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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완성)

작은 죄를 용납하지 마세요

by ysong 2023. 1. 15.

고린도전서 5: 1~13

유대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다윗입니다.

유대인은 지금도 다윗과 같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았습니다.

만군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또한 자신을 괴롭게 하는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두 번의 기회를 주님의 뜻에 맡겼습니다.

수많은 감사와 찬양의 시를 지어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어디하나 흠잡을 데 없는 철저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딱 하나의 죄를 범하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음행의 죄입니다.

음행의 죄를 덮기 위해 살인교사죄를 범하게 됩니다.

장군을 전장에서 죽게 합니다.

이 사건은 덮어진 채 일 년이 지났습니다.

은밀한 것을 보시는 하나님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그 사실을 지적합니다.

다윗은 즉시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죄에 대해 벌을 내립니다.

이 사건이후 다윗은 고통과 아픔을 겪게 됩니다.

 

주변에서 7계명을 범함으로 무너지는 가정을 봅니다.

하나님의 종인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이나 교회나 별로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요즘 우리사회는 성적으로 타락했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처럼 순리대로 쓰지 않고 역리대로 쓸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시대정신은 늘 성경과 반대됩니다.

고린도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음행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이 문제와 거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방차원에서 꼭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첫 번째 문제는 성도끼리 갈라짐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미숙해서 사람을 따른 결과였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두 번째로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음행이었습니다.

육적인 문제였습니다.

음행은 교회와 가정을 무너뜨리는 무서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한번 빠지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바울은 1절의 사건이 드러나기 전에 9절에서 이미 분명하고 정확하게 교훈했습니다.

이전에 쓴 편지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쓰기 전에 이미 한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는 보존되지 않았지만 고린도전전서라고 부릅니다.

 

9절에 음행하는 자와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사귀지 말라는 것에 대해 이중적인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세상 사람과 사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서 광야나 자연 속에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과 세상 속에서 사귀지만 구별되게 살아가라고 교훈했습니다.

 

바울은 또다른 해결책으로 11절과 13절에서 말씀합니다.

교회 내에서 그런 사람이 있으면 단교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교회공동체를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죄를 범한 그 사람이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분명하고 단호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았을까요?

교회가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는 헬라시대의 가장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사람하면 음란의 대명사로 일컬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 중 누군가가 아버지의 아내를 취했습니다.

로마법조차 금지하고 있었는데, 이런 음행이 교회 내에서 용납되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아내는 계모로 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 중 어느 한 분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후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법적으로 후처가 남편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게 됩니다.

생모든 계모든 관계가 없습니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지 못합니다.

그 분은 아버지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계모를 취해 결혼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재산을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음행의 이면을 살펴보면 돈의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돈의 문제라고 해도 부모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고 한 레위기 말씀을 범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말씀을 잘못 적용했습니다.

바울은 6절에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이 않다했습니다.

음행하는 이를 용납하면서 우리들은 관용이 넓은 공동체라고 자랑했던 것입니다.

 

2절에서 볼 수 있듯이 고린도교회는 이런 죄를 범한 그를 출교시키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이런 부도덕한 논리를 용인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분은 고린도교회에서 아버지의 재산을 지킬 정도로 상당한 재력가였을 겁니다.

그동안 돈으로 교회를 섬겼고, 선한 일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쉽게 내치지 못했을 겁니다.

 

11, 13절의 바울의 교훈이 있었지만 쉽게 내치지 못한 이유입니다.

묵인하고 덮어 두었던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어느새 사람이 지배하는 교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말씀보다 자신을 위에 두는 행위입니다.

이런 교만은 교회의 순결함을 헤칩니다.

교회의 능력, 교회의 생명력은 순결에서 시작됩니다.

교회가 순결을 상실하면 세상보다 추하게 됩니다.

 

바울은 순결을 지키기 위해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 예수의 능력으로 출교해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4~5절입니다. 조금 어려운 말씀입니다.

사탄에게 내주었다는 것은 출교를 의미합니다.

지금은 교회의 징계가 무의미 해졌습니다.

출교하기 전에 다른 교회로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출교는 개인적으로 치명적이었습니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행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교하라고 한 이유는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나단 선지자와 같은 행동을 취하라고 교훈한 것입니다.

다윗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했던 것처럼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음행은 누룩과 같습니다.

누룩은 적은 죄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변하게 합니다.

진리를 변질시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음행에 대해 단호합니다.

7계명으로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간음하는 자는 돌로 처 죽이라고 했습니다.(신명기 22)

엄격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 음행은 육신에 죄를 새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6:18~19)

모든 죄는 나의 밖에 있는 것입니다.

음행은 자신의 마음에 새기는 죄이기 때문에 지워지지 않습니다.

 

- 자신의 영혼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영혼까지 죽이는 파괴력을 갖고 있습니다.

혼자 저지르는 죄가 아내라, 상대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가족과 상대의 가족까지 죽이게 합니다.

히브리서 13:4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음행을 우상숭배와 동일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없다고 하면 할수록 음란한 사회가 됩니다.

마지막 시대의 전형입니다.

 

대안은 7~8절입니다.

7절의 말씀처럼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해져야 합니다.

묵은 누룩을 버려야 합니다.

죄를 없애야 합니다.

죄는 부풀게 하고, 변하게 하고,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유월절이 되면 누룩을 없애는 행사를 합니다.

옆 나라 요르단과 누룩 수출입 계약을 맺었습니다.

지금도 유월절이 되면 누룩을 요르단에 수출하고, 유월절이 끝나면 수입을 합니다.

형식적일 것인데, 이렇게 누룩에 대한 경계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누룩과 같이 작인 죄라도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8절의 말씀처럼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떡이 되신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순전함은 태양의 빛 아래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가리킵니다.

진실함은 감추지 않는 것입니다.

 

순결함과 진실함은 어떻게 지켜질까요?

더러움에 대해, 죄에 대해 민감함에서 순결은 지켜집니다.

죄의 오점에 민감해야 합니다.

적은 누룩에 대한 민감해야 합니다.

그래야 순결함을 지킬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성도의 범죄는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한 집안 안에서 벌어진 일인데 얼마나 은밀하게 행동을 했을까요?

들통이 났을 뿐만 아니라 바울이 머물고 있는 바다 건너 에베소에게까지 퍼졌습니다.

 

은밀하게 행한 다윗의 사건이, 숨어서 행한 고린도교회 교인의 사건이 왜 들통 날까요?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덮어 버릴 수 있는 범죄는 없습니다.

들통이 안났다고 좋아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오래참고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내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 돌아와야 합니다.

 

부끄러움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안도하면 안됩니다.

그럼 점점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고 더 깊은 죄에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죄라는 작은 누룩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적용) 작다고 느끼는 죄도 용납하지 마세요.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다윗은 실패했습니다.

요셉은 성공했습니다.

차이는 피했느냐, 장소에 머물렀느냐의 차이입니다.

요셉은 유혹을 뿌리치고 피했습니다.

다윗은 유혹에 머물러 있으면서 일을 진행했습니다.

 

이 땅에 음행의 문제를 스스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길 수 없다면 피하면 됩니다.

상황과 장소를 만들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황과 만남의 동기가 순수하고 행위도 순수해야 합니다.

다 같이 순수해야 합니다.

동기와 행동이 일치해야 합니다.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솔직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그로 인해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손해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요셉의 인생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파괴적인 음란의 사회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능력으로 승리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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