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1~11절
고린도교회는 은혜도 많고, 은사도 많았지만 문제도 그에 못지않았습니다.
한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한 성도가 온전하게 서기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주부터 고린도후서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권면이 담겨져 있습니다.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겪은 고난과 위로, 고린도교인들과 겪은 갈등이 담겨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와 분위기가 다릅니다.
후서를 이해하려면 배경에 대한 성경공부를 조금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고린도교회의 이야기를 듣고 고린도전서 써서 디모데 편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교린도교인들이 편지를 읽고, 디모데의 권면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교인들 간에 파벌과 차별을 계속했습니다.
바울이 급한 마음에 에베소에서 배를 타고 고린도로 건너갑니다. .
2:15절입니다.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바울이 여기서 고린도교인들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했습니다.
바울이 심하게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에 돌아와서 다시 방문하려다가 계획을 바꾸게 됩니다.
방문 대신 징계와 회개를 촉구하는 편지를 써서 디도 편으로 보냅니다.
마음이 불편했던 바울은 이 편지를 눈물로 쓴 편지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2:3~4절입니다.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절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편지를 가지고 간 디도는 고린도교회에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드로아에 도착했는데 복음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바울이 디도를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오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바울은 복음도 전하지 않고 마게도냐로 건너갑니다.
고린도후서 2:12~13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절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마게도냐로 건너간 바울은 쭐레쭐레 걸어오는 디도를 만나게 됩니다.
바울은 디도로부터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고 안정을 되찾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도를 통해 들은 소식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돌보고 계신다는 확신에서 오는 위로였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마게도냐에서 쓴 편지가 고린도후서입니다.
고린도후서의 시작이 바로 위로를 언급한 배경입니다.
본문의 짧은 절에 위로라는 단어가 10번이나 나옵니다.
같은 단어가 반복되는 문장은 좋은 문장이 아닙니다.
바울답지 않은 서툰 문장이지만 바울이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알게 됩니다.
디도로부터 위로를 소식을 듣고 바울의 첫 번째 반응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자신에게 공로를 돌리지 않습니다.
3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그동안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편지를 보내고, 직접 방문하고, 디모데와 디로를 보내면서 얼마나 많은 고심의 밤을 보냈습니까.
그런데 고린도교회가 회복되었다는 소식에 모든 위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완전하고 풍성하기에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모든 문제의 해결하는 모든 위로 하나님입니다.
바울은 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우리들도 찬양하라고 합니다.
모든 위로 하나님을 오늘 아침에 만나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이 행하시는 위로의 능력을 배우고자 합니다.
1) 고난과 위로는 하나의 패키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위로자가 될 수 있을까요?
3~11절까지 위로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단어가 힌트입니다.
환난과 고난이라는 단어가 8번이나 나옵니다.
환난을 겪고 고난을 겪은 사람이 위로를 받게 되고, 위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환란 중에서 위로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4절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환난이 있는 곳에 위로가 있습니다.
환란이 많으면 위로도 많습니다.
바울이 자신이 겪은 고난을 나열한 이유입니다.
8~9절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이었습니다.
살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고난이었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고난입니다.
바울의 고난은 이것뿐만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11:23~27절의 고난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절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절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절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은 이런 고난과 환란에서 주님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고난과 위로는 하나로 묶인 패키지입니다.
환란 가운데 위로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 그 현장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위로는 나에게만 그치지 않습니다.
나의 위로는 환란 중에 있는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위로가 됩니다.
6절입니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바울이 받은 위로는 바울에게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환란 중에 있는 자들에게 위로가 됩니다.
바울 사도도 그랬는데, 나에게도 하나님의 위로가 있겠구나.
용기를 갖게 되고 실제로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됩니다.
내가 고난과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고난과 위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환난을 받고, 위로를 받았기에 위로의 통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슬픔이 있는 곳이 성지입니다.
고난을 겪은 사람은 고난 겪은 사람을 위로합니다.
베드로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떠난 사람을 찾아가서 위로했습니다.
형제여 나는 주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를 위로해 주셔서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위로가 많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도마는 신앙에 의심하고 회의가 찾아온 형제를 만났습니다.
형제여 나는 의심이 많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며 나를 다시 세워주셨습니다.
도마는 이런 위로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견딜 수 없는 모욕, 고난, 절망 속에서 위로를 받았고 위로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위로를 받은 것처럼 나도 그렇게 위로를 받게 되겠구나.
우리가 이 말씀으로 위로받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현실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위로를 받음으로 위로자가 됩니다.
우리에게 환란을 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환란 당한 자를 위로하는 성숙한 위로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암에 걸린 목사님이 암 환자를 위로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씨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유전적으로 4살 때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것이 다르니까 소리 내는 것이 달랐다고 합니다.
단점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도 작은 교회를 목회하니까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분들을 간혹 위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저도 겪어 봤는데, 하나님이 살려 주시더라고요.
저도 그런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엎드렸더니 회복시켜 주시더라고요.
여러분 환란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환란 중에 있는 형제를 위로하시는 분이 되길 바랍니다.
3) 주님의 위로는 넘치는 위로입니다.
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예수님도 고난받았기에 나도 고난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위로받았기에 나도 위로받습니다.
바울이 고난받았기에 나도 고난받는 것입니다.
바울이 위로받았기에 나도 위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로는 넘치게 됩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위로는 무한대로 확대됩니다.
이 하나님의 위로는 복음에 대한 확신으로 발전합니다.
10절입니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고난은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소망이 끝났다는 지점에 이르게 되었을 때, 사망의 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상태에 이르렀을 때,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건져 주셨고, 지금도 건져주시고, 앞으로 건져 주실 것입니다.
이 확신은 환란 가운데 위로 받은 자가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은 확신은 과거로부터 시작하여 현재 누리는 것입니다.
미래에 확신으로 나아가고 있기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바울은 디도가 전한 소식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번 뿐만 아니라 여러번 주님의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주님의 위로를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주님의 위로로 위로받은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됩니다.
주님의 위로는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적용) 고난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은 자가 위로자가 됩니다.
환난과 고난이 있기에 위로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보내신 분이 보혜사 성령님입니다.
곁에 와서 돕기 위해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위로를 경험한 사람은 위로하는 자가 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곁에 가서 도와주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위로자든, 상담자든, 전도자든 누군가에게 위로하는 위로자가 됩니다.
일으켜 세우는 도움을 주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위로 받은 자만이 위로 할 수 있습니다.
나의 고난은 누군가의 위로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열매는 누군가에 다시 위로가 됩니다.
고난 가운데 받는 위로가 큽니다.
위로가 없으면 고난이 해석되지 않습니다.
고난은 백신과 같습니다.
면역력과 함께 오는 위로입니다.
고난을 통과한 누군가의 위로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위로를 경험하면 새로운 신앙의 단계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똑똑한 자는 남에게 상처를 줄 뿐입니다.
위로자는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나의 고난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위로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고난을 통과해 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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