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4:25~33절
지난주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를 나눴습니다.
과부가 재판장에게 끈질기게 간절히 매달린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재판장이 불의하기 때문입니다.
재판받게 해 달라고 끈질기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반면 하나님은 자녀의 신음에 귀를 기울이시고 들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비유라기보다는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비유입니다.
끈질긴 기도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믿는 믿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비유는 참 제자가 되기 위해 치를 대가에 대한 비유입니다.
우리는 참 제자가 되길 원합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한국교회를 대표했던 옥한흠목사님은 제자훈련으로 평신도를 깨우셨습니다.
한국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셨습니다.
저도 옥목사님의 강의를 듣고, 성실교회에서 남자 제자반을 맡아 훈련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반 집사님들이 훈련받으면서 변하는 모습도 발견했습니다.
훈련으로 제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예수님이 우리나라에서 교회를 세우시고, 목회하셨다면 얼마나 크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의 말씀을 들려주실 때, 남자만 5천명이라고 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1만명은 족히 넘을 겁니다.
예수님이 어디로 가든 수많은 사람이 따랐습니다.
25절에도 수많은 사람이 따랐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12명 제자를 시켜서 따르는 사람들에게 등록카드 받고, 이들을 목장과 구역으로 조직하면 더 많은 사람을 모았을 겁니다.
좋은 교회로 잘 오셨습니다. 등록하세요. 예수님의 말씀이 좋습니다. 은혜 많이 받으세요.
그렇게 했다면 큰 대형교회를 세우셨을 겁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비유를 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평소 온유한 모습과 다릅니다.
너무나 진실하고 직설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비유의 대상은 수많은 무리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26절에 “능히 내 제가가 되지 못하고”,
27절 또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따져봐야 한다는 내용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결론은 33절인데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3번이나 반복하면서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내 제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을 걸 아니라 조금의 여지도 없이 강하게 부정합니다.
따르려는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정말 예수님 믿으시게요, 정말 교회 다시려고요, 글쎄요, 잘 생각해 보세요.
예수 믿는 것 쉬지 않아요.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9:57절에 서기관이 예수님이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교수님입니다.
등록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분에게 예수님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고생할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하신 이유는 정말로 따르지 말라고 하고 싶어서일까요?
아닙니다.
바르게 따르라고 강하게 초대하신 겁니다.
예를 들어, 내일이 중간고사인데 자녀가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그렇게 하려면 때려치라고 했다고 해요.
그 말은 자녀가 공부하지 말라고 한 것일까요?
아님 정신 차려 열심히 하라는 뜻일까요?
그런데 자녀가 네 알겠습니다.
“내일 시험 망치고 오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면 바르게 알아들은 것일까요?
자녀가 네 알겠습니다.
바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반응을 기대해서 했던 말입니다.
능히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신 이유는 제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참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무리로 남아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 제자가 되려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진지하게 따져보고 주님을 따르기를 바라서 하신 비유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행적은 예루살렘을 향했습니다.
십자가를 향해 예루살렘으로 나아갔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따릅니다.
무리는 예수님의 방향이 예루살렘이라는 것, 십자가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배불리 먹이고, 병든 자를 고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서로 목적이 달랐습니다.
기대하는 바가 어긋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걸었던 12명의 제자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혁명에 성공할 때 한 자리 차지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높은가를 놓고 다투었습니다.
기대하는 바가 달랐습니다.
이들에게 비유를 들려주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참 제자가 되는 3가지 조건을 말했습니다.
첫 번째 조건이 26절입니다.
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조건입니다.
관계에 있어서 우선순위를 정하라는 뜻입니다.
가족이나 자신의 목숨을 미워하고 하찮게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보다 덜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다음으로 가족과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바르게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참 제자가 가장 사랑할 분은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해 보세요.
그러면 덜 중요한 것을 내려놓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내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더 좋은 것을 붙들면 내려놓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돈 쓰는 것 아깝지 않습니다.
사랑이 식으면 돈 쓰는 것이 아깝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신비한 일이 벌어집니다.
가족도 예전보다 더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깁니다.
반대로 가족밖에 모르면 관계가 나빠집니다.
나밖에 모르게 됩니다.
자기밖에 몰랐던 제자들은 높아지려고 싸웠습니다.
참 제자는 모든 관계에서 예수님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조건은 27절입니다.
이것은 삶의 목적이 예수님과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실 겁니다.
참 제자의 삶의 목적은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는 인생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기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자기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나,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자기 십자가가 아닙니다.
나를 연단하고 다듬는 도구일 뿐입니다.
자기 십자가는 죽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죽고, 옛 자아가 죽고, 옛 기질이 죽는 겁니다.
내 야망, 목적, 방향을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영광 받는 것, 높아지는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타인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이 자기 십자가입니다.
사회가 다 그런데, 그렇지만 나는 그리스도의 양심에 따르는 것이 자기 십자가입니다.
박해와 고통을 각오하고 쫓는 것이 자기 십자가입니다.
사형틀을 지고 가신 예수님과 삶의 목적이 같아 지는 것이 자기 십자가입니다.
참 제자는 죽을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참 제자는 예수님과 같은 방향으로 갑니다.
세 번째 조건은 33절입니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는 것은 무소유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만나훈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용한 양식으로 족하다고 하는 자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 한 참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찾아왔습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지켰다는 그 청년에게 예수님은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 청년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비유가 망대의 비유, 전쟁의 비유입니다.
첫 번째는 망대의 비유입니다.
망대는 아파트의 이름으로도 쓰고 있는데 파라곤입니다.
전망대입니다.
망대를 짓는데 100만원 든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돈은 10만원이고 여기저기 끌어모을 수 있는 돈이 20만원 입니다.
무모하게 하지 않습니다.
따져보고, 계산하여 안되겠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조금 더 돈을 모아 다음에 합니다.
예수님은 참 제자가 되려면 3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잘 따져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전쟁의 비유입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전쟁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우리 군사는 1만명이고 적군의 군사는 2만명입니다.
숫적으로 열세인데,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지 계산해 보라는 것입니다.
승산이 없으면 사신을 보내서 화친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참 제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자도 아닌데 제자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깨어나지 못하면서 깨어났다고, 보지 못하면서 보고 있다고, 따르지 않으면서 따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행해 말씀하셨습니다.
곰곰이 따져보라는 것입니다.
냉철하게 충분히 참 제자의 신분을 살 수 있는지 따져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덮어놓고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무모와 믿음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기는 순수한 믿음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종교의 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사울은 대가를 지불한 적이 없습니다.
쉽게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왕이 되어 군림했습니다.
은혜로 받았는데 안중에 없었습니다.
다윗은 오랜 세월 동안 고난을 받았습니다.
만만치 않은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다윗은 평생 하나님을 위해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귀한 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귀하게 여길수록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 정도 비용을 치르고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솔직히 몇 분 없습니다. 우리는 다 못합니다.
지금까지 따져보지 않았기 때문에 참 제자가 되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욥처럼, 끝까지 예수님 배반하실 자신이 있는가요?
없습니다.
저는 매일 밥을 적게 먹겠다고 말합니다.
저녁에 밥을 평소와 같이 먹습니다.
저는 다이어트 박야, 의지 박야입니다.
내 의지로 내 노력으로 가능할까요?
우리의 힘으로 따를 수 없습니다.
베드로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망가고 숨습니다.
참 제자가 되면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있는가?
예수님은 그들을 행해 단호하게 진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없습니다.
이 땅에서 부자, 영광, 인정받고 싶다면 다른 곳을 찾아가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같은 것을 단 한번도 주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고 싶을까요?
다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 참 평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래도 나를 따르겠니.
그러면 너에게 준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부탁하십니다.
하나님 못합니다.
제힘으로 못합니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성령의 생명 안에 충만케 하시게 하옵소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요.
신앙은 자신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는 진실된 사람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시면서 가시면 됩니다.
그러면 참 제자가 됩니다.
적용) 따져보고 따릅시다.다.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무슨 대답을 갖고 있습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못합니다. 도와주세요. 매일 고백합니다.”
여러분은 무슨 대답을 하실겁니까?
따져보고 진실하게 주님을 따르시는 참 제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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