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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완성)

부활에 관한 두 개의 질문

by ysong 2023. 4. 17.

고린도전서 15:29~34

지난주 부활주일로 지켰습니다.

거기서 뵈오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는 나누었습니다.

거기는 제자들은 부활신앙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됩니다.

거기서는 변화의 장소이고, 사명의 장소입니다.

부활신앙은 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인 중에도 몸이 다시 살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를 지탱한 풀라톤과 헬라철학의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플라톤의 영혼불멸설은 몸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한 종교적으로 율법만을 강조하고, 몸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당시 제사장과 사두개파의 영향 탓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과학주의와 이성주의의 영향으로 부활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님의 부활을 다룬 부활장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싶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한 부활의 비밀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번 기회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부활신앙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주장한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게 부활에 관한 두 개의 질문을 합니다.

12절과 35절이 질문의 내용입니다.

두 개의 질문 내용은 부활이 없다는 것과 어떤 몸으로 부활하느냐입니다.

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35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바울은 두 개의 질문에 어떻게 답변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도 부활에 관한 비슷한 질문이 있을 겁니다.

바울이 어떻게 설명한지를 살펴보고, 우리들의 의심과 질문에 답이 되길 바랍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의 복음은 모두 허위 위에 세워지게 된다고 전제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기독교 진리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13~19절의 내용입니다.

13, 15, 16절에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14절에 자신이 전파한 것도 헛것이 된다.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도 헛것이 된다.

15절에 바울 자신은 거짓말을 전하는 거짓 증인이 된다.

그동안 사도로 온갖 고난과 역경의 삶이 헛짓이 된다.

바울은 자기가 만난 예수를 그리스도를 전했기 때문입니다.

17절에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된다.

18절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순교자가 불쌍하게 된다.

주기철목사님, 손양원목사님을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들이 불쌍하게 됩니다.

19절에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도 불쌍한 자가 된다.

그들 뿐입니까?

우리들도 불쌍하게 됩니다.

2천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헛것을 믿고 헛된 죽음에 이르게 된 꼴이 됩니다.

사람은 국가나 의를 위해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을 위해 죽지 못합니다.

부활이 사실이고 진짜이기에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믿고 따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이 있다는 실제적인 증거입니다.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헛되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부활은 단순히 개인적인 믿음이나 신념을 넘어섭니다.

우리는 절대로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자가 아닙니다.

부활은 성경의 예언대로 성취됐고, 부활을 목격한 증인이 있습니다.

 

바울은 부활이 성경대로 성취된 사건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3~4)

자신이 만들어낸 논리나 주장이 아니라는 겁니다.

부활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한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계획대로 성취된 사건입니다.

이것을 굳게 붙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이 있습니다.

한 두 명이 아닙니다.

베드로, 12제자, 500여명 제자, 야고보, 바울이 목격한 증인입니다.

이 밖의 증인 중에 죽은 자도 있었고, 바울이 편지를 쓸 당시 살아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바로 들통 났을 겁니다.

제자들이 순교까지 당하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기에 부활은 분명하고 확실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아담은 사망의 첫 열매입니다.

첫 열매는 그 이후에 이어지는 모든 열매를 대표합니다.

 

22절에 안에서가 중요합니다.

죄를 범한 아담의 피를 이어받은 자이기에 사망이 왔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인하여 영적으로, 보혈로 연합하여 모든 사람이 살아납니다.

아담-- 죽음입니다.

그리스도--생명입니다.

이 도표를 그려주면서 사망과 부활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부활합니다.

어떤 순서에 따라 부활할까요?

23절에서 밝히고 있는 부활의 순서는 예수 그리스도-죽은 자-산자 순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세상은 종말에 이르게 됩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악이 없어짐으로 죽음이 없어집니다.

바울은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부활은 이렇게 명백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어떤 몸으로 부활하느냐입니다.(35)

부활할 때 어떤 몸을 갖게 될 것이고, 우리의 영혼이 땅의 삶에서 만난 사람들을 어느 정도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으로 부활이 있기 전까지 현재는 낙원에서 영혼의 상태로 존재합니다.

 

질문의 내용은 죽은 자들이 어떻게 사느냐?

어떤 몸으로 오느냐?입니다.

죽는 자들이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답변이 36~38절입니다.

씨와 형체의 비유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씨가 죽지 않으면 살지 않습니다.

죽으면 살겠고,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씨도 죽어서 살아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은 마땅히 죽어서 살아나지 않겠느냐고 묻습니다.

 

어떤 몸으로 오느냐?에 대한 대답이 39~49절입니다.

자연계도 다르듯이, 동식물이 다르듯 부활의 몸도 다릅니다.

세상의 것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나팔꽃 모양과 씨의 모양은 완전히 다릅니다.

꽃을 심는 것이 이나라 전혀 다른 씨를 심습니다.

씨와 전혀 다른 나팔꽃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주신 전혀 다른 몸을 가집니다.

 

우리도 죽을 몸으로 심고, 영적인 몸인 죽지 않을 몸으로 살아납니다.

우리는 죽음으로 육체는 해체될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땅에 묻혀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전혀 다른 형체를 갖고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의 몸은 다를지언정 전과 같은 사람의 부활입니다.

부활은 사멸과 연속성으로 설명됩니다.

 

49절의 모습으로 몸의 부활을 이룹니다.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최고의 아름다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게 될까요?

어떤 면에서 다를까요?

부활신앙이 능력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첫째는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기에 누구에게나 두렵습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은 여행을 떠날 때 공항의 게이트를 통과하는 것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천국이라는 나라를 들어가기 위한 죽음의 세관을 통과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기는 겁니다.

 

부활신앙은 날마다 죽을 수 있도록 합니다.

날마다 죽는 자의 생활입니다.(32~34)

저 주는 삶, 절제의 삶,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날마다 죽는 겁니다. 그러면 날마다 죽어야 날마다 살게 됩니다.

옛사람이 죽는 일은 매일매일 우리 안에 일어나야 합니다.

옛사람은 매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감격을 누려야 합니다.

 

제가 잘 변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날마다 죽지 못했습니다.

내가 누구인데, 내가 과거 이런 사람이었는데, 우쭐거림, 거들먹거림, 어깨에 힘이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옛사람이 살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옛사람이 죽었습니까?

밀알의 죽음은 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밀알의 죽음은 전혀 새로운 시작입니다.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확증해 주는가?

부활입니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무엇으로 자유하게 됩니까?

부활입니다.

눌림에서 자유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적용) 끝이 아름다운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요?

시작이 쉬운가요? 끝이 쉬운가요?

시작이 쉽습니다.

등산해도 알 수 있는데요, 시작이 쉽습니다.

힘도 있고, 길도 쉽습니다.

그러나 끝이 어렵습니다.

지치고 체력도 바닥이 났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끝도 비슷합니다.

부족한 것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잘 살다가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입니다.

후회가 없기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딤후 4:6~8로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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