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39~45절
특히 민수기 14장은 신앙생활에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백성들과 그들을 막아선 모세, 아론 갈렙,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백성과의 신앙의 차이를 살펴봤습니다.
두 그룹의 신앙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백성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비열한 분, 자신들에게 고난을 주는 분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4분은 하나님은 선하시고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는 지식의 차이가 삶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은 구원을 받고도 부정적인 메시지에 휘둘려서 구원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고, 4분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으로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민수기를 통해서 광야를 지나가는 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이는 인생의 광야에서 지나가는 법을 배우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광야를 벗어나는 길은 광야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 환경, 사람까지도 수용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광야를 수용하지 못하고 불평만하면 광야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광야를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 허락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용서하시지만 징계하시는 의미와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배워서 각자 신앙생활에 적용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이스라엘백성들의 행동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였습니다.
단단히 화가 나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이스라엘백성을 전염병으로 징벌하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시작했던 것처럼 모세를 통해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십니다.(12절)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을 전염병으로 치시게 되면 큰일 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간구한 것을 보면 기도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모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이름이 여러 나라에 알려져야 할 텐데, 알려지지 않게 되고 무시를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위해서 수고하신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13절) 모세의 기도는 백성들의 죄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13~16절)
모세는 기도는 하나님의 성품에 호소합니다.(18~19절)
모세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명예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을 이곳에서 죽이면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광야에서 죽였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런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20절)
하나님의 응답은 반역한 백성들이 원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당장 죽이지는 않겠지만 광야에서 연수를 다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단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삶을 누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신 먹이고 입혀서 광야에서 살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광야에서 죽을 때까지 전진하지 않겠다고 응답하십니다.(33절)
백성들을 이백만명으로 추산하면 38년 동안 하루에 100명 이상 죽어나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결국 이들은 먹고 싸고 죽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일만하게 됩니다.
사명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에게 애굽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하지도 않고. 가나안 땅에도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들은 이스라엘백성은 무엇을 했습니까?
이들은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아침이 일찍이 일어나서 산꼭대기로 올라가면서 하나님이 주시기로 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겠다고 나선 것입니다.(40절)
그러면 회개하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우리가 범죄했다고 합니다.
이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가나안 땅에 올라가는 것으로 순종하겠습니다고 합니다.
이들의 행동은 회개하고 순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죄를 뉘우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가나안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고생하고 살다가 죽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슬퍼한 것이었습니다.
자기들이 범죄 함으로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 것을 뉘우친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고생할 것, 자기들이 불행할 것을 생각하고 슬퍼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나서서 막아 보았습니다.
이런 행동은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라며 막아보았습니다.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막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들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 너희들은 적군에게 패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행동은 여호와를 배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으면서 순종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네 마음대로 네 길을 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해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말을 뒤로 하고 가나안 땅에 향해 올라갔습니다.
광야를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멜렉에게 크게 패하게 됩니다.
이 사건에 비친 이스라엘백성의 행동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듭니까?
진정한 회개와 순종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들어갈 때 들어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내가 할만 때에 하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순종은 즉각적입니다.
내가 판단해서 할 만한 때는 하나님의 때가 아닙니다.
내가 판단해서 아닐 때가 하나님의 때입니다.
우리의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입니다.
나 보기에 할만 때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것 또한 불순종입니다.
이들에게 회개는 광야로 돌아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자기들이 불행해질 것, 자기들이 고생하게 될 것만을 생각하고 자기들이 한 행동을 후회하고 잘못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고집을 부리는 것은 불순종입니다.
불순종의 결과는 41절의 말씀처럼 형통하지 못합니다.
고집을 꺾고 있는 모습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자기의 죄를 깊이 깨닫고 슬퍼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단지 자기의 죄의 결고가 아주 나쁘게 되니까 자기 죄의 결과만 보고 슬퍼하고 자기가 다시 살길을 찾아서 나가면 그것은 회개하는 듯하지만 참회개가 아니라는 것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다윗이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왕이라는 절대권력의 힘을 빌려 부하의 아내인 밧세자와 간음을 했습니다.
사악한 죄를 감추기 위해 음모를 꾸며 남편인 우리아를 죽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심판을 선언합니다.
이 심판의 말씀을 듣고 다윗은 즉각적으로 회개를 합니다.
다윗의 회개를 받으신 하나님은 다윗을 살려두게 하겠지만 원수가 일어날 것이며 아이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다윗은 어떻게 행동을 했습니까?
다윗 역시 민수기의 이스라엘백성처럼 고집을 피우는 것처럼 보입니다.
7일 동안 금식을 하고, 밤새도록 엎드려서 슬퍼하고 기도하며 식음을 전폐합니다.
얼마나 간절하게 그렇게 했는지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알고도 다윗이 상심할까 봐 감히 보고를 못할 정도였습니다.
신하들이 동태를 이상함을 깨닫은 다윗은 아이에 대해서 묻습니다.
신하들이 마지못해 사실을 보고한 것은 들은 다윗이 행동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삼하 12:20절) 다윗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몸을 씻고 먹고 마십니다.
아이가 죽기 전에는 그렇게 애통하 하던 다윗이 갑자기 돌변하자 신하들은 황당합니다.
신하들이 다윗에게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묻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사무엘하 12:21~22절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23.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그는 아직 하나님의 말씀엔 뭔가 관용을 바랄 수 있는 기회와 여지가 있을 때에는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애통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심판에 대해 단호함을 보이시자 그는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과 달리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불순종의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은 도망갔습니다.
아멜렉군대는 호르마까지 따라오면서 쳤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많히 죽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서 처음 만난 적군이었습니다.
처음 전투에서 아말렉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출애굽기 17:8~16절에 기록되었습니다.
모세가 산꼭대기에 올라가 손을 들어 기도하면 싸우고 있는 여호수아가 이기도, 손을 내리면 지는 이상한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그래서 모세 옆에 있었던 아론과 홀이 팔을 붙즐어 내려가지 않게 되니까 여호수아가 크게 승리하게 됩니다.
전에 이겼던 그 아멜렉과의 전젱에서 이스라엘백성은 대패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홍해를 건너면 만나는 적은 아말렉입니다.
구원을 받지 않으면 안 만날 적군이기도 합니다.
아멜렉과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순종이며 하나님께 함께하는 것입니다.
결론 이스라엘백성이 이렇게 행동을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22절)
시험(테스트)는 위에 있는 사람이 밑의 사람을 평가할 때 사용되는 겁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하는 겁니다. 선생님이 학생의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시험을 봅니다. 사장님이 직원을 테스트하기 위해 실적을 봅니다. 직원이 사장을 테스트해서 점수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 부모를 테스트해서 부모로 인정할까 말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자식이 있으면 버르장머리가 없는 자식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테스트했다는 것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도 10번이나 말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일 지키면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인정하지 말자라고 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적군을 물리치면 우리는 하나님이 시험에 통과했다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인정하지 말자라고 한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신앙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순종하여 이스라엘백성처럼 광야에서 생을 마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광야에서(민수기)-완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싹이 난 지팡이 (0) | 2021.08.23 |
---|---|
너희에게 작은 일이냐? (0) | 2021.08.17 |
거꾸로 가려는 인생 (0) | 2021.07.26 |
믿음의 눈으로 보자 (0) | 2021.07.19 |
침묵 (0) | 2021.07.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