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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완성)

우선순위

by ysong 2021. 4. 19.

마태복음 6:25~34

신앙생활은 영적인 영역과 삶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영적인 영역은 잘하지만 삶의 영역에서 부족한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삶의 영역은 잘하지만 영적인 영역에 약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이 두 영역이 조화를 이룰 때 성숙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8복의 제자는 영적인 영역인 말씀과 기도, 금식, 구제를 바리새인인들보다 더 나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더불어 삶의 영역에서 물질과 우선순위에 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난주 나눈 것처럼 물질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생존을 위해 돈의 지배에 넘겨버립니다.

생존을 하나님께 맡기고 시작했는데 돈에 종속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돈이란 섬김의 대상이 아닌 은혜가 흘러가는데 사용되는 도구이며 통로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김의 대상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부분이 정립될 때 삶의 영역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의 역역에서 섬김의 대상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따라오는 문제가 있는데 염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염려하지 않는 삶의 영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일상에서 찾아와서 위협하는 염려에 대한 두 가지 처방원리를 내놓고 있습니다.

첫 번째 처방원리는 33절인데요, 우선순위를 바르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구할 것은 이 모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식주=이방 사람이 구하는 것=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하나님과 언약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우리 아버지가 안계시기 때문에 의식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인 의식주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생존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선수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않는 비결은 우선순위를 바르게 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기도문의 말씀을 나누면서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통치 받는 삶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처방원리는 내일의 걱정은 내일이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34절입니다.

염려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염려가 많은 사람이 있고, 천하태평인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염려는 미래에 대한 것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니 없는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걱정하는 것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 곧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염려가 우리의 존재를 상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에 집중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직 오지 않는 것이 올 때까지 산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오지 않은 것이 오면 그때 존재하는 것에 걱정하면 됩니다.

나에 존재하는 오늘을 충실하게 살면 됩니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면 됩니다.

이 말씀은 내일은 내일 주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년을 주신다면 내년을 주신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자녀를 주신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내일을 준 자녀들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노년을 주면 노년을 주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책임지지 않으면 내일을 주시지 않습니다.

염려는 스스로 생명을 단축시킬 뿐 이익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빌 4:6~7의 말씀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평강과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겠다고 합니다.

하루하루 마음을 지키면서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처방원리를 갖기 위해서는 3단어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30절의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라는 단어에 해당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목숨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의식주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목숨이 의식주보다 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중의 새를 돌보시는 분입니다.

새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새들은 염려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도록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새들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우리들을 돌보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들의 백합화를 돌보시는 분입니다.

들의 백합꽃은 붉은 개양귀비와 아네모네입니다.

이 꽃들은 팔레스타인 언덕에서 하루 동안만 핍니다.

이렇게 꽃들은 잠시 피지만 솔로몬의 옷보다 아름다운 옷을 입힙니다.

꽃이 지면 불을 지피는 땔감으로밖에는 쓸데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잠깐 있다 없어지는 그런 꽃도 그렇게 아름답게 하시는데 사람은 얼마나 더 돌보시겠습니까?

하루살이 꽃에 아끼지 않고 주시는 너그러우심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소홀히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에게 필요한 믿음의 단어는 하물며 너희일까보냐입니다.

 

하나님께 의탁하고 살아갈 때에 염려에 대한 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까지도 관여하고 계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귀한 존재로 대우하고 있는 우리를 관망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들을 공급하고 채워주신다면 우리들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두 번째는 32절의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는 단어에 해당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염려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방인들은 변덕스럽고 예축할 수 없는 신을 만들어 섬기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없으니까 염려하면서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26, 32절에서 너희 하늘 아버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이방인은 부탁할 아버지가 없지만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아버지가 있습니다.

있을 것을 미리 아시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바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누구시며,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33절의 더하시리라라는 단어 해당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이 필요함을 알고 계십니다.

의식주는 우리의 입장에서 아주 중요하지만 그것은 더 하시는 것에 불과합니다.

구하는 것이 아니라 덤으로 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원플라서 원이라는 것입니다. 의식주는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순위를 바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까?

하나님의 통치 받는 삶을 살까?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할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문제와 고난이 없었던 날이 있었는가? 그런데 지금 예배드리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혹시 내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보실 때 불필요하거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를 생각해보세요?

금방 없어질 들풀의 눈부신 자태와 아름답게 입히신다면 자녀들을 두 말 할 필요가 있겠는가를 생각해보세요?

염려는 본질적으로 불신앙입니다.

염려는 외적 조건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조건하에서도 어떤 사람은 초연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죽을 정도로 염려하기도 합니다.

 

염려와 안심은 둘 다 외적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옵니다.

이사야는 이미 오래전에 이사야 26:3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내일을 위해 걱정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는 것이 예수님의 계명입니다.

사람을 안심시킬 뿐 아니라 힘을 불어넣어 주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생활을 지배하는 힘이 될 때 염려는 사라집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정하시는 이 아침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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