다.

인생의 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심판을 믿는 사람이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진짜 심판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신화적인 생각으로 치부합니다.

그런데 심판자 앞에 서게 될 때 얼마나 황당할까요?

교회 다니게 하려고, 겁주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정말 심판의 자리에 가는 것에 준비하고 있습니까?

역사 속에 심판이 없다면 우리는 인생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습니다.

참과 거짓을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진리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하면서 묵묵히 걷는 겁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이라고 교훈합니다.

차이점은 기름 준비입니다.

그 차이가 결론에서 가혹하리만큼 큽니다.

관계 문제로 끝납니다.

깨어 있는 것은 준비하는 것입니다.

신랑이 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사느냐에 싸움입니다.

 

적용) 나는 고갈되고 있는가? 채워지고 있는가?

도시에서 운전하면서 라이트를 켜지 않고 실수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로등이 거리를 밝혀주고 있으니까 라이터가 커진 줄 모릅니다.

켜있는 줄 착각합니다.

그러나 라이터가 꺼진 차를 따라가는 상당히 위험합니다.

갑자기 앞 차가 잘 보이지 않는 구간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고갈된 상태가 지속되면 자신도 위험하고 상대방에게 위험을 끼칠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충전하셔야 합니다.

 

잠언은 슬기로움과 미련함의 여러 가르침을 줍니다.

잠언 14:3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잠언 14:24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미련한 것이니라

잠언 17:10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

듣고 깨닫는 것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오늘 말씀이 들리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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