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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완성)

자원함으로 겸손히 섬겨라

by ysong 2022. 4. 26.

베드로전서 5:1~11

베드로서는 소망의 책입니다.

소망은 고난이라는 불 시험을 통과해야 주어진 귀한 보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흩어진 나그네로 고난 가운데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시험을 이기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바른 정체성을 갖고, 직장에서, 가정에서 선을 행하는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권면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바울처럼 길게 자세히 설명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학자들은 베드로가 불러주면 마가가 받아쓴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베드로사도는 이론가이기 보다는 실천가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서는 1장이 이론편이라고 할 수 있고요, 나머지 4장은 실천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철저히 삶으로 보여준 인물입니다.

베드로서를 읽는 동안 베드로사도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대로 살려고 했던 흔적들을 곳곳에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앙은 믿음이고 생활은 삶입니다.

삶이 따르지 않은 신앙은 바리새인이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신앙생활을 잘 하신 분이었습니다.

 

오늘은 교회공동체에 대한 권면입니다.

대상은 교회 지도자이면서 어른인 장로와 교회의 일꾼인 젊은 자들입니다.

이들이 주님의 무슨 약속을 붙잡고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를 교훈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먼저 장로에 대한 권면인데 2~4절까지입니다.

여기서 장로는 너희 중 있는 장로들입니다.

지역교회가 있고 인도하는 지도자가 있는데, 여기서 장로는 연장자이며, 어른의 역할을 하신 분들입니다. 5절의 젊은이들과 대비되는 표현으로 보면 좋을 듯합니다.

장로는 증인인데 고난을 증언하는 자이며, 영광의 소망을 갖고 있는 자입니다.

고난을 강조한 듯합니다.

베드로사도 자신도 그런 장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장로의 기준입니다.

 

어떤 자세로 양떼를 돌볼 것인가?

너희 중이라는 표현은 모두 하나님의 양이라는 사실이며, 그 양을 치라고 했습니다.

양을 치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 호수에서 베드로는 만나서 네 나를 사랑하시느냐고 물으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하셨는데, 베드로는 평생 잊지 않고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복음 21:16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저는 이 말씀이 참 은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평생 동안 간직한 말씀이 많이 있길 바랍니다.

 

1) 억지로 하지 말라,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자원하지 않으면 오래 못갑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것이고, 기도의 자리로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역하는 곳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눈치 보면서 하는 곳이 아닙니다.

계산하고 따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소리도 없이, 내색도 없이 자원함으로 하는 곳입니다.

세상과 다른 원리입니다.

이것은 가정과 교회에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2) 더러운 이득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당시 순회선교사들이 있었는데 청중들이 많이 모이면 사례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인기 있는 자가 되기 위해 사람을 위한 말들을 전했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물질이 주 목적이 되었습니다.

 

3) 군림하지 말라고 합니다.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끌고 가려고 하면 안됩니다.

교회는 사람이 끌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들 위에서 주인노릇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른의 권위는 수종적권위입니다.

군림할 때가 아니라 섬길 때 나온다는 권위입니다.

 

섬김을 권위로 봐 줄 수 있을까요?

하찮게 취급하지는 않을까요?

세상은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러더십은 섬김이었습니다.

목숨을 내어 줄 정도로 섬겼습니다.

그 섬김으로 이기셨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무원을 공복이라고 불립니다.

나라의 노예들인데, 군림했지 섬기지 않았습니다. 나라의 종이 상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나라가 바르게 갈 수 없습니다.

백성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4) 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본이 되는 곳입니다.

남에게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본이 되는 것입니다.

목자장인 예수님이 시들지 않는 면류관을,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겁니다.

하나님의 보상이 있고, 인정이 있습니다.

약속이 있는 섬김, 축복이 기다리는 섬김이다.

 

고정필도목사님의 마지막 유언기도를 유튜브로 봤습니다.

교회와 가족이 열매를 맺도록 하는 축복기도와 감사기도였습니다.

숨조차 쉴 수 없는 조건이었는데 거친 숨을 쉬면서 기도였습니다.

기도 후에 잠자는 것처럼 편안한 모습을 하신다가 4시간에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평생의 기도하신 분이었는데 마지막까지 기도의 본을 보여줬습니다.

 

베드로사도는 1~2후에 네로의 박해로 순교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베드로서는 베드로 사도의 유언의 말씀과 같습니다.

자원하는 마음, 더러운 이득을 취하지 말라, 군림하지 말라, 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충분히 할 수 있고,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5~6절은 젊은이들에게 향한 권면입니다.

1) 순종하라

예수님은 순종을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겟세마네동산의 기도의 자리였습니다.

피하고 싶었지만 지나갔으면, 좋겠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시면 순종했습니다.

 

2)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베드로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었던 그날 밤을 잊지 않았습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데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받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은혜를 받을 길이 없습니다.

은혜를 구한다는 것은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를 생각해 보세요.

세리가 은혜를 입고 돌아갔습니다.

모세, 한나, 사무엘, 다윗을 그렇게 하셨습니다.

높아지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낮아지라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높여주십니다.

높이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3) 염려를 주께 맡겨라

주님께 던져버려라.

워치만 리(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는 중국 출신의 신학자이자 교회 지도자입니다.

1923~1950년까지 200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는 20대 때 폐결핵으로 3개월밖에 못 산다는 선고를 받을 정도로 다 죽게 되었습니다. 18세 때 회심한 그는 영양실조에 시달렸습니다.

어느날 바닷가에 산책하면서 주님께 맡기라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자신이 지탱해 준 지팡이를 모래사장에 꽂아 놓고 돌아왔습니다.

그는 72살까지 살다가 하나님께 돌아갔습니다.

우리들은 예배의 자리에 나오면 맡기고 집에 돌아오면 또 염려가 생깁니다.

맡기는 것이 잘 안됩니다.

 

믿음은 지적 동의가 아니라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맡아 주실 만큼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주님이 문제를 해결하실만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맡긴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운전 미숙의 예, 잘하면 맡기고 잔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일까에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가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4) 근신하라

근신하라- 정신 차려라, 흥분하지 말라, 절제력을 잃지 말라, 술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균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늘 한결 같습니다.

조금 좋으면 우쭐거리고, 조금만 어려우면 의기소침 하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5) 깨어라

겟세마네동산에서 들었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는데 제자들이 조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유는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우는 사자처럼 겁주는 것입니다.

사자가 강한 적이 나타나서 싸우려고 할 때, 먹이를 잡으려고 할 때 웁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대적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대적하는 방법은 믿음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대적하는 것이 고난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강하게 키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마귀는 붙들려 있는 사람을 보지 말고 그 속에 있는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중상하는 자, 비방하는 자, 절망케 하는 자에 속에 있는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는 두려워하는 자, 없다고 하는 자는 마귀의 밥입니다.

 

이런 장로와 젊은이들에게 향한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7절에 돌보신다, 10절에 온전하게 견고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적용) 평생 간직한 말씀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고난의 순간에 은혜의 하나님으로 나타난다.

시편 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18: 6절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다윗이 평생 간직한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많은 실수를 했고 끝내 일어섰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주님의 고백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목양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삶의 터전에서 증명해 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고,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았습니다.

 

고난의 길을 어떻게 갈 수 있는가?

베드로가 갔던 길입니다.

초대 교회성도들에게 그런 삶을 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기록했는데, 베드로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관계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으로 알려진 인물, 겁약, 중도 탈락, 강하지면서 베드로가 양육되었습니다.

그들은 권면에 따라 살았고 순수한 신앙을 지켰습니다.

우리들에게 향한 권면입니다.

오늘 말씀은 온전한 가정과 교회가 세위지 위해 필요한 권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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