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14~25절
이삭이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삭이 거부가 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삭이 순종해서 복을 받았다고 봅니다.
이삭의 순종보다 보다 앞서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입니다.
사실 이삭이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이삭은 거역하기 어려울 겁니다.
이삭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것이 있었기에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삭이 순종하면 복을 받는 다는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는 관점에서 이 사건을 보면 어떨까요?
이삭이 거부가 된 사건은 하나님의 첫 번째 약속이 이뤄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어떻게 이뤄지는가는 우물전쟁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이삭이 부자가 되었는데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됩니다.
아비멜렉의 부하들이 시기를 해서 이삭에게 손해를 끼치려고 했습니다.
이삭이 거부가 되고 세력이 커지니까 위협을 느낀 것입니다.
이삭에게 모든 것을 먹힐 수 있다고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이삭한테 떠날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삭이 강력한데 약한 사람인 아베멜렉이 강력한 이삭에게 떠나라고 합니다.
이삭은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로 갔습니다.
17절~18절을 보면 그랄 골짜기에서 우물을 다시 팝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삭이 가장 힘들 때 믿음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팝니다.
블레셋이 쓰레기로 막은 것들을 걷어내는 것입니다.
물이 흐르지 못하게 막았던 쓰레기를 걷어내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지은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소유권에 대한 주장이 담겨 있습니다.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물이 나옵니다.
잘 사용하고 있는데 그랄 목자들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이삭은 싸우지 않고 거기서 그냥 물러났습니다.
사람들은 왜 싸울까요?
추구하는 가치가 똑같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더 얻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싸웁니다.
돈, 권력, 명예 기타 등등 좋다고 여기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입니다.
그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싸우지 않는 것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과 똑같은 가치를 추구하게 되면 싸우게 됩니다.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그냥 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랄 골짜기에서 샘을 팠는데 물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랄 목자들이 그것도 자기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니까 주고 남동쪽으로 내려갑니다.
내준 그 우물의 이름을 에섹이라고 했습니다.
에석은 다툼이라는 말뜻입니다. 불법을 행하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 우물을 팠는데 물이 나왔습니다.
그랄 목자들이 그것도 자기 것이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그 우물도 내어주고 싯나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대적하다, 반항하다는 뜻입니다.
에섹과 싯나의 이름에서 이삭의 감정을 짐작할 있습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날 강도 같은 놈들, 사탄 같은 놈들이라고 표현의 뉘앙스입니다.
화가 났지만 두렵기 때문에 떠나는 이삭을 볼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과 싸우게 되면 가나안의 7족속과 전쟁을 치러야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의 7족속이 연합하여 이삭을 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우물을 팠는데 물이 나옵니다. 이름을 르흐봇이라 하였습니다. 장소가 넓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광활한 장소에서 살다가 남쪽으로 와서 브엘세바에 이르렀습니다.
브엘세바는 쫒겨난 하갈이 이스마엘과 함께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우물을 발견한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평화 계약을 맺은 곳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이 제단에 바치려고 한 이후 하나님의 복을 받고 장착한 곳입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과거가 생각나는 곳에 온 겁니다.
비로소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납니다.(24~25절)
하나님은 이삭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처럼 자손을 줄려면 너를 지킨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실제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브엘세바에서 제단을 쌓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은 내 하나님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그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전투에서 졌지만 전쟁에서는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일어설 줄 믿습니다.
찬양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28~29절을 보면 이삭이 아비멜렉과 화친을 맺습니다.
아비멜렉이 화친을 청하면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이구나라고 말을 합니다.
이삭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납니다.
이것을 영광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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