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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두 종류의 칼

by ysong 2021. 10. 6.

요한복음 18:1~14

수난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에 뛰어들어선 겁니다.

스스로 십자가의 수난을 받기 위해 수난의 길을 스스로 들어가십니다.

넘겨주다(2(파니), 35, 36, 19:16)가 계속 등장합니다.

 

1~3-공관복음은 겟세마네, 감람산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2:8절에 동산을 창설, 타락으로 관계가 깨집니다.

3:23절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에덴동산과 겟세마네동산을 비교해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지은 아담을 찾아오신 곳이 동산입니다.

죄지은 이담이 동산에서 쫓겨납니다.

그런데 겟세마네 동산은 반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죄지은 인간이 죄 없는 예수님을 찾아온 곳이 동산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찾으나 하나님을 죽이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동산에는 구원사역을 이루신 예수님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2-유다는 아담의 실패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3-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옵니다.

등과 횃불을 들고 빛 되신 예수님을 잡겠다고 옵니다.

어둠 속에 있는 하나님을 빛을 찾는 이상한 사건입니다.

어둠에 스스로 들어가서 빛으로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4- 작은 등과 횃불을 들고 옵니다.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누구를 찾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5-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고 말합니다.

내가 그니라-에고에이미, 메시야를 계시하는 용법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공표하는 것임

뒤로 물러나서 땅에 떨어졌다, 넘어졌다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놀라며 신적 권위를 느꼈던 것입니다.

 

10~11-예수님 내가 앞장서겠습니다.

베드로는 무장봉기를 일으킬 테니 뜻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칼로 의를 행하겠다고 합니다.

진리를 세우겠다는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악을 이기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자신이 죽음으로 견고하게 세우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베드로는 죽음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0~11-중요하게 봤다는 것으로 봤습니다.

말고(왕이라는 뜻)인데 대제사장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불법한 자들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고를 회복해 줍니다.

 

두 종류의 칼이 있습니다.

기도의 칼-진리의 방향이 보임

손에 든 칼-진리의 방해자가 됩니다.

 

칼을 든 자의 모습은 어떨까요?

15~18//25~27-여자 노예(힘없는 존재 앞에서 떨고 있음)

베드로의 열심은 실패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폭력으로 하나님을 이루기 위해 청춘을 바친 갈릴리청년의 실패를 봅니다.

 

가롯 유다의 배신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1)돈 때문-12:6

예언의 성취-27:3~10, 11:12~13

기복신앙에 머물면 배신이 가능성이 높습니다. 

2) 가롯유다도 실망하여 팔았습니다.

예수님과 정을 나누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베드로와 유다의 배신의 차이

신념이나 이념으로 따르면 배신하게 됨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목적을 가지고 따르면 예수님을 오해하게 되고 배신하게 됩니다.

 

배신 이후 베드로는 회개했고, 유다는 포기했습니다.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했을까?

로마군인, 사두개파, 바리새파, 내부자인 가룟유다-한 뜻으로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합니다.

평상시에는 입장이 달랐는데 예수님을 제거하는 뜻을 같이 합니다. 

1)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 이해에 해가 됨, 기득권에 대한 위협세력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불순분자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기득권-법적으로 얻은 정당한 권리를 사용합니다. 

교회가 기득권 그룹으로 보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중세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도 교회가 기득권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22~23-세상은 예수님에게 폭력을 가했습니다.

자신이 폭력의 피해자가 됨으로 확실하게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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