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14~30
지난주 선한 사마리아인에 비유로 알려진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사실 이 비유는 강도 만난 이웃에 대한 비유로 바꾸면 훨씬 내용 전달이 바르게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로 강도 만난 자이기 때문입니다.
비유에 등장한 강도 만난 사람은 유대인입니다.
강도 만나기 전에 사마리아인은 이웃이 아닙니다.
강도 만난 후에 사마리아인은 이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으로 다가와 파격적인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원래 우리의 이웃이 아니었던 예수님이 파격적인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달란트 비유입니다.
단란트는 원래 금이나 은을 재는 무게로 쓰였습니다.
나중엔 돈이나 재능, 은사로 사용되었습니다.
보통 달란트 비유는 이렇게 설교의 결론과 적용을 해 왔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배로 남기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맡긴 달란트는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주신 은사에 감사하고, 잘 활용해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1단란트 받은 종처럼 악하고 게으리면 안됩니다.
착하고 충성된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틀린 적용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전달하고 싶은 비유를 온전히 담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늘의 비유도 주인을 오해한 종의 비유로 바꾸면 훨씬 내용 전달이 올바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비유를 설교하면서 한 가지 원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
먼저 앞뒤 문맥을 살펴서 비유의 주제를 찾는 것입니다.
오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24장의 마지막 때의 징조에 관한 말씀입니다.
25장에 기록된 3가지 비유는 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비유의 주제는 25:1절의 천국입니다.
천국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신앙의 태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신랑이 어디로 가고, 달란트 비유는 주인이 타국으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다시 오겠다고 약속이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성도들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13절의 말씀처럼 종말에 사는 백성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13절은 열 처녀 비유의 결론이면서 달란트 비유의 서론입니다.
내용을 볼까요?
어떤 주인이 타국에 출장을 갔습니다.
종들을 불러서 각각 재능에 따라 돈을 주었습니다.
한 달란트은 6천 데나리온의 가치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17~18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되는 돈입니다.
일당을 10만원으로 하면 6억 정도이고요, 20만원으로 하면 12억입니다.
이 정도도 창업할 수 있습니다.
5달란트 받은 종과 2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장사했습니다.
무슨 장사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장사했습니다.
1달란트 받은 종은 땅을 파서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보화의 비유처럼 가장 안전한 곳에 숨겨 놓은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결산했습니다.
2, 5달란트 받은 종은 각각 배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주인이 그들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주인이 그들에게 상을 주었습니다.
21절과 23절입니다.
더 많은 것을 맡길 것이며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는 특권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1달란트 맡은 종은 자신이 땅에 묻은 이유를 말합니다.
손해를 볼까 봐, 주인이 두려워서 땅에 묻어서 원금을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주인이 1달란트 맡은 종을 향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조차 빼앗기고, 쫓겨납니다.
이 비유는 무엇을 하는 것이 깨어 있는 삶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깨어 있는 것은 재능과 은사를 잘 활용하는 것, 게으르지 않은 것도 포함합니다.
그러나 초점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2. 5달란트 받은 종에 대한 칭찬은 똑같습니다.
착하고, 충성됨입니다.
이 칭찬은 두 종이 이윤을 배로 남겼기 때문일까요?
착하고 충성은 이윤과 비례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만약 두 종이 망했다면 주인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두 종이 망해도 주인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했을 겁니다.
이윤을 배로 남기든 망했든지 주인의 칭찬은 같습니다.
착하고 충성됨은 장사를 했느냐, 안 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2, 5단란트 받은 종은 위험을 무릅쓰고 장사했습니다.
1단란트 받은 종은 장사하지 않았습니다.
차이가 무엇인가?
26절 정도로 잘못한 것일까요?
1단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았는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꾸중을 들었습니다.
게으를 수 있지만 악하다고 하기에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종은 주인의 돈을 고스란히 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책망은 종이 손해를 끼쳤기 때문도 아니고, 게을렀기 때문도 아닙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몇 배의 이윤을 남김에 있지 않습니다.
비유의 핵심은 1단란트 받은 종이 주인에게 한 말입니다.
24~25절입니다.
종이 주인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입니다.
종은 주인을 굳은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색하고 난폭한 사람, 이마에 피 한 방울 안 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씨를 뿌리지 않은데 모으는 몰상식한 독한 사람, 돈만 아는 나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탐욕스럽고 이익을 탐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두려움을 주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인은 종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존재였습니다.
이런 주인이라고 생각한 1달란트 받은 종은 자신이 생각한 가장 안전한 곳에 묻어두었습니다.
자신이 주인을 알고 있는 지식에 따라 행동을 취했던 것입니다.
25절에 당신의 돈이라고 표현한 것은 나에게 책임을 묻지 말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2,5달란트 맡은 종은 주인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두 종이 주인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알 수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16, 17절의 ‘바로’, ‘그같이’라는 단어입니다.
장사는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종이 바로 장사를 할 수 있는 주인에 대한 신뢰관계입니다.
자신들이 망해도 그다지 혼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넘는 주인에 대한 확고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망할 수도 있고,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은 망해도 나를 믿고 충성했구나, 잘했다. 칭찬했을 겁니다.
착하고 성공한 종이라고 하지 않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한 까닭입니다.
주인이 기대는 성공이 아니라 신실함이었습니다.
주인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순종이었습니다.
주인은 종들의 태도를 평가했습니다.
주인은 2달란트와 5달란트 맡은 종의 착하고 충성된 태도를 칭찬했습니다.
주인은 1단란트 맡은 종은 악하고, 무익한 종이라고 책망했습니다.
태도는 관계에서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에 대해 호세아 6:6절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한 이유입니다.
주인의 관심은 이윤의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성공과 실패가 잣대가 아닙니다.
23절과 30절에 유익 종과 무익한 종으로 나누지 않은 까닭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과 무익한 종으로 나눈 이유입니다.
이윤에 따라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관계가 올바르게 형성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윤이 아니라 주인을 어떤 사람으로 알고 있느냐, 주인과 종의 관계성에 관한 비유입니다.
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 바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을 오해한 종의 비유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렇다면 주인은 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주인이 종을 대하는 태도는 14절에 “자기의 소유를 맡김”에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은 많은 돈을 믿고 맡길 정도로 종들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혹여 종들이 실패해도 책임지지겠다는 신뢰입니다.
주인은 종들의 능력에 따라 맡길 정도로 잘 알고 있습니다.
능력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신뢰했습니다.
주인은 종들을 오랫동안 기다리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계십니까?
이 비유는 하나님을 오해하신 분들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들도 어느 부분에서 약간 비틀어진 하나님의 상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와 교인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오해하지 마세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분입니다.
왜 하나님을 오해할까요?
자신의 마음이 굳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오해함은 비참한 인생이 됩니다.
악하다는 것은 주인을 탓하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악하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깨진 상태입니다.
착하고 충성됨은 하나님과 신뢰 관계의 상태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바르게 되면 살다가 속상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로 나옵니다.
주인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은 주인으로 비유된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잘못하면 책망하고 벌을 주는 무서운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용서와 긍휼함이 가득한 하나님을 알고 계십니까?
주인은 종을 너무 잘 알아서 각각 맡기신 분입니다.
통치를 받는 사람은 바로 알고 담대하게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1단란트 맡은 종의 문제는 주인에 대한 오해와 알지 못함이었습니다.
그 종은 주인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진정성이 없었습니다.
주인을 온전히 알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려줍니다.
오늘의 비유는 14절의 “또”라는 단어로 알 수 있듯이 앞선 비유의 내용과 유사합니다.
천국에 대한 비유입니다.
비슷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 백성은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맡은 올바른 관계를 맺고 착하고 충성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적용) 하나님의 평가 기준에 따라 살아요.
저는 이 비유로 몇 년 전에 큰 위로를 받았고, 지금도 같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주님의 평가가 크고 작음이나 많고 적음이었다면 저는 상당히 힘들었을 겁니다.
한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남기려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고난과 낮아짐으로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나에게 맡긴 일에 착하고 충성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착하다는 것은 성격이 착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많이 착해진 이유입니다.
충성된다는 것은 태도가 충성된다는 것입니다.
맡겨진 일에 충성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저에게 사역으로 맡겨진 남양주성실교회, 덕대신우회, 무인가신학교에서 강의하는 것까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합니다.
앞으로 다른 것을 맡겨주시면 저는 같은 태도를 살아가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으로 또 한번 적용합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착하고 충성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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