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1~8
민수기를 통해 광야에서 훈련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6~7년의 전쟁을 통해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이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그 사실을 사사기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민수기 이후에 어떤 성경책을 다룰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못한 까닭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놓쳤기 때문일까요?
그들이 놓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가나안 땅에서, 구원 받은 자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배우고 실천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말씀하고 있는 야고보서, 산 소망을 말씀하고 있는 베드로전후서, 주님과 끊을 수 없는 사랑을 말씀하고 있는 요한1,2,3서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3:13절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구원 받은 백성에게 항상 있어야 한 믿음, 소망, 사랑을 잘 배우고 적용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부터 몇 주 동안 야고보서를 통해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쓴 편지입니다.
여기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마리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님을 출생한 이후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는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마 13:55절)를 낳습니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인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어머니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와 동생들은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아마도 바로 밑인 야고보는 형님인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형제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 야고보가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요?
“하나님의 종이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그런데 야고보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주입니다.
주는 보통 종이 주인을 부르는 존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자기 형보고 주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왕이시며 나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형님인 예수는 우리를 죄와 죽음과 지옥과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원해 주시려 오신 하나님이며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야고보는 처음에는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에 믿게 되어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중에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기록된 최초로 열린 예루살렘 종교회의에서 의장처럼 회의를 주재합니다. 교회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표현하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을까요?
야고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변화되었습니다.
고전 15:7절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야고보를 만나주셔서 무엇을 설명하셨을까요?
먼저 살아난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왜 메시아 오셔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으시고 부활을 하셔야 했는지를 구약성경을 가지고 낱낱이 설명해 주셨을 겁니다.
야고보는 비로소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현상에 대한,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긴 부활신앙이 사람을 바꾸게 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 변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종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종으로 살아도 부끄럽지 않고 비겁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알면 알수록 자신은 점점 더 종으로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려고 하면 찾아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시작하면 은혜도 받지만 크고 작은 시험도 겪게 됩니다.
이 시험은 믿음의 시련입니다.
믿음의 길을 걷기 때문에 찾아오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싶고, 진지하게 믿고 싶다고 할 때 인생에서 시험도 강하게 찾아오게 됩니다. 만약 현재 시험을 겪고 있다면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은 시험 가운데 자라게 됩니다.
이 시험은 나를 위해서 찾아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당하면 기쁘게 여기고 받아들이라고 도전합니다.
야고보사도는 기뻐하라고 합니다.
바울사도도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로마서 5:3~4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도 어려움이 찾아올 때 기뻐할 수 있습니까요?
시험이 기쁨이 되게 하는 신앙의 공식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나 안믿는 사람에게도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처음에는 똑같이 반응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파멸과 나락에 떨어지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비로소 반응이 나타나는데 “그래도 하나님 나의 아버지 되시지요, 살려주세요, 은혜를 주세요.” 시험을 통해서 믿음의 사람인가 아닌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면 이 믿음이 역사하기 시작합니다.(3절)
인내하게 만듭니다.
신앙의 또 다른 측면은 인내입니다.
신앙이 자라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믿음이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인내하는가요?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자신의 처지를 말했습니다.
자신은 억울하게 감옥에 오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복직을 하면 자신의 억울함을 바로왕에게 말해서 풀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술맡은 관원장은 복직되었지만 오셉을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인내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하나만을 바라면서 참아내는 것에서 나왔습니다.
절망적이고 암담한 현실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는 인내에서 나왔습니다.
테스트를 통해서 믿음의 인내가 견고하게 됩니다.
놀라운 힘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자가 마지막까지 뛸 수 있습니다.
나만 겪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 받는 현장에 계십니다.
인내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기 위해 거기 계십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은 수만은 고통을 참고 인내해 내었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참지 못합니다.
자녀들이 견디는 힘을 갖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이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인내의 선한 영향력은 무엇인가요?
4절입니다.
인내는 사람을 온전하게 합니다.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인내하여 온유함이 지면에 가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다혈질이고 의협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동족을 괴롭히는 사람을 죽일 정였습니다.
광야에서 인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무가 재목이 되기 위해서는 2~3년 그늘에서 숙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뒤틀림이 없습니다.
비로소 모든 결핍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자족을 배우게 됩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인내가 주는 유익입니다.
시험이 찾아오면 또 다른 측면에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지혜입니다.(5절)
지혜가 등장하는 이유는 시험을 당할 때 지혜가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문제를 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테스트도 주지만 풀 수 있는 지혜도 주십니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 하나님의 주시는 지혜로 풀게 해 주십시오.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를 누구에게 구해야 하나?(5절)
꾸짖지 않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구하는 우리들에게 핀잔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지혜를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구해야할까요?(6절)
믿음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하는 것은 의심하지 않고 구하는 것입니다.
의심은 바다불결과 같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의심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작아지고 불안과 염려를 더 커집니다.
의심하는 자는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는 바다물결과 같다고 합니다.
정함이 없다는 것은 흔들린다, 일정하지 않다, 마음이 왔다갔다는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낙타무릎으로 유명한 기도하는 분입니다.
그가 기도에 대한 나름대로 깨달은 것이 있어서 기록한 것입니다.
문맥상 무조건 구하고 의심하지 않으면 된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그런 뜻은 아닙니다.
내적확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계시의존사색을 많이 해야 합니다.
본문에 따라 순서를 생각해 봤습니다.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문제에 대해서 성경 말씀은 무엇이라고 하는가를 계속 생각하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구나, 확신하게 됩니다.
담대하게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구하는 것입니다.
이 중요합니다. 지혜는 시험에 필요한 것입니다.
인생의 시험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테스트와 템프테이션(유혹)입니다.
테스트가 템프테이션이 되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릅니다.
이는 학생들의 신력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그 테스트가 성적을 놓게 받으려고 컨닝을 한다면 템프테이션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순간 테스트는 템프테이션이 됩니다.
시험의 성격을 깨달아야 합니다.
견디어야 하는 시험이 있고, 강하게 하려고 하는 훈련을 시험이 있고, 도약하게 하기 위해 깨워 흔드는 시험이 있습니다.
시험이 기쁨이 되는 과정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적용) 시험이 찾아오면 왜 낙심하는가?
나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코로나는 총체적인 시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경제, 관계, 생태의 위기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관점과 틀을 바꾸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통 사람들은 돈이 없어 불행해, 돈을 벌어야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관점을 바꾸면 돈이 없는데 왜 불행해야 하지, 돈이 있고 없는 것에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하지, 나는 마음을 붙들어야겠다.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 되어야겠다.
세 단어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인내, 지혜, 기도입니다.
세 단어는 각각 다른 영역에서 작용합니다.
물리적이고 환경적인 영역에서 인내를, 정신적이고 영적인 영역에서 지혜를,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울리도록 하는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입니다.
세 단어가 조화를 이룰 때 시험이라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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