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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민수기)-완성

3일 길

by ysong 2021. 6. 28.

민수기 10:33~11:3

1~10장까지 가나안을 향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기간으로 따지면 한 달 조금 넘습니다.

출애굽 1114일부터 1220일까지의 기록입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있었던 일을 10장에 할애했다는 것은 그만큼 준비가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준비를 잘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특히 육적인 준비(실격)과 영적인 준비(영성)을 겸비해야 한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또한 삶의 영역에서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거룩해야 한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든,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든, 2의 인생을 준비하든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봅니다. 오늘 개인적으로 민수기 10장까지 천천히 다시 읽으시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맛보시길 바랍니다.

언제 출발했나요?

10:11절에 따르면 출애굽 2220일입니다.

희망과 소망을 갖고 진을 갖춰서 출발을 합니다.

행진을 알리는 나팔이 울리고, 구름기둥이 낯에는 그늘로, 불기둥이 밤에 환하게 비치고 있습니다. 1년 전의 노예의 모습은 사라진 것처럼 여호와의 군대와 같이 질서정연하게 행진하고 있습니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지 않습니까?

 

그런데 12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시내 광야를 나왔는데 바란 광야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힘든 일이 끝나면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데 또 광야라는 것입니다.

어렵게 취업을 했는데, 기쁨도 잠시 그 곳에서 또다시 광야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시내광야이든 바란광야이든 이스라엘백성들을 변함없이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약궤를 앞세워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33)

하나님은 언약궤 앞세워 대적을 흩으시고, 물리치셨습니다.(35)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36)

이 사실은 여호수아서에서 언약궤가의 역할이 실제적인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언약궤를 앞세워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또 다시 광야를 만난 이스라엘백성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3일 길을 걸어서 바란 광야에 도착한 이들은 무엇을 말하면서 걸었을까요?

자유인이 되었는데, 자녀가 되었는데, 1년 동안 시내산에서 율법을 공부한 했는데 이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이들은 아쉽게 3일 길에 원망합니다. 광야에서 민낯들이 드러납니다. 오늘 원망의 쓴 뿌리와 어떨 때 불평하는가를 살펴보면서 우리들이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을 통해 배우시고 적용하시길 바랍니다.

 

1절에 하나님은 이들의 원망을 들으셨습니다. 불평을 들으셨습니다.

민수기에는 원망과 불평의 사건이 7번이나 등장합니다.

원망의 뿌리가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행한 일이 원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하와로 인해 먹게 되었습니다.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했던 하와를 원망합니다.

하와에 대한 원망은 곧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기도 합니다.

 

가인은 자신의 예배를 받지 않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창세기 4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원망과 불평은 타락한 인간에게 나타난 실상입니다.

영혼에 자리 잡고 있는 악한 죄입니다.

죄가 우리 삶의 눈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는 바로 불평과 불순종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불평이 많이 나올까요?

만족과 감사가 사리지면 불평이 나옵니다.

믿음이 부족할 때 불평이 나옵니다.

주셨는데 만족함이 없을 때 나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할 때 나옵니다.

시내산을 출발한 3일 길에 다 보여줍니다.

 

첫째 원망은 진영 끝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가장 멀리 떨어진 영역에서 일어납니다.

사람마다 약한 부분이 있는데 그곳에서 불평과 원망은 시작됩니다.

원망은 진영 끝에서 일어났지만 삽시간에 전영역까지 퍼지게 됩니다.

 

어떤 불평이었을까요?

시내산에서 안식을 누렸는데 그곳을 떠났기 때문에, 아님 너무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날씨 때문에, 길이 험하다는 것 때문에, 쉬지 않고 3일 길을 걸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불평과 원망거리를 찾기로 마음만 먹으면 우리주변에 얼마든지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영 끝에서 일어난 악한 말들입니다.

진영 끝에서 하는 불평도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 번지기는 것을 막기 위해 불로 경고하셨습니다.

 

둘째 탐심은 원망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4~9)

1) 이들의 불평은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만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수고하지 않고 만나를 값없이 먹었는데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이것밖에 없다며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좋은 것을 지겨워합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다양하게 먹었는데, 지금은 만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들이 애굽에서 귀족처럼 살았던 것처럼 말을 합니다.

고된 종살이로 삶이 고달파서 한숨으로 세월을 보냈는데,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고 있습니다. 노역의 값을 톡톡히 치르고서야 고기를 먹었는데, 그것을 마치 값없이 받아먹은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된 노예 생활로 매일 매일 하나님께 울부짖던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현재 처함 상황이 안 좋으면 안 좋을수록 과거를 더욱 더 찬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재의 삶이 힘들다고 해서 자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경험을 미화시키면 점점 더 원망만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잊어버린 욕심은 모두가 원망으로 발전합니다.

 

정말로 이들에게 고기가 없을까요이들은 출애굽을 하면서 소와 양과 염소를 무수히 많이 갖고 나왔습니다.

충분히 있으면서 자기를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지나친 탐심이 불평과 불만과 비교라는 쓴 뿌리를 자극하여 원망하게 만듭니다.

 

2) 믿음 없는 사람에 현혹되면 원망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사람들과 섞여 사는 이들이 먼저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사람 곁에서 믿음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은 나쁜 사람에 충동을 받아서 덩달아 원망하게 됩니다.

이 자극이 잠자고 있는 노예근성을 깨웠습니다.

출애굽은 했지만 아직도 노예의 근성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불신사회에 자극을 받고 충동을 받고 살아갑니다.

불평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불신, 불만, 불평이 가득한 사회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이 자극으로 인해 원망을 하게 됩니다.

 

셋째 자기연민도 원만으로 발전합니다.

11~15절은 모세의 자기연민이라는 기도입니다.

모세가 기도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하나님께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모세 자신밖에 없습니다.

짧은 절에 내가가 14번이나 나옵니다.

자기를 불쌍히 여기는 연민은 세상의 모든 사건을 자기중심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연민은 자기 사랑밖에 없습니다.

연민은 교만으로 발전하게 됩니다.(12)

나 혼자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14)

하나님이 다 하셨는데 자기가 한다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망각하면 자기연민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연민에 빠지면 불평하게 됩니다.

 

넷째 믿음이 떨어지면 원망이 나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믿지 못합니다.

은혜가 없어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21~22)

믿지 못하면 불평하게 됩니다.

의심이라는 불신앙이 광야에서 불평이나 하소연과 같은 부정적인 모습을 띠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3일 길이 우리들에게 교훈을 줍니다.

이스라엘백성과 아브라함이 걷고 있는 길은 비슷한 광야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합니다.

창세기 22:4~5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3일 길을 걸어서 하나님이 일러 주신 곳에 도착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3일 길은 불평과 원망이 아닌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소망의 길이었습니다.

예배하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아브라함에 말에서 그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살리신 분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활시킬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무엇을 시험하려고 했을까요?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시험입니다.

이삭을 통해 주실 것이라는 믿을지 안 믿을지 시험입니다.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젊었을 때 얻은 아들이라면 드리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적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뒤를 돌아보니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경험이 중요합니다.

 

같은 3일 길을 걸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백성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불평을 안 하고 불평을 했다는 표면적인 차이만 있을까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에 대한 신뢰,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이 진정한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애굽으로 자유인이 되었는데, 시내산에 말씀을 받았는데 과거 노예처럼 행동합니다.

영적노예로 살지 말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고 신로함으로 나아갈 때 불평거리가 감사거리로 바뀔 줄 믿습니다.

나는 불평의 사람인가? 감사의 사람인가?를 묵상하고 적용하는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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