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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민수기)-완성

1세대가 남긴 신앙 유산

by ysong 2021. 10. 11.

민수기 26:1~4, 63~65

사람들은 숫자에 민감합니다.

각종 여론조사도 숫자에 관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숫자에 웃고, 적은 사람은 울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숫자에 의해 마음에 안심과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통장에 찍힌 숫자에 의해 흔들리기도 하고 안심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세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안심하십니까와 연결됩니다.

이는 근본적인 신앙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인구조사에 관한 말씀입니다.

민수기 1~2장에 인구조사가 있었고, 26장에 인구조사가 있습니다.

두 번의 인구조사로 인해 민수기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오늘은 1, 2차의 인구조사를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두 차례의 인구조사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2차 인구조사의 장소는 다릅니다.

1차 인구조시는 시내산이 있는 시내광야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곧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진행되었습니다.

2차 인구조사는 여리고를 마주보고 있는 모압평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장소는 다르지만 목적은 같습니다.

 

시간이 다릅니다.

1차는 출애굽을 한 후 12개월에 있었습니다.

2차는 광야 40년의 세월을 보낸 후에 있었습니다.

1차 인구조사 후에 곧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이라는 세월을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1차 때 목적을 이뤘다면 2차 인구조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계수의 책임자가 바뀌었습니다.

1차는 모세와 아론이 담당했습니다.

2차는 모세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세워진 지도자의 등장을 알립니다.

이 때 모세의 나이는 120세입니다.

조카를 데리고 계수하는 모세의 심정은 어떨까요?

낮 익은 사람은 다 사라졌습니다.

옛 사람 대신 새로운 젊은 세대들의 얼굴들로 가득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세대교체를 마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했을 겁니다.

 

대상이 다릅니다.

1차는 출애굽은 1세대입니다.

출애굽의 당사자들입니다.

2차는 출애굽 2세대입니다.

출애굽 당시 20세 이하이거나 광야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입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고 혹독한 광야의 여정을 보낸 이들입니다.

 

인구조사는 목적은 동일합니다.

20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만한 자를 계수합니다.

2차에는 하나 더 추가됩니다.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것입니다.

숫자에 따라 기업을 분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수가 많은 지파에게는 땅을 많이 주고 수가 적은 지파에게는 적게 주기 위해서입니다.

번 것보다 나눔이 중요합니다.

공평의 원칙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사람의 숫자에 따른 분배입니다.

산술적 평등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탐욕사회입니다. 사람의 숫자로 나누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포도원의 비유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직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않았는데, 미리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아직 주어지지 않았는데,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분배의 이야기를 합니다.

약속이 이뤄짐에 대한 확신케 하기 위함입니다.

믿음이란 주실 것을 믿고 받은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신 줄 믿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믿음 생활이고 신앙생활입니다.

 

전체의 숫자가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1차는 60,3550명입니다.(1:46)

2차는 60,1730명입니다.(26:51)

차이가 1,820명입니다.

 

이 숫자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광야에서 다 죽었을 것 같은데, 남은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40년 광야를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이 없어서 다 죽어 넘어간 것을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불평으로 넘어지고, 원망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최근에는 모압 여인과 음행으로 인해 24천명이 염병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60 만 명이 넘는 새로운 세대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40년의 광야를 지났는데 60만 명이 남았습니다.

진흙 속에서 핀 연꽃과 같습니다.

 

르우벤 지파는 고라가 반역 할 때 동조했습니다.

그로 인해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250명이 불에 삼킴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26:11절을 보니까 하나님은 고라의 자식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65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은 믿음의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음행 사건 속에서 비느하스처럼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가진 사람으로 키우셨습니다.

슬르보핫과 같은 사람은 믿음의 딸들로 키웠습니다.

하나님의 섬세한 보호와 은혜를 볼 수 있습니다.

 

광야 1세대는 지나가는 세대, 쓰러지는 세대, 불평과 불만의 세대입니다.

정탐꾼 사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 사건, 불뱀 사건, 싯딤에서 우상숭배 사건으로 얼룩진 인생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계속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살피시고, 돌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실하심입니다.

우리는 포기했지만 그 분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의미 없는 걸음걸이를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의미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주와 심판의 속에서도 열매가 있었습니다.

하물며 은혜로 엮은 걸음에는 더 하시지 않겠습니까?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데 밝음 속에서는 더 일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백성의 불신앙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지파별로 보면 1차에 비해 줄어든 지파도 있고, 늘어난 지파도 있습니다.

7지파의 숫자는 증가했습니다.

5지파의 숫자는 감소했습니다.

유다(1,900), 잇사갈(9,900), 스불론(3,100), 므낫세(20,500), 베냐민(10,200), (1,700), 아셀(11,900)이 각각 증가했습니다.

르우벤(2,770), 시므온(37,100), (5,150), 에브라암(8,000) 납달리(8,000)는 각각 감소했습니다.

눈에 띠게 줄어든 지파는 시므온 지파입니다.

이는 25장의 모압 여인과 음행 사건으로 24,000명이 죽었는데, 음행 사건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지파가 시므온 지파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다지파는 숫자가 가장 많고 강성하게 하셨습니다.

 

적용) 1,2차의 인구조사에서 숫자의 차이가 별로 없는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듭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면 연기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실신하심을 본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 하나님과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실신하심, 사람과의 약속을 했으면 지키는 신실하심, 자신과 약속했으면 꼭 지키는 신실함입니다.

 

1세대의 아픔을 딛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광야는 하늘만 보는 훈련이었고, 성장과 풍요는 없었지만 하나님은 후손을 남겨주었습니다.

 

잡초가 이런 성향을 닮았습니다.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는 여러 가지 풀입니다.

잡초는 아직 가치를 발견하지 않는 식물입니다.

아무 식물이나 잡초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잡초가 인정되려면 조건을 구비해야 합니다.

잡초 특위의 성격이 있습니다.

이것을 잡초성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잡초박사가 밝힌 잡초에 관한 오해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오해는 잡초가 강인하다는 생각입니다.

잡초는 연약한 식물이라는 것입니다.

경쟁에 약하다는 말입니다.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쟁하지 못해서 다른 식물의 불리한 곳을 찾아서 자리를 잡는다고 합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다른 식물이 절대로 가지 않는 곳에 터를 잡는다고 합니다.

 

또 다른 오해는 잡초는 밟혀도 다시 일어선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잡초를 연구한 결과에 따라면 밟히면 일어서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시 일어서면 잡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잡초에게 철학이 있다고 합니다.

잡초처럼 목적의식이 분명한 식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식물의 가장 중요한 것은 꽃을 피워 씨앗을 남기는 것입니다.

잡초는 이 부분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잡초는 어떤 환경에서 씨앗을 남깁니다.

여의치 않으면 크기를 바꾸거나, 자라는 방법을 자유자재로 바꾼다고 합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지 않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꾼다고 합니다.

씨앗을 만들지 않는 잡초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잡초는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밟으면 그대로 있고, 씨앗을 남기는데 온 힘을 쓴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식물이어서 다른 식물을 바꾸지 못하고, 자신을 바꾸고, 방법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잡초가 성숙한 그리스도인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려우면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바꿔가면서 씨앗을 남기는데 집중한다는 사실입니다.

고난 속에서 꽃을 피게 하시는 하나님을 닮은 까닭입니다.

광야의 생활 속에서도 다음 세대를 준비시키는 하나님을 닮은 까닭입니다.

인생전체를 되돌아보면 은혜가 아니면 안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먹을 것이 없고, 미래가 안보이고, 반역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닮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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