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둠 속에 빛이 되는 교회
  •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교회
고린도전서(완성)

은사를 땅에 묻어 두지 마세요

by ysong 2023. 3. 12.

고린도전서 12:1~11

예배 시간마다 은혜받는 것은 복 중에서 복입니다.

몸이 피곤해도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근심과 걱정거리가 많아도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육적,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결과입니다.

여러분 예배 시간마다 은혜받기를 바랍니다.

 

고린도교회가 드리는 예배 모임은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가 되었습니다.

11~14장은 예배 중에 일어난 일들로 인해 마음이 상한 사례입니다.

 

지난주는 겉으로 표현된 행동으로 인해 예배 중에 마음이 상해서 은혜를 받지 못한 사례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여자분들이 머리에 너울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

애찬 시간에 더 먹었느냐 먹지 못했느냐?로 예배 시간에 시험이 들었습니다.

 

이번주는 다른 측면에서 예배 시간에 시험에 들은 사례입니다.

신령한 것인 은사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풍성했습니다.

각종 은사로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은사가 도리어 교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예배를 방해했습니다.

은사에 관한 잘못된 이해와 행동으로 인해 영적인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특히 방언의 은사를 받은 분들이 가장 심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중에 갑자기 일어나서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이 일어나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여기에 방언의 은사를 받은 분들은 자신들만이 특별한 은사를 가졌다며 자만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은사가 신앙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에 대한 신앙을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도 각종 은사로 넘쳤습니다.

지금도 신사도운동, 이빨이 아말감으로 변하는 것, 팔이 길러지는 것, 넘어뜨림과 같은 것으로 인해 은사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은사를 강조한 교회에서는 방언 못하면 열등한 교인으로 취급합니다.

은사가 개인적으로, 기복적으로 이용되면서 교인들끼리 시험 거리가 되었습니다.

원래 은사는 유익한 것인데 오히려 분열과 갈등으로 나타났습니다.

고린도교회와 한국교회는 비슷한 시험을 겪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신령한 것에 대해 바르게 알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이 은사를 주신 목적과 원리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지혜와 지식과 같은 영적인 은사뿐만 아니라 위로와 긍휼, 섬김과 자비의 은사에 이르기까지 은사를 주신 이유를 알길 원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각종 은사를 어떻게 관리하면서 사용할 것인가를 깨닫고 적용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먼저 은사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헬라어로 카리스마입니다.

남다른 인물에 대한 표현으로 저 사람 카리스마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카리스마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선물은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은사는 선물처럼 성령 하나님께서 사랑을 담아 값없이 준 능력, 재능입니다.

우리가 대단하거나 자격이 있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자기가 뛰어나서 좋은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주셨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은사를 주신 뜻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바른 것일까요?

첫째 은사는 내 안에 성령이 계심을 드러냅니다.

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교인들은 2절의 말씀처럼 이방인으로 있을 때 우상에 끌려다녔습니다.

과거엔 말 못하는 우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된 지금은 성령에 의해 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은사를 받은 고린도교인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2개 말을 하게 됩니다.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입니다.

예전엔 자신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원수가 있으면 신에게 그 사람을 저주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분열과 파당으로 서로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워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 저주해 줄 것을 부탁드리면 예수님이 그 사람을 저주해 줄 것이라고 오해했던 것입니다.

과거에 여러 신들에게 저주를 부탁했던 것처럼 했던 것입니다.

이젠 성령이 임하면 예수님께 그런 부탁을 드리지 않게 됩니다.

복을 받도록 기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또 하나는 주님이 주인이라는 고백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합니다.

마태복음 16:16~17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성령이 알게 하고 깨닫게 하신 것을 말하는 자가 됩니다.

 

성도들이 상담하는 중에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내가 성령 받았는지? 거듭났는지 모르겠다고 할 때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본문의 말씀을 자주 인용합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한다면 당신 속에 성령께서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은사 중에 은사는 내 안에 성령이 계심을 아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 한 분이 은사, 직분, 사역에 따라 다양한 은사를 주십니다.

4~6절입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절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절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5절에 직분으로 표현된 은사는 디아코니아로 식탁에서 시중드는 자로 봉사자를 가리킵니다.

6절에 사역으로 표현된 은사는 일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28~30절에 열거한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 행하는 자 등등입니다.

 

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그 은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개별적으로 나눠어 주셨습니다.

그 사람을 고려해서 은사를 주셨습니다.

은사, 직분, 사역을 주신 분은 성령 하나님 한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고린도지역 사람들은 재능과 능력을 주는 신이 각각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농사는 세레스, 술은 바카스, 고기잡이는 포세이돈, 응변은 버큐리, 연애는 아프로디테러 신이 주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아직도 이런 인식은 변형되어 뿌리 깊게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산에는 산신령이, 바다는 용왕님이 다스린다고 생각합니다.

천주교에서 그 뿌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돈은 성마태가, 병은 성루카스가 치료해 준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각종 성인을 신성시하여 그 분에게 기도하는 모습에 잘못된 인식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잘못되었습니다.

 

성령 한 분이 은사, 직분, 사역에 따라 은사를 나눠 주었습니다.

서로 좋은 직분, 사역에 대해 자랑하여 예배 시간에 시험들게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셋째 은사는 전체의 이익을 위해 주셨습니다.

은사는 교인 각자의 개인적인 영광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은사를 주신 목적은 교회에 유익을 끼치기 위해서입니다.

7절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은사는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습니다.

은사는 자기를 높이는데 사용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거둬가십니다.

지혜와 지식과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하는 은사를 거둬 가십니다.

이런 영적인 은사뿐만 아니라 물질, 직분, 사역도 거둬 가십니다.

 

각자에게 맞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로마서를 비롯한 신약성경에 29개의 은사가 기록되어 있지만 이 밖에도 은사는 다양합니다.

손을 갖고 일하는 노동자의 기술, 음악, 미술, 요리 등 다양한 기능도 모두 은사입니다.

8~10절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나눠준 대표적인 9가지 은사입니다.

바울이 순서를 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굳이 은사를 순서를 정하자면 고린도교인들이 제일 우선으로 했던 방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제일 먼저 언급했습니다.

말씀을 잘 알아듣는 지혜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말하는 은사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믿음도 은사입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바른 자리를 찾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하나님을 위에 두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을 옆에 두고, 물질은 발밑에 두는 믿음입니다. 물질은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위에 있으면 사람, 물질의 관계가 비틀어집니다.

 

신유, 능력 행함은 초월적 능력입니다.

예언은 맡길 예자로 말씀을 맡아서 말씀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말씀 중심으로 사는 것을 보니 반드시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영을 분별도 은사입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약한 이유가 있습니다.

신앙이 개인적이고 기복적이기 때문입니다.

방언은 여러나라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통역은 그 언어를 해석해 주는 것입니다.

모든 은사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쓰시기 위해 주신 선물입니다.

다양성의 원리를 깨달으면 믿음의 분량대로 은사를 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넷째 은사론은 교회론과 붙어 있습니다.

1~11절은 은사론이고, 12~30절은 교회론에 대한 말씀입니다.

은사와 교회는 붙어 있습니다.

은사는 교회를 세우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12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는 구원받은 받은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피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은사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도 다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입니다.

몸의 여러 지체가 있듯이 여러 은사가 있습니다.

은사와 교회는 다양성과 통일성의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다섯째 은사는 교회의 사역으로 드러납니다.

4가지의 사역입니다.

13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인종간의 갈등, 계층간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사용하도록 은사를 주셨습니다.

14~16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절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데 사용하도록 은사를 주셨습니다.

22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세우는데 사용하도록 주셨습니다.

약해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합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강하게 보이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주님이 보시기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25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분쟁이 없는 공동체를 이루는데 사용하도록 주셨습니다.

주님이 교회의 주인 것을 알면 은사를 주신 목적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일꾼입니다.

일꾼들이 사랑하며, 섬기며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은사를 주셨습니다.

 

적용) 성령님이 주시는 선물인 은사는 개발하면 커집니다.

중요성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은사를 주셔습니다.

각자에 맞는 역할을 하도록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은사를 맡은 자입니다.

계속 쓰셔서 더욱 빛나도록 해야 합니다.

피아노를 잘 치는 은사를 받은 분이 있습니다.

그 은사를 갖고 더 연습해서 훌륭한 연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섬김, 긍휼도 동일합니다.

 

 

 

'고린도전서(완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품위 있는 신앙생활  (0) 2023.03.28
이런 사랑으로 사시나요  (0) 2023.03.19
서로를 기다려 주는 공동체  (0) 2023.03.07
실수를 반복하지 마세요  (0) 2023.02.27
바울은 절제의 수준이 다르다  (0) 2023.02.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