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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완성)

고난이 소망이 되는 비결

by ysong 2022. 4. 4.

베드로전서 4:1~11

우리가 베드로서를 살피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출발은 민수기입니다.

질문은 광야를 어렵게 통과한 이스라엘백성이 가난안에서 왜 실패했는가 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의 삶에서 믿음, 소망,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까닭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행함 있는 믿음을 저버리고 가나안의 문화에 동화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족속이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는 소망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행함 있는 믿음을 강조한 야고보서를 살펴봤습니다.

그 다음으로 산 소망을 강조한 베드로서를 살피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6번을 살펴보면서 저 개인적으로 참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볼 수 없었던 베드로의 신앙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신앙적으로 성숙한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더디게 자라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베드로서는 고난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신앙 때문에 고향을 떠나 살고 있으니까 그 자체가 고난이었겠지만 상당히 많이 나오는 편입니다.

고난은 피하고 싶은 단어이지 않습니까?

더 이상 어려움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고난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고난이 소망이 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고난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고난을 영광의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장차 있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환 성도여 세상을 거슬러 참고 순종하여 소망을 이루세요.

부부 성도여 땅의 사람들처럼 살지 말고 소망을 이루세요.

베드로는 3:13~4:19절까지 고난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영광의 관점에서 고난을 바라봤는데, 고난의 시기에 해야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내 인생에 찾아오는 고난을 바라볼 수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의 종류는 크게 넷으로 나누어집니다.

1) 자신이 잘못해서 받는 고난입니다.

4:15절입니다.

너희 중이라고 했으니까 초대교회 성도가 살인, 도둑질, 악행, 남의 일을 간섭하는 것으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이는 징계로서 깨닫게 하는 것, 회개하는 하도록 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주로 징계의 방법은 물질적인 어려움, 질병, 명예의 실추와 같은 것입니다.

 

2) 의를 행하고, 선을 행했는데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3:14, 17절입니다.

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나게 하기 위해 따라오는 고난입니다.

이 때 사용되는 고난의 도구는 사람이나 환경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강하게 단련하고 순수하게 하기 위한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4:11절과 같이 하나님이 영광을 받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3) 검증을 위해 사용되는 고난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수준은 어려움일이 닥쳐봐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단하신 후에 정금같이 나오게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겸손하게 하시려고 하는 고난입니다.

 

4) 사탄이 표적을 삼아서 집중해서 받는 고난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 하에 받았던 욥의 고난과 같습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성경은 고난을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유익이며,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난의 시기에 피해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베드로 사도는 고난의 시기에 해야 할 것을 많이 말하고 하지 말 것은 적게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경우에는 이것도 하지마, 저것도 하지마라고 할 텐데 베드로 사도는 반대로 말합니다.

먼저 고난의 시기에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 3:15~16절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은 무슨 소망이 있기에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는냐?

그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

나는 그런 어려움을 만나면 포기했을 텐데 당신은 대단하다고 물을 것에 대답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소망의 이유는 묻는 이에게는 하나님을 변호하라는 것입니다.

불신자에게 변증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보고 물어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일생생활을 살아가는데 다른 게 사는군요.

물어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살을 보고 이유를 묻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대답을 준비할 때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자랑하거나 우쭐거리는 태도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드럽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합니다.

늘 선한 양심을 가져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에 부끄러움을 일깨우라고 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 자는 죄악을 비치는 거울입니다.

 

2) 7~10절입니다.

7절은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유는 만물의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천년을 지났는데 주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100년 산다면 개인의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나의 종말이 세상의 종말입니다.

하나님의 관계가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잘 맺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8절은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는 것은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사심 없이 사랑하라, 진실 되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입니다.

 

덮는 다는 것은? 죄를 없앤다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용서해 준다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그 사람의 허물을 받아준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용기를 내서 하나님 앞에서 잘 살도록 용기를 준다는 것입니다. 못 본체 하라는 것이 아니라 약점을 알고 있지만 가리워줘서 드러내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이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9절은 서로 대접하라, 일방적으로 한쪽에서만 대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원망 없이 대접해야 합니다. 대접하다가 똑같이 대접하지 않으면 원망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10절은 청지기 같이 은사대로 섬기라고 합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재능은 탈랜트로 말을 씁니다.

은사는 기브트(선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기브트는 선물로 받은 재능입니다.

은사를 주셨는데, 자랑하지 말고 청기지처럼 사용하라는 것이다.

 

3) 13절입니다.

나도 예수님과 같은 고난에 참여하게 되었구나!

나도 예수님처럼 고난을 받게 되었구나!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합니다.

 

이는 고난의 시기에 성도들이 취할 태도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에 긍정적으로 대응하라고 합니다.

고난에 위축되거나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라고 합니다.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고난에 대응하라고 합니다.

이런 훈련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고난의 시기에 믿음을 잃지 않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단대함으로 세상을 향해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에 선한 양심이 되었습니다.

 

베도르는 고난의 시기에 피해야 할 것을 간단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4:2~3절입니다.

3절 하반절에 등장하는 이방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할 때 그 때 가장 근본적인 죄가 무엇인가?

무법한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로부터 음락, 정욕, 술취함, 방탕, 향락이 따라 왔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상숭배는 성적인 교합이 있었습니다.

성전의 여사제들과 성적인 교합을 함으로 신과 교통한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종교적인 의식이었습니다.

도덕적인 타락과 종교적인 타락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든 도덕적인 원인은 우상숭배였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삶은 이방인의 살이었다는 것입니다.

 

4절에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비방한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 저렇게 살지, 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닌가, 라이프스타일이 다르게 때문에 비판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른 고난이 있습니다. 그라나 정욕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에게 있어 유일한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3:18, 21~22절입니다.

내용은 공생애 있었던 각종 기적과 이적이 일으키신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광에 이르는 것은 예수님처럼 고난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기독교인의 신앙은 이 사실을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느낄 수 있느냐에 따라 깊이가 달라집니다.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고 합니다.

 

적용) 일부 코로나를 겪으면서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고난을 받는다고 말씀하신 일부 목사님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적용할 때 어떤 고난의 종류에 속할까요?

아마도 악을 행하다가 받는 고난이 아닐까요?

권력을 추구하고, 욕망을 추구하다가 당한 고난이 아니었을까요?

 

우리들은 왜 선한데 고난을 받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고난을 받나?

잘 풀려야 하는 것 아니냐?

왜 악한 자들은 잘되는가?

마땅한 답을 얻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답은 주님이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 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시간이 내 사건으로 경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만났던 고난, 앞으로 만날 고난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응하실 겁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베드로를 통해 주신 주님의 말씀대로 대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대응이 초대교회에 닥쳐온 엄청난 고난과 핍박을 이긴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고난이 소망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고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난의 연속입니다.

고난은 그림자 같습니다.

불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림자를 보지 말고 빛 되신 주님을 보시길 바랍니다.

 

고난이 있다면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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