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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민수기)-완성

하나님의 본심

by ysong 2021. 9. 27.

민수기 22:41~23:12

민수기를 읽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22~24장에 등장하는 발람의 이야기였습니다.

발람이 거짓 선지자인지 영매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와 유다사도의 평가대로 미친 선지자, 옆으로 샌 선지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납득이 안 가는 것은 발람이 하나님께 말씀을 받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발람을 통해서 자신의 심정과 이스라엘에 대한 마음, 자신이 누구신가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사람에 대한 생각의 여유가 생기면서 조금 깨닫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발람과 같은 거짓 선지자도 쓰시고, 모세의 막대기도 쓰시고, 모세도 쓰시고, 나 같이 부족한 자도 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생각과 달리 타락한 것처럼 보이는 목사님들도 쓰시고, 정직하고 영적인 목사도 쓰신다는 것입니다. 온전하기 때문에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께 쓰여 진다는 것에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드러내시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하게 되니, 발람의 사건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발람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이스라엘백성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가를, 해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들이 얼마나 집요한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발락과 발람 중에 누가 모압 왕인지 헷갈립니다.

모압의 왕은 악을 써서 발락이고, 더 줄까를 코를 발람 거려서 거짓 선지자 발람이라고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발람이 발락에게 도착했습니다.

발락이 후한 대접을 합니다.

후한 대접을 받은 발람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발락은 이스라엘백성을 저주할 것을 요구합니다.

 

23장에는 발람이 하나님께 받은 3번의 신탁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신탁은 22:41절에서 2312절까지입니다.

발락이 발람을 바알의 산당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이스라엘 진영의 끝까지 다 보이는 신령한 곳이었습니다.

발락은 이렇게 신령한 곳이면 자신의 뜻이 분명히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발람은 신께 바칠 제물을 준비시켰습니다.

수 송아지 7마리와 숫 양 7마리입니다.

 

이 제물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1절에 나를 위해서즉 발람 자신을 위해 제단에 제물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쌓는 제단이 있고 하나님을 위해 쌓는 제단이 있습니다.

발람을 위한 제단이었습니다. 발람이 하나님과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단입니다.

발람이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발락과 고관들은 제물 옆에 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정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발람이 받아온 신탁은 발락이 듣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장소를 옮깁니다.

이스라엘의 진영의 끝만 보이는 곳입니다.

혹시 발람이 이스라엘백성이 숫자가 많은 것에 두려움으로 인해 제대로 저주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따른 것입니다. 자신도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에 두려움을 가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리가 좋지 않으니까 자리를 바꾸어서 하면 자기가 소원한 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말을 할까 생각하고 한번 다른 곳에서 해 보자가 했습니다.

그곳은 13~14절에 말씀대로 소빔이라는 곳입니다.

이번에도 수 송아지와 숫 양을 각가 7마리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장소를 바꿨지만 발락은 발람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한다는 말을 듣지 못합니다.

 

다시 장소를 옮깁니다.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브올 산 꼭대기입니다.

바알 신을 섬기는 신령한 곳입니다.

그곳은 모압의 신 바알을 거처이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여기까지 와서 일을 방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열왕기상 20:28절을 보면 아람 사람들도 여호와가 산의 하나님이시지만 골짜기의 하나님의 하나님은 아니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들도 능력을 행하는 별도의 장소가 있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절에는 하나님이 없고, 점집에는 하나님이 없는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장소에 따라 능력을 유무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든지 주권을 행사하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발락은 발람으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지 못합니다.

 

3번이나 장소를 옮기고 정성스럽게 제물을 바쳤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는 내용의 신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듭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해하려는 악한 세력의 집요함이 보이지 않습니까?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비싼 제물까지 쓰고 있는 헛된 인생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 일은 이스라엘이 전혀 알지 못하는 중에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저주하고 싶어도 자신들에게 주권을 갖고 있지 못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위협 속에서도 이스라엘백성이 안전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더 나아가 우리들의 안전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발람의 신탁 속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권을 쥐고 있는 한 절대로 망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망할 수 없는 이유의 첫 번째는 8절입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계신다.

2) 하나님은 여전히 꾸짖지 않으신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의 여정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한 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것도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꾸짖지 않았다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노엽고 꾸짖었지만 본심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꾸짖는 것이지만 속마음을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속도 상하고, 노엽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한결같이 사랑하고 품으시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본심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3) 9-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특별히 여기신다.

구별하여 세운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내 민족이다, 내 자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세상 가운데 있지만 구별되고, 세상에서 다른 기준으로 갖고 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4) 10-이스라엘을 셀 수 없는 나라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약속한 것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망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발람이 받은 두 번째 신탁에서 담겨 있습니다.

21-하나님은 허물을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반역도 용서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 때문에 아주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의 본심이 가감 없이 보여 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심판인 것 같은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사랑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22-들소처럼 강하게 하십니다.

23-어떤 복술도 통하지 않게 하십니다.

복술은 점치는 것입니다.

점쟁이를 데려다가 해를 끼치려고 했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망할 수 없는 세 번째 이유는 발람의 세 번째 신탁에 담겨 있습니다.

24:6-백향목처럼 아름다운 존재로 세우십니다.

7-흥왕합니다.

 

발락은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축복과 저주의 권세가 누구에게 있기 때문인가요?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발람과 같은 성공한 거짓 선지자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의 신을 달랠 수 있다고 하는 점쟁이나 술사에 달려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사주나 관상, 점에 의해 인생이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알아야 할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면 됩니다.

19절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 줍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후회회하지 않으신다.

사람들은 생각을 항상 바꾸며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이 한 말을 뒤집습니다.

후회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생각을 바꾸지 않으시고 절대로 약속을 뒤집으시는 일이 없습니다.

발람은 자기가 하나님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를 무너뜨리고 넘어지게 하고 망하게 하려는 술수가 끊임없이 다가와서 안전한 이유입니다. 사탄이 우리의 인생을 망가뜨리려고 해도 안전한 이유입니다.

 

적용) 이스라엘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새 이스라엘인 우리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통과하면서 하나님께 원망도 하고 불평도 했습니다.

또한 우리들도 인생의 광야를 통과하면서 동일한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망하지 않은 이유, 저주받지 않은 이유가 발람의 신탁에 담겨 있습니다.

축복과 저주의 주권은 사람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악한 사람의 끈질김과 지극정성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악한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려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정치가 종교에 요청을 하기도 하고 압력을 놓기도 합니다.

기독교는 그 기대를 뿌리 치고 권력이 원하는 것과 다른 길을 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24:13절에 발람이 어쩔 수 없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어길 수 없습니다.

왕에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의 욕심에 따라 움직일 수도 없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백성으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주받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안전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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