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계시록 2:8~11절
서머나 교회입니다. 칭찬만 있고, 책망이 없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기에 칭찬만 받았을까?
요즘 사람들의 관점에서 서머나 교회가 칭찬 받을만하다고 생각할까?
서머나 교회처럼 칭찬 받는 것을 좋아할까?
서머나는 몰약, 향기라는 의미 항구도시입니다.
로마황제 숭배가 최초로 시작된 곳입니다.
신전 유치 자격을 획득한 도시는 로마정부로부터 상당한 경제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린 도시입니다.
현재 이즈미르로 현재까지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입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게 자신을 “처음과 나중, 죽었다가 살아난 자”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17~18절의 모습과 같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서머나 교회가 핍박으로 인한 순교가 일어나는 현실 속에서 너희가 믿음을 붙들다가 죽을 지라도 반드시 나처럼 다시 살리겠다는 뜻입니다.
9절을 보면 서머나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고난 받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크게 4가지 면에서 고난을 당했습니다.
1) 가난입니다.
서머나는 무역도시로 아주 부유했지만 교인들은 상대적으로 아주 가난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경제적 활동하기 위해서는 길드라는 상업조직에 가입해야 합니다.
그 조직이 섬기고 있는 로마의 신들을 숭배하는 제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단 일년 한 번씩 신전에서 “황제를 신이고 주”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참 쉬운 제안입니다. 증명서를 발급 받으면 일년 동안 어떤 신을 섬기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얼마나 합리적이고 관대합니까?l
그러나 서머나 교인들은 생존의 기로에 서서 “예수님만 주”라고 고백했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가난을 선택했습니다.
서마나 교회의 가난은 오늘날 우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고난이었습니다.
2) 비방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로마종교와 타협을 했습니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황제숭배를 받아들였습니다.
진정한 유대인의 정체성을 포기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을 고소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로마가 강조하는 세계평화를 깨고, /황제숭배를 반대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진리와 생명을 반대하는 유대인을 9절 하반절에서 사단의 종으로, 사단이 원하는 것을 하는 자들이었다고 고발합니다.
3) 감옥에 갇히는 일입니다.(10절)
4) 순교입니다.(10절)
죽도록 충성하라는 죽기까지 충성(신실하게, 믿음)했습니다.
이상은 서머나 교회의 현실의 모습이고 세상이 바라보는 평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실상한 부요한 자라고 하십니다.
종말론 관점에서 영원히 이어질 부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위로하고 계십니다.(10절)
1) 두려워하지 말라
2) 10일이라는 길지 않는 기간 동안에 박해가 있을 것이다.
3) 죽기까지 믿음을 지켜라
그러나 주님의 위로는 서머나 교회를 향한 위로의 말씀 중에는 면케 해주시겠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돕겠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피할 길을 마련해 주시겠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너는 고난 속에서 박해 속에서 그렇게 죽을 것이다. 그러나 명심하라 죽을지언정 믿음을 지켜라, 신실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이 말씀을 우리가 듣는다면 위로가 될까요?
가난하고 환난을 당하고 궁핍하면 어떤 말씀이 위로가 될까요?
우리는 고난 자체를 없애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조금만 참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될 겁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겁니다.
욥을 연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게 하신 것처럼 하실 겁니다.
로마제국의 가치와 타협치 않고 진리이신 주님을 붙드는 싸움을 하다가 죽을 지언정 끝까지 충성하라는 명령밖에 없습니다.
누구에게 환난이나 핍박이 오는가?
서머나 교회는 왜 박해 속에 있었는가?
고난 가운데 부요한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킬 것이 있는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육신의 죽음보다 지킬만한 것인가?
생명의 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의 관점에서 서머나 교회는 부러움의 대상일까요?
서머나 교회처럼 칭찬 받는 것을 좋아할까요?
아니라고 하겠지만 본문은 우리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충성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성공, 실패, 행복과 불행에 개의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둘째 사망을 겪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위로가 됩니까?
네, 위로가 됩니다.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알고 있으니까요.
서운하네요. 아직 서머나 교회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성공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현실 속에서 서머나 교회는 실패한 교회라고 평가할 겁니다.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말하는 현실 속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믿음을 지키겠다고 한다면 광신도라고 평가할 겁니다.
무엇이 지킬만한 것이고,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소망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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