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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민수기)-완성

거꾸로 가려는 인생

by ysong 2021. 7. 26.

민수기 14:1~10

민수기 13~14장이 중요합니다.

구세대에서 신세대로 사명이 넘어가는 분기점입니다.

출애굽 1세대의 사명이 끝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사명이 광야 2세대로 넘어가는 사건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13~14정은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여러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주 12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살펴봤습니다.

다수와 소수로 갈라진 판단의 기준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똑같은 환경과 처지를 봤지만 나눠지는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그것은 주관적인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만큼 객관적, 합리적,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환경과 문제를 대처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모릅니다.

현실은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고, 사물 또한 사람에 의해 조작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신앙인은 무엇을 근거라 판단해야 하는가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로마서 12:1~3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선한 뜻을 분별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 분별의 근간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 말씀에 대한 신뢰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 계속됩니다.

12명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의 반응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연약할 때에 죄의 복원성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힘들고 지칠 때 이스라엘백성처럼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거꾸로 돌아가려는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거꾸로 가려는 백성들의 특징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12명의 정탐꾼 중에 102로 갈라진 상반된 두 보고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않은 채 10명이 주장하는 보고를 채택했습니다.

이들의 보고는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리는 땅이지만 이길 가망성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수의 의견이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일까요?

또한 객관적인 사실을 보고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일까요?

아닙니다.

만약 백성들이 객관적으로 접근했다면 다시 정탐꾼을 다시 보내서 의견이 갈라는 이유를 알아보자고 했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한마음으로 금식하며 기도하자고 했어야 했습니다. 우리들이 큰일을 만나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문제를 접근하는 신앙인의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들에게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보고를 받아들인 이후 그들의 행동이 1~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꾸로 가려는 사람들에게 나타난 첫 번째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10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를 더 신임하면서 밤새 울었습니다.

자기들이 절박한 처지에 놓인 것으로 상상하여 격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마음껏 분출하고 있습니다.

당장 어떻게 된 것도 없는데 통곡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현실의 대안이 젖과 꿀인 가나안 땅인데 그것이 불투명하니까 불평을 쏟아낸 것입니다.

당장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죽겠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자기들을 죽이려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다고까지 합니다.

자기들뿐만 아니라 자식들도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칼에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악의 악행자로, 비열한 위선자로 지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들은 밤새 울부짖었습니다.

 

원망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를 심리학자들은 불안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의 속성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분리되고 소외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신앙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빨리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긋지긋한 땅을 벗어나서 편히 지낼 수 있을까?

싸워서 이겨야 들어갈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현재도 힘든데 미래가 불투명하니까 소망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동안 믿음은 자라지 않았지, 광야는 힘들지, 미래는 절망적이지 결국 토대가 무너진 것입니다.

 

이들 속에서 신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동안 가졌던 신앙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가진 신앙은 생이 불안해서 가졌던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하니 못 믿을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니 뭇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견디는 힘이 미래에 있었는데 미래가 불확실하니까 하나님에 대한 신뢰마저 놓아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꾸로 돌아가려고 행동에 옮깁니다.

지휘관을 뽑아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나옵니다.

과거로 되돌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의 삶에 희망이 없어서 자신의 인생을 수선하려고 합니다.

, 담배, 중독도 끊고 새롭게 해보려고 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지긋한 현재를 돌파해 나가서 미래를 붙잡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내성이 길러지지 않으니 이전에 했었던 쉽고 편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이전으로 돌아갔으면 좋았을 것을, 가능한 한 입에 담아서 안되는 말입니다.

인질에서 풀려났는데 인질이 되고 싶다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애굽은 안됩니다.

애굽은 세상을 대표합니다.

애굽과 단절되어야 합니다.

애굽을 그리워하면 안됩니다.

애굽의 삶은 죄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인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행동의 의미를 1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거꾸로 가려는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입니다.

 

게다가 거꾸로 가려는 사람들은 고집이셉니다.

하나님이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하니까 이들은 스스로 가나안 땅을 점령하겠다고 나섭니다.

 

적용) 우리는 현재의 상태에 대해 불편해하고 우리의 처지와 운명에 대해 원망하며 변화를 갖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가 전혀 없는 그런 곳이나 처지가 있는가? 우리의 처지를 낫게 만드는 길은 우리의 마음을 더 낫게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보다는 현재의 처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이것을 극대화시켜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고 하는 편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는 거꾸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막아서는 신앙인의 모습에서도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와 갈렙의 신앙 속에 담겨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엎드렸습니다.(5)

엎드린다는 표현은 아랫사람이 위사람에게 존경이나 복종의 표시로 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로나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이 두려워서 엎드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박한 임재가 예상되었기 때문에 엎드린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시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미리 엎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소망하면서 엎드리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었습니다.

슬플 때, 아주 통분할 때 옷을 찢었습니다.

이스라엘 회중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배반하는 것을 보고 옷을 찢었습니다.

백성들의 죄에 대한 거룩한 분노로 옷을 찢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임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으로 의복을 찢었습니다.

마음을 찢는 표시로 옷을 찢은 것입니다.

 

거꾸로 가려는 사람들을 막아선 갈렙과 여호수아가 가졌던 신앙과 생각과 가치관을 무엇일까요? 9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좋은 땅입니다.

여호와를 거역하면 안 됩니다.

그 땅을 백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매일 먹는 밥과 같습니다.

 

이 말을 백성들이 4명을 돌로 치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잘못 판단한 다음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갈등 속에 있을 때 나타나지 않고, 끝나고 난 후에 나타납니다.

그동안 하나님은 지켜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개입하셔서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첫 번째 즉시로 징계를 받은 이들이 있습니다.

36~38절입니다.

10명은 징계를 받고 즉사합니다.

반면 2명은 생존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적용)

거꾸로 돌아가려는 사람들과 그들을 막아서는 사람들의 신앙의 양태를 살펴봤습니다.

우리들은 늘 좋은 편에 서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좋지 않는 편에 서 있을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꾸로 가지 않기 위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지금 이 걸음이 하나님이 이끄심 속에 있다는 것을 강철처럼 믿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놓여 있는 현실은 거칠고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무엇인가 선한 일을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현실을 이깁니다.

역설적이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현실을 이기는 것입니다.

 

광야가 아니면 배울 수 없는 능력과 생명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없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보이고, 하나님이 받아들여지고, 하나님의 약속이 약속으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견고하게 뿌리는 내리고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어 확신해야 합니다.

이럴 때 비로소 거꾸로 가랴는 사람들을 막아서는 신앙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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