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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완성)

사람을 세우는 신앙

by ysong 2023. 5. 1.

고린도전서 16:10~20

이번주로 고린도전서를 마칩니다.

다음주부터 고린도후서를 마져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 서신서의 마지막 부분은 안부를 묻는 인사로 끝을 맺습니다.

성도들 간이 나누는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참 좋습니다.

16장에 등장하는 이름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나의 이름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신앙 성숙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드러납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사람을 나이, 학벌, 직업에 따라 차별하지 않습니다.

늘 겸손하게 섬김으로 사람을 대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 부분에 미숙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 편으로 편지를 보내면서 고민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들의 미성숙한 태도는 10~12절에 디모데와 아볼로에 대한 이야기로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디모데를 특별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10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바울이 걱정한 것은 디모데가 젊은 나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경험도 미천합니다.

심각한 교회 문제를 해결할만한 담대함도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디모데를 대우해 주라고 부탁합니다.

디모데가 두려움과 걱정없이 지내도록 보살펴 달라고 부탁합니다.

거리낌 없이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디모데도 나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로 대우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를 업신여기지 마세요.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게 해 주세요.

바울이 이렇게 간곡한 어조를 부탁한 것은 평소에 사람을 어떻게 대우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과 고린도교인이 어떻게 대우하는가에 대한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자신과 동등한 위치로 높여주고 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경험이 비천하다고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아불로도 그렇게 대우했습니다.

“12절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고린도교인들은 아볼로가 다시 고린도교회에 돌아와서 사역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바울은 아볼로에게 여러 번 가라고 권했습니다.

아볼로가 지금은 갈 뜻은 없다고 합니다.

기회가 있으면 간다고 합니다.

 

바울은 아볼로에게 돌아가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아볼로의 판단을 존중해 주고 있습니다.

 

아불로는 왜 이런 판단을 했을까요?

본인이 지금 가면 파당 싸움이 커질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볼로의 지혜로운 판단입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바울과 아볼로 간에 어떤 막힘도 없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파당을 지어 갈라졌지만 바울과 아불로의 사이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서로 존중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와 아볼로를 동등한 동역자로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고 있기에 가능합니다.

바울의 신앙성숙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성도와 부교역자가 성공한 목사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습니다.

외부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하지만 함께 사역한 부목사들은 그렇게 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가까이 함께 하는 부목사들의 평가가 중요합니다.

함께 하는 부교역자에게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목회자가 진정으로 성공한 목회자입니다.

 

우리 장로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에게 듣기 좋으라고 하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로님은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

장로님은 자주 목사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해야 한다고 말하십니다.

그것이 복 받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깊은 깨달음에서 나오는 장로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성숙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데로 시작하면 신앙은 자라지 못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든 아볼로든 동등한 사역자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어떤 신앙의 품을 갖고 섬겨야 할까요?

13~14절입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4절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바울은 5가지 동사로 신앙의 폼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1) 깨어나야 합니다.

자기 우물에서 깨고 일어나서 영원을 바라본 순간부터 달라집니다.

깨어 있는 있을 때, 영적인 분별력을 갖게 됩니다.

무엇이 옳고 그름을 알게 됩니다.

흐려진 분별력으로 세상을 보면 실수합니다.

말씀에, 교회에 대해서는 졸고, 세상에 대해서는 깨어 있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실패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했는데, 제자들은 졸았습니다.

제자들은 졸았을 때 칼을 뽑고, 도망가게 됩니다.

마태복음 24:42~43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절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깨어 있어야 영적으로 악한 세력이 침투하지 못합니다.

 

기도하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4:2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깨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가능합니다.

 

깨어 있어야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살전 5:6~8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7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절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입니다.

의식이 맑으니까 분별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정신 차리니까 믿음, 사랑에 속하게 됩니다.

 

2)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말씀, 복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신념, 가치에 서 있으면 흔들리게 됩니다.

우리는 중요한 가치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바른 믿음은 예수님이 나를 구원했다는 것을 믿음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3) 남자다워라

표현상 남자라고 했지만 사람다워라는 의미입니다.

용기를 가져라,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4) 강건하라.

의지를 키워서 강해저라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서 강하게 되어져라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하라는 의미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 1:6~7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절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이 말씀을 읽고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5) 사랑하라

사랑이 가장 어렵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쑈가 됩니다.

 

이 권면을 실천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울의 첫 열매인 스데바나입니다.

15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스데바나는 성도를 섬기기로 했습니다.

5가지 신앙으로 무장한 사람은 섬깁니다.

섬김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교회는 대접받는 곳이 아니라 성도를, 교회를 섬기는 곳입니다.

 

스데바나의 집안 전체가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증거는 그가 섬기기로 결정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수고하다=지치도록 일하는 것입니다.

스데바나는 사람이 보든 안 보든 수고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타인의 부족을 채워줍니다.

17~18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입니다.

브드나도는 행운이라는 뜻입니다.

아가이고는 아가야지역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주로 노예들에게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스데바나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이들을 해방시켜 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도 예수님을 믿게 되어 성도가 되어 교회를 섬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비를 모아서 부족함을 채웠습니다.

소리없이 부족함을 채웠습니다.

누군가의 부족을 보고 채워주는 사람입니다.

내 것을 채우면 평생 모자랍니다.

타인의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쉼을 안겨줍니다.

그 사람 만나면 마음이 편안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됩니다.

 

세 번째는 순종의 사람이 됩니다.

19절에 아굴라와 브리스가와입니다.

말씀을 가르칠 정도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좋은 부부는 좋은 교회입니다.

그들의 집은 늘 교회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에서도, 에베소에서도, 로마에서도 그들이 머문 곳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적용)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섬길 때마다 생각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7: 7~10“7절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절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절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절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내가 그 종이라면 이 말씀에 어떤 마음이 들까요?

서운하고 섭섭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아직도 지신을 종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종이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제대로 예수 만난 사람의 말입니다.

이전 남양주성실교회는 말이 아닌 발로, 손으로 섬기는 일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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