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둠 속에 빛이 되는 교회
  •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교회
산상수훈(완성)

기초가 든든한 집

by ysong 2021. 5. 9.

마태복음 7:15~27

오늘로 산상수훈의 말씀을 다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결론을 말씀하시면서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짓선지자를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즉 이단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기초를 든든하게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기초가 든든해야 비와 창수와 바람과 같은 유혹과 시험을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결론을 분별과 기초라는 단어로 마감하신 이유가 뭘까요?

그만큼 마지막 때에 이르면 거짓선지자가 많이 출현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마치 남유다가 멸망할 때 거짓선지자들이 많이 출현한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때에 기초가 든든히 세우지 않으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은 어떻게 거짓선지자를 분별할 것인가? 기초는 어떻게 세워지는가를 생각하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거짓예언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 양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15)

양의 가죽을 쓴 이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6:14, 8:11절을 보면 거짓선지자는 평강하다 평강하다고 외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주지 않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해주고 적군을 물리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과 힘을 갖고 참선지자 예레미야를 괴롭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한 선지자인 예레미야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적었고,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거짓선지자들이 양의 옷을 입고 행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내보냄은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 주님 주님하면서 종교적인 열심을 보이면서 생활하기 때문입니다.(21)

하나님은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십니다.

주님이라는 표현은 충성에 대한 표시입니다.

종교적인 용어를 생활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기적과 표적을 행하기 때문입니다.(22)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가르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합니다.

사도행전 19:13절에 보면 마술사가 악귀 들린 자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이 일들을 행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한 제사장 스게와 일곱 아들이 따라하다가 악귀에게 데러 당하는 사건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별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6, 20절입니다.

열매를 보고 판별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거짓선지자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도록 행위를 강조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들도 주의 이름으로 행했습니다.

겉으로 신실한 종으로 보입니다.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열매를 보니 좋은 나무가 아님이 들통이 난다는 것입니다.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와 같은 이단을 보십시오.

말씀을 강조하고 사랑을 강조합니다.

봉사를 강조하고 헌신을 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열매를 보니까 이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행위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행위가 아니라 나무입니다.

 

12:33~35-악한자를 판별하는 기준을 말합니다.

독사의 자식들과 양의 털을 쓴 이리를 판별하는 비유로 쓴 것입니다.

분명히 나타나는 사례에 적용되는 비유입니다.

가르치는 행위 경건한 행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선지자들의 근본적인 잘못은 이기주의입니다.

거짓선지자는 가르치는 일도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오르지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가르칩니다.

오로지 자신의 사상만을 가르칩니다.

열매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동일하게 교회에서 목회자들을 분별하는데 적용됩니다.

지금도 동일하게 교회에서 섬기는 자에게 적용됩니다.

 

행위의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이는 자기와 하나님만 알 수 있습니다.

동기와 마음을 살피시는 우리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평가하실 것입니다. 마음과 동기를 모르는 우리들은 열매를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겉만 보지만 나는 나의 동기와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의 성찰에 적절한 비유입니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 나 자신을 성찰하는 기준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의 믿음을 보여주는 표지입니다. 나무와 열매의 비유는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 나 자신을 성찰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들이 집중해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반석위에 집을 짓는 일입니다.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반석과 모래가 등장합니다.

둘 다 집을 짓고 있습니다.

열심히 행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무엇을 따라 행하느냐에 대한 말씀입니다.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무슨 열매를 맺느냐와 같은 비유입니다.

반석은 예수의 말씀이다.

그리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은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은 예수가 아닌 다른 것, 욕망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초이고 토대입니다.

높이 솟아 있는 집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보이는 것은 모래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모래 위에 높고 아름다운 집을 빠른 속도로 세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한 현실에서 비록 더디더라도 예수의 말씀 위에 튼튼한 집을 세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초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불법은 기초 싸움입니다.

반석 위에 기초하지 않으면 불법입니다.

그리스도 위에 기초하지 않은 그럴듯한 모든 삶은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반석위에 짓는 사람과 모래위에 집을 짓는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둘 다 말씀을 듣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듣고 행하는 자와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의 차이입니다.

행하지 않는 자도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모래위에 지은 사람은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래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주를 위해 일했다고 하지만 자기를 위해 일했던 것입니다.

스승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고 스승의 길을 걸어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종교생활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모든 내용을 지키려고 했는데 자기를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한 도구로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습니다.

반석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짓고 있는 집이 든든한지 아닌지는 비와 창수와 바람이 불면 알 수 있습니다.

최고의 설교가 스펄전목사님은 비와 창수와 바람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비는 하늘에서 오는 고난을 상징한다고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입니다.

때로는 질병으로, 때로는 시련으로, 때로는 고통으로 시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그 시련을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창수는 땅에서 오는 시련이라고 했습니다.

비난과 비방을 참을 수 있는가?

바람과 같이 알 수 시련도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래위에 지은 사람과 반석 위의 사람에게 동일에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비와 창수와 바람을 통해 현재 짓고 있는 집을 돌아보도록 합니다.

잘못된 기초위에 세운 집이라면 다시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비록 화려하고 좋아 보이는 집이라 할지라도 과감하게 버리고 말씀에 기초를 두고 힘들고 더디더라도 그곳에 집을 짓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산상수훈(완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것  (0) 2021.05.04
비판이 가득한 사회  (0) 2021.04.25
우선순위  (0) 2021.04.19
섬김의 대상을 정하라  (0) 2021.04.11
자족의 기도  (0) 2021.03.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