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전서 2:1~10
베드로서는 소망의 책입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소망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원성취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가져야 할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베드로서를 통해 살아 있는 소망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베드로서는 이 땅에서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는 이들이 가져야 할 참 소망에 관한 말씀입니다.
벌써 두 번을 살펴봤습니다.
첫 번째로는 흩어진 나그네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성령이 거룩하도록 이끌고, 예수님의 피 뿌림으로 새 생명을 얻은 소망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산 소망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구원에 근거로 두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구원을 강조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서를 통해 나누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하는 능력의 말씀으로 읽혀지길 바랍니다.
요즘 참 어려운 때입니다.
전쟁과 자연재해와 기근과 절망의 소라가 이 세계 곳곳에 가득합니다.
인류 역사의 큰 전환점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가?
그 소망은 우리를 어떻게 살도록 하는가?
소망은 가진 사람은 어디가 다른가?
소망에 대한 다양한 질문에 답을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무엇을 하면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는 지속적으로 소망을 갖고 살 수 있는 동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체성입니다.
자라나는 것에 소망을 갖게 됩니다.
1~3절입니다.
자라나기 위해서는 먼저 버려할 것이 있습니다.
악독은 겉으로 착하게 보이는데 항상 상대방을 넘어뜨리기 위해 엿보는 태도를 말합니다. 기만은 의도적인 거짓말을 가리킵니다.
외식은 사실이 아닌 것을 진실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시기는 질투입니다.
비방은 상대방의 명예를 망가뜨리는 모든 시도를 말합니다.
이는 부정적인 인격에 대한 표현들입니다.
5가지 덕목은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늘 함께 나타나는 증상들입니다.
죄인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정서입니다.
이것들을 버려야합니다.
사모하는 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이유는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기 위해서입니다.
구원은 자람으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자라나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신앙생활의 목표가 달라지는 대목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마치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아이들인 하루 종일 먹는 것만 생각합니다.
배가 조금만 고파도 참지 못하고 달라고 웁니다.
살기 위해, 자라나기 위해서 웁니다.
영적으로 자라기 위해 사모함이 있는가?
소망은 자라남으로 완성됩니다.
인격이 자라나는 것에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주님이 선하다는 것을 맛 봐봤으면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소망이 도달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 받았다는 것은 구원을 약속 받은 것이고, 그것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자라나야 합니다.
인격 성숙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인격의 성숙입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소망을 갖는 다는 것은 소망의 내용과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전에 바라던 비인격적인 것을 버리고 온전한 인격적인 덕목을 바라게 됩니다.
성공과 욕망에 대한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한 것에 소망을 둔다는 것입니다.
나는 자라나는 존재이기에 소망의 사람인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성숙이 결여된 것입니다.
영적인 성숙에 갈망하고 있는가?
가정에서 크고 작은 일을 통해 영적으로 성숙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커리큘럼입니다.
감춰진 하나님의 커리큘럼입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소망의 사람은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4~8절)
예수님을 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건축자들이 버려진 돌, 하나님이 택한 보배로운 돌, 보배로운 모퉁잇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건축자들이 돌을 다듬어서 집을 짓습니다.
건축자들이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으로 다듬다가 잘못되어서 버렸는데 마지막에 끼는 돌로 쓰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건축자들이 보배로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버린 돌을 교회를 세우는 시작의 돌, 모퉁이 돌로 삼으셨습니다.
건축자들은 돌맹이로 봤는데, 어떤 이들에게는 보배로운 보였을까요?
우리에게는 6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보배로운 보였을까요?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않은 자들에게는 버린 돌로 봤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퉁이의 머릿 돌입니다.
집을 세우는데 가장 중요한 돌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부활하심으로 산 돌이 되었고, 머릿 돌이 되셨습니다.
우리들도 산 돌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짓는데 쓰임 받는 돌입니다.
퍼즐조각 중 가장 중요한 조각은 잃어버린 조각입니다.
인생의 자존감을 여기서 찾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보배로운 살아 있는 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돌 들입니다.
내가 없으면 하나님의 집이 완성되지 않는 산 돌입니다.
버린 돌로 교회의 기초로 삼으셨습니다.
눈에 들기 위해 몸부림치는데, 쓸 만큼 쓰다가 버려진 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에게 버린바 되었지만 주님이 산 돌로 삼으셨습니다.
세상에 버린 존재이지만 산 돌처럼 여겨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과 연결된 존재이기에 소망의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결된 그리스도인에 대한 설명입니다.
소망의 사람은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9절의 말씀은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인가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사람에 대한 명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무와 성격과 위치에 대해 이처럼 명확하게 표현한 말씀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는 출애굽기 19:5~6절과 같은 의미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입니다.
우리는 왕은 경쟁자가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나라라는 공동체입니다.
구별된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소유된 백성입니다.
어떤 회사에 소속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속된 존재입니다.
빛 가운데 걸어가는 삶입니다.
어둠에 헤매는 삶이 아닙니다.
거룩한 임무 수행을 위해 부름 받은 인류에 대한 표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는 인류, 소망을 가진 인류에 대한 표현입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이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삶의 목표에 대한 표현입니다.
적용)
지난주 적용은 습관이 영성이었습니다.
이번주는 산 돌로 살아갑시다.
리빙스톤으로 살아갑시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입니다.
어부로서 세례요한의 말씀을 듣기 위해 요단동편에 찾아왔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곳에서 얻은 이름이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이며, 미래도 나라도 없는 버려진 돌과 같은 존재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연결된 산 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보배로운 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가치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아니?
우리도 산 돌 되게 했습니다.
버린 돌을 그리스도처럼 귀한 돌로 여겨서 모통이 돌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9절의 말씀은 산 돌로 소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중요한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19:5~6절은 가나안에 소망을 둔 이스라엘백성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은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자라지 못하고 멈춰버렸습니다.
머리만 자라고 몸만 자라면 잘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1절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척 하는 것, 미워하는 것, 비방하는 것, 악담하기도 하고, 배 아파하기도 하는 것은 깨지는 인간관계의 원인입니다.
옛 사람을 버리고 순전한 말씀을 사모하면서 살면 산 돌로 여기셔서 우리의 믿음 위에 세워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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