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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우리가 예수의 편지입니다

by ysong 2023. 6. 10.

고린도후서 3:1~11

사람을 다양한 비유로 표현합니다.

저 사람은 꽃 같은 사람입니다.

저 사람은 소의 눈을 가진 선한 사람입니다.

저 사람에게는 향기가 납니다.

 

바울은 문제가 해결된 고린도교인들에게서 생명의 향기가 나길 바랐습니다.

고린도교인들에게서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향기가 나길 바랐습니다.

그 향기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 향기는 금방 사라지는 일시적인 향기가 아닙니다.

그 향기는 내 안에 생명인 예수가 있기에 풍기는 생명의 향기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에 대한 표현도 다양합니다.

본문은 고린도교인에 대한 또 다른 표현입니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표현입니다.

이런 표현에 담긴 신앙의 교훈을 배우고자 합니다.

 

추천서는 오랜 역사의 산물입니다.

지금도 다양한 곳에서 추천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학에 입학하려면 반드시 추천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목사님들을 청빙하는 교회들도 추천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력서를 제출할 때도 존경하는 두 분의 목사님으로부터 추천서를 받아 첨부하라고 합니다.

제가 신학대학에 들어갈 때 노회의 추천서를 받아 학교에 제출했어야 했습니다.

 

종이로 된 추천서를 쓰지는 않지만 여러분들도 추천서를 씁니다.

간혹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을 소개하는 경우입니다.

이처럼 추천서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하게 쓰입니다.

 

바울도 추천서를 쓴 적이 있습니다.

바울은 겐그리아 교회 뵈뵈집사를 로마에 있는 교회에 소개하기 위해 추천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쓴 편지는 오네시모를 용서하라는 추천서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로마 시대부터 지금까지 추천서는 다양한 형태로 쓰이고 있습니다.

사람을 믿을 수 없기에 생긴 인류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 바울은 그동안 쌓인 오해를 하나하나 풀어가고 있습니다.

추천서의 문제도 그중 하나입니다.

추천서는 바울의 사도권과 직결됩니다.

예루살렘 출신 율법주의자들이 고린도교회에 방문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산헤드린공인회에서 써 준 추천서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간혹 예수를 믿지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유대주의적 기독교인들도 추천서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당시 추천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신원증명서와 같이 이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추천서를 가지고 다녀지 않았습니다.

이방인 전도를 좋게 보지 않는데, 누가 추천서를 써 주겠습니까?

바울이 16개월 동안 고린도교회를 개척하여 세워가면서 추천서를 보여 준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학위나 목사 증명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울과 고린도교인들과 갈등과 오해가 생기면서 추천서에 대한 말들이 나왔습니다.

바울은 말도 잘 못하고, 가르침도 조금 다른 것 보니까 이상하더니, 추천서를 본 적도 없다는 불신의 말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전한 복음까지 의심했습니다.

몇몇 사람에서 시작된 의심이 갈수록 확산하였습니다.

바울을 사도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1절은 그동안 추천서와 관련된 사도권에 대한 오해의 배경입니다.

사람의 추천으로 나의 사도권을 증명할 필요가 있느냐?

나는 다른 추천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추천서를 가지고 다니지 않지만 편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표현이 2절에 너희는 우리의 편지가 아니냐?

너희의 변화된 삶이 우리의 추천서가 아니냐?

거짓 교사들은 서류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그 종이로 된 추천서가 사람을 변화시키더냐?

종이가 아니라 너희들이다, 변화된 여러분들이 추천서입니다.

변화된 성도가 추천서입니다.

변화된 삶의 이야기가 보증서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너희=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죽은 종이가 아니라 살아 있는 편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감출 수가 없습니다.

뭇 사람이 알고 있는 바라

돌아다녀서 모든 사람이 보고 읽고 느낍니다.

사람을 만나고 행동하기에 숨길 수가 없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통해 예수님이 왜곡될 수 있고, 바르게 전할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사람들이 너희들을 보고 있지 않니?

너희들의 변화된 삶을 보고 있지 않니?

너희들이 나의 추천서입니다.

2절에서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고 했는데, 3절에서는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보여 준 편지입니다.

우리로 말미암아의 표현에 알 수 있듯이 바울이 도구가 되어 예수의 마음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바울은 필사자입니다.

바울은 원작자에게서 받아서 성도들에게 썼습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는 성도들이고 필사자는 바울입니다.

성도를 보니까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성도들을 보니까 바울이 어떤 일꾼인지 알게 되고, 성도들을 보니까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에, 무엇으로 섰기에 이렇게 다를까요?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일반편지는 종이에다 기록합니다.

살아 있는 편지는 마음에 기록합니다.

일반편지는 잉크로 기록합니다.

살아 있는 편지는 성령이 펜을 들어서 마음에 씁니다.

일반편지는 사람이 습니다.

살아 있는 편지는 그리스도께서 씁니다.

가슴 속에 성령이 펜이 되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구약의 인물 중에 주인의 편지의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 있습니다.

창세기 24장에 등장한 아브라함의 종입니다.

아브라함은 손님을 잘 대접했습니다.

종은 자신이 우물 곁에 있을 때 물을 떠서 주는 여인을 선택하겠다고 기도합니다.

종은 주인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원하는 꼭 맞는 여자를 알았던 것입니다.

기도대로 종에게 우물물을 대접한 여인이 리브가입니다.

리브가의 집에 초대를 받아 라반의 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종은 라반에게 이삭의 며느리를 얻기 위해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리브가가 종을 따라 나섭니다.

리브가에게 신뢰감이 생겼습니다.

종이 이 정도라면 주인을 보지 않아도 알겠다는 신뢰를 하게 되었습니다.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메신저가 더 중요합니다.

일반 추천서도 내용과 실력이 불일치하면 오래 못 갑니다.

특히 살아 있는 추천서의 불일치는 심각하게 만듭니다.

뭇 사람들은 성도가, 바울이, 그리스도가 말하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거짓말로 들리고 거부감이 생겼습니다.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수정해서 교회가 좋은 것이라고 정정하기엔 처음보다 수십배의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쓴 편지입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변화됐지?

그 변화가 예수님은 누구인가를 보여 주는 편지입니다.

변화는 그리스도가 바울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쓴 추천서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마음에 새겨야 변화됩니다.

예수를 믿었는데, 변화가 없다면 그는 아직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편지는 얼굴의 주름도 펴줍니다.

예수의 편지는 마음의 주름도 펴줍니다.

우리의 마음에 새 영을 부어주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6:26~27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새 영을 부어주셔서 딱딱한 마음을 기경합니다.

옥토 같은 마음으로 변화시킵니다.

새 영으로 충만할 때 말씀에 따라 살게 됩니다.

그래야 변화됩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 추천서를 새 언약의 일꾼으로 표현합니다.

추천서는 직분과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명과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엣 언약의 일꾼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모세에게 준 율법의 직분과 사도에게 주어진 영의 직분을 비교합니다.

6절입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12절은 새 언약의 일꾼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옛 언약과 비교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추천서=편지=새 언약의 일꾼=영의 직분=의의 직분입니다.

반면 종이에 쓴 추천서=율법 조문의 직분=돌에 새긴 직분=정죄의 직분입니다.

율법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정죄의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옛 언약의 맡겼기 때문입니다.

수건으로 모세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이렇게 심판의 직분도, 옛 언약의 직분도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나 새 영의 일꾼은 비교할 수 없이 영광스럽습니다.

마음에 새긴 새 언약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누가 모세에게 수건을 써 달라고 했습니까?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것은 자신의 죄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를 가린 결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었습니다.

죄로 덮여 있기 때문에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수건이 벗겨지만 주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쓴 수건이 벗겨져야 합니다.

14-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17-주의 영이 계실 때

18-주의 영광을 볼 때 수건이 벗겨집니다.

 

구원 받았기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심판을 알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영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셔서 지키게 해 주셔서 살게 합니다.

 

 

적용) 변화된 삶이 편지입니다.

변화되지 않으면 제대로된 신앙생활을 한 것이 아닙니다.

변화된 삶으로 살아내면 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편지입니다.

가족, 동료에게 우리를 보면 예수님이 보이는 편지입니다.

 

우리가 주의 영광을 보니까, 우리의 눈동자에 예수가 비칩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눈동자에 비친 예수를 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의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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