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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완성)

헌금은 은혜가 흘러가는 통로

by ysong 2023. 4. 23.

고린도전서 16:1~9

가끔씩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분들은 말씀을 알고 싶어 하고, 말씀에 관한 질문도 많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신앙생활을 잘하고 싶었습니다.

결혼, 이혼, 재혼에 관한 질문, 우상의 제물을 먹어야 하느냐에 관한 질문, 애찬에 관한 질문, 은사에 관한 질문, 부활에 관한 질문까지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에 전반에 걸친 질문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목회적인 관점에서, 아버지가 자녀를 가르치듯 사랑으로 권면했습니다.

 

목사들이 주일설교의 본문으로 고린도전서를 부담스럽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는 분파와 음란과 같은 부정적인 내용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사실을 고린도전서를 시작하고 몇 주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주일 설교가 소망이나 희망을 전해야 하는데, 부정적인 내용들을 다루게 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말씀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까 은혜의 말씀들로 가득했습니다.

어떤 내용의 말씀이 기억납니까?

20회 가까이 말씀을 나누었는데, 저는 타인을 위한 절제에 관한 말씀, 사랑은 은사를 빛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면 그 말씀을 꽉 잡으세요.

그 말씀에 따라 살아보세요.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말씀이 나를 바꾸고, 내 생각과 의식을 바꿉니다.

나의 처지와 환경을 넘어 주님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이기는 힘과 능력이 생깁니다.

매주 그런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저도 그 은혜를 나누려고 최선을 다해 말씀을 준비하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먼저 16장의 분위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6장은 1~15장과 전혀 다른 분위기입니다.

책망과 권면을 하다가 갑자기 연보를 부탁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너무 다른 분위기여서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가만히 묵상하니까 이 다름이 은혜입니다.

바울이 15장까지 어떤 마음으로 권면하고 책망했는지 보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이 밉고 싫었다면 연보를 부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돈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을 겁니다.

바울은 권면과 책망 중에도 사랑을 잃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오늘은 헌금설교가 됩니다.

헌금설교를 자주 하지 않았습니다.

10년 동안 10번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남양주성실교회는 헌금생활을 너무나 잘하고 계시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 혹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헌금생활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사랑과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나눔, 베품, 섬김으로 표현되는 신앙원리에 따른 신앙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언제부타 연보를 했을까요?

1884년 소래교회가 처음 연보를 시작했습니다.

1901920일 정동예배당에서 제1회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에서 연보를 결의합니다.

제중원 환자를 돌보기 위해 연보를 하기로 결의합니다.

1907917일 평양 장대현교회가 선교사의 사례와 용도를 위해 연보 하기로 합니다.

제주도에 파송한 선교사를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한국교회의 연보는 은혜가 흘러가는 통로로 시작되었습니다.

 

최초의 연보는 안디옥교회가 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은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연보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혹독한 흉년으로 인해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구제하기 위한 연보=구제헌금을 부탁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연보를 고린도교회 뿐만 아니라 여러 교회에 부탁했습니다.

갈라디아교회에게도 부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갈라디아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사람을 통해 부탁 한 것으로 보입니다.

연보를 부탁한 것은 바울답지 않습니다.

바울은 교회들에 짐이 되지 않으려고 자비량으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빌립보교회의 루디아와 같은 이들의 후원도 있었지만 대부분 스스로 경비를 충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도권에 대한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절제하면서 지냈습니다.

 

바울은 거침없이 연보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1절입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왜 그렇게 하라고 말했을까요?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서 15:25~27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연보는 이방인교회가 복음의 빚진 지로서, 신앙의 동역자로서, 어려움에 있는 예루살렘교회와 형제의 정을 나누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교회 교인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가문에서 쫓겨나거나 사람 취급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극심한 흉년으로 예루살렘 지역에 있는 교인들은 극심한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 헌금은 받은 은혜를 나누는 교제입니다.

연보는 빚을 갚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을 나눠 받은 생명을 나누는 것입니다.

영적인 빚을 육적인 것으로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보는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는 교제가 담겨 있습니다.

헌금은 이런 의미와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이 헌금을 강조한 이유는 교제에 있습니다.

이방인교회 성도와 예루살렘교회 성도 간의 교제에 있습니다.

교제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과 식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이 볼 때 바울에 대해 못마땅한 것이 많았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니까 낮춰보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헌금을 거절하면 이방교회 자체를 거절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무너지게 됩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사도행전에서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사도행전 20:23~24절에 비장한 각오를 합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연보를 전달하는 것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예루살렘교회과 이방인교회가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영적인 은혜를 받은 이들이 육적인 것을 나누는 교제입니다.

헌금 중 많은 금액이 목회자의 사례비로 쓰임니다.

이 원리에 따른 것입니다.

사사기는 이 원리가 깨진 현실을 보여줍니다.

말씀을 가르쳐야 할 레위인들이 타락한 동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헌금의 여러 의미 중 하나를 실천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2) 헌금은 정성을 모아서 드리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예배로 모일 때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두라고 했습니다.

정성스럽게 모아서 드리는 것입니다.

옛날 어른들은 돈을 다리미로 펴서 깨끗하게 드렸습니다.

그만큼 마음을 담았다는 것입니다.

 

예배와 헌금은 하나로 묶인 신앙 행동입니다.

애찬과 성찬이 하나로 묶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구약에 5가지 제사와 제물이 함께 드려지는 것과 같습니다.

 

헌금은 강요하거나 강조할 대상이 아닙니다.

믿음의 결과로 헌금은 이뤄지는 것입니다.

헌금은 자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모아서 드리는 것입니다.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을 모아서 드려지는 것입니다.

예배가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시간이라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받음은 감사로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세상과 다른 존재 방식의 공동체입니다.

받은 것이 감사해서 떼어 놓는 것입니다.

 

헌금은 수입에 따라 정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하지 않습니다.

계획적이고, 정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수입에 따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대로 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특별헌금이 참 많습니다.

70여 종류가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보통 교회를 건축하면 특별헌금을 강요합니다.

이를 위해 특별부흥회를 열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헌금 행위를 망가뜨립니다.

수입에 따라, 정규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고린도교회는 매주 첫날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입니다.

안식일이 끝나는 토요일은 끝날이고 다음날이 첫날로 주일입니다.

신약시대에 주일에 예배 모임을 가졌습니다.

사도들의 권위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교회의 창립직원으로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성경도 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자고 주장하는 분들은 구약의 권위를 더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안식교와 여호와증인, 안산홍증인회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태도는 계시의 점진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시간이 흐를수록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은 예배와 함께 헌금을 드렸습니다.

예배와 헌금은 보이는 신앙고백입니다.

 

3) 헌금은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3)

마음이 먼저이어야 합니다.

마음을 쌓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보로 구제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지갑이 열리기 전에 마음이 먼저 열려야 합니다.

그들을 향한 마음으로 모아서 기도하고, 연보하는 것입니다.

 

헌금은 은혜를 가지고 가는 신앙행위입니다.

인정한 사람을 통해서, 믿을만한 사람을 통해서 그 일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흩어졌지만 그리스도의 몸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헌금을 전달하는 것을 은혜를 가지고 가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은혜를 가지고 간다는 표현은 참 멋진 정의입니다.

참 아름다움 표현입니다.

 

헌금은 은혜를 나누는 통로입니다.

헌금은 그리스도로 만남을 나누는 은혜의 통로로 쓰이는 것입니다.

헌금은 부담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헌금은 성도의 아픔과 고통을 돌아보고 나누면서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신앙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도 받기도 하고 나누기도 하면서 은혜를 쌓고 있습니다.

 

저는 말씀을 전하면서 돈 이야기를 자제하려고 했습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인데, 자유로울 수 없지만 억지로 돈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리 자주 헌금에 관한 설교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을 따라가다가 헌금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본문에서 말씀하신 뜻을 전할 겁니다.

 

주님이 저에게 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제정이 힘들어져서 주님이 닫게 되면 닫으라는 사인으로 알고 순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신앙의 간증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끊임없이 보내주는 은혜를 맛보며 지내왔기 때문입니다.

복음만 선포되어야 한다는 확신하게 된 이유입니다.

영적인 질서가 세워지는 것이 먼저입니다.

마음이 먼저이고, 신앙고백이 먼저입니다.

 

적용) 은혜를 나누는 헌금생활을 합시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시간과 돈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시간과 돈을 어디에 많이 쓰는지 생각해보세요.

헌금은 물질을 넘어서서 사랑, 마음, 신앙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매주 세상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고백을 드리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헌금은 부자가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분량에 따라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이 인색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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