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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자신의 약점을 자랑해요

by ysong 2023. 7. 23.

고린도후서 11:22~33

자랑은 부풀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랑하면서 사는 것 같습니다.

자녀, 직장, 이력을 은연중에 자랑합니다.

인스타로 일상을 자랑합니다.

아픈 것도 자랑합니다.

심지어 불법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지만, 마음이 가난해서, 허전해서, 공허해서 자랑합니다.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은 말도 많습니다.

목사도 교회 자랑, 성도 자랑합니다.

저처럼 자랑할 것이 별로 없으면 듣는 것을 잘합니다.

제가 잘 들어주니까 자랑하다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저에게 상담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자랑할까요?

왜 부풀릴까요?

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높게 보이도록, 있어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권세를 가진 자처럼 말하거나, 막 나가면 뭔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더 자극적이고, 충동적으로, 인간적인 자랑으로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직접 보지도, 만나보지도 않았는데 용납합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그를 따르고, 추종합니다.

 

교린도는 자신을 자랑하는 거짓 사도들로 차고 넘쳤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이 그들을 용납했습니다.

한국교회 안에서도 이런 분들이 차고 넘칩니다.

언변이 뛰어나서 많은 사람이 속아 넘어갑니다.

영상 시대가 되면서 이런 일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자랑이 있을까요?

바울의 자랑을 인정한 것은 아닐까요?

나도 바울처럼 자랑할 수 있을까?

 

속상한 것이 바울에게 있습니다.

저도 이런 속상함을 갖고 있습니다.

성도가 거짓되고 과장된 자랑에 속아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4절 하반절에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19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너희가 용납하는구나

고린도교인들은 이들을 왜 용납했을까?

그들이 바울보다 더 복음을 더 전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6절의 말씀처럼 바울은 언변이 뛰어나지 않습니다.

외모는 형편이 없습니다.

인기 강사에게 주어진 사례도 받지 않습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우리 교인들만 빼고, 제가 열심히 한 주 동안 말씀을 묵상하고 씨름해서 복음을 전해도 언변이 뛰어나지 않기에, 교회가 작아서, 복음에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적어도 사도란, 복음이란, 성공한 목사란 이렇다는 육신의 기준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성이 차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 화려하고, 더 있는 것처럼 보인 그들을 용납했던 이유입니다.

자기의 기준에 따른 결과입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거짓사도를 이렇게 용납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이 그들에게 속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5절에 나는 지극히 크다고 자랑했습니다.

자신을 부풀렸습니다.

의의 일꾼이라고 포장했습니다.

13~15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절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의인으로 가장하기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광명의 천사처럼 말했기에 속아 넘아갔습니다.

거짓을 분별하지 못해 속아 넘어갑니다.

사람은 동기와 중심을 보지 못하기에 속아 넘어갑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이 자신을 자랑해서 인기를 얻고, 이익을 챙기려는 거짓교사들의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속아 넘어가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바울은 이런 거짓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들이 제왕처럼 행동하기에 속아 넘어갑니다.

그들은 제왕처럼 행동했습니다.

20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종으로 삼았습니다.

영혼과 육신의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심지어 뺌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뺌을 때리는 행위는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인들을 농락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이 이것을 능력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을 영적인 권위로 받아들였습니다.

흔히 이단에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교회의 간판을 걸고 있지만 목사가 제왕적으로 행동하는 교회에서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말씀으로 홀로 서지 못하면 농락당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런 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바울이 자랑하게 된 배경입니다.

원래 자랑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울은 그 어리석은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22절부터 자신의 자랑을 풀어 놓습니다.

이것이 무슨 자랑인가?

불쌍한 것이지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이렇게 산다면 잘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자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랑이란?

바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고난은 당연하고, 고난 목록은 자랑할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창피하지만 고난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일꾼의 특징은 고생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이력서입니다.

23-수고, 옥에 갇힘, 매 맞음, 여러 번 죽을 뻔함

24-유대인에게 채벌을 5번 당함

회당에서 때렸습니다.

 

25-로마인에게 채벌을 받음(테장), 로마인들이 태장을 때렸습니다.

유대인이 돌로 쳐서 형을 집행함(루스드라)

배가 파선되어 3번이나 일주일 동안 폭풍 가운데 지냈습니다.

제 친구가 높은 파도를 치는 작은 배에 탔을 때 공포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집채만 한 파도가 갑판을 치면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인생에 한 번만 경험해도 트라우마롤 남는데, 바울은 3번이나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8~9번 항해를 했을 것으로 봅니다.

26절에는 8번 위험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얼마나 위험한 선교여행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27절에는 애쓰고,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은 고난을 보냈습니다.

여기까지 고난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후 더 많은 고난을 겪습니다.

결국 순교에 이르는 고난을 맞이하게 됩니다.

거짓사도들은 고난을 피해 갑니다.

자신에게 유익한 길만 쫓아갑니다.

고난받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부풀립니다.

자신이 유능하기에 고난받지 않는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난을 뚫고 지나갔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보냈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합니다.

바울은 연단을 통해서만 소망을 이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로마서 5:3~4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는 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도, 이사야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방법은 동일합니다.

 

28~29절은 바울의 더 바울다움입니다.

모든 교회를 위해 염려하는 것이 자랑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부모의 마음입니다.

목자의 마음입니다.

같이 아파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자랑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를 드러내고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자랑합니다.

 

바울은 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약점을 자랑합니다.

바울은 부끄러운 일을 이야기합니다.

32~33절입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복음을 전하니까 사람들이 잡아서 죽이려고 합니다.

광주리를 타고 도망갑니다.

원래 바울은 도망가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부딪쳐서 뚫고 지나가는 성격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사건을 정말로 감추고 싶을 정도로 창피한 사건입니다.

 

고난의 용사처럼 이야기하더니 초라한 자기의 모습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고생이 자랑이 될까봐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겁니다.

특수부대를 나온 남자들은 고생했던 군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고생했지만 그것이 자랑이 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더 크게 보일 것을 염려해서 창피한 일을 말했던 것입니다.

위대한 지도자로, 자기 의가 될 것을 걱정해서 약함을 자랑한 것입니다.

희생이 자랑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고생한 것도 자랑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런 유혹을 물리치고 예수님 한 분만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거짓 사도는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거나 약한 것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종이기에 약점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2)몸되 교회를 위해서 자랑했습니다.

3)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예수님만 드러날 수 있다면 고난도 자랑하고 약점도 자랑했습니다.

 

적용) 신앙 때문에 사서 고생해요.

바울은 고난을 자랑했습니다.

그 자랑이 진짜 자랑으로 비칠까 봐 자신의 약점을 자랑했습니다.

예수님보다 자신이 더 높여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랑이든 자랑하는 이를 높이게 됩니다.

간증의 위험성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만 자랑했습니다.

 

신앙 지키려다 고난 겪은 적이 있지요

신앙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손해 본적이 있지요.

참고 견딘 적이 있지요.

바울만큼 아니어도 신앙의 고난 목록을 써 내려가고 있죠.

그 고난이 예수님을 높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바울과 비교할 수 없는 자의 고난에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이 고난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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