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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완성)

미움으로부터 자유

by ysong 2021. 2. 21.

마태복음 5:38~48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배워서 사람과 피조물들에게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배워서 삶, 실천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이 말씀을 전할 자격이 있는가?

왜냐하면 저의 선정이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나 스데반집사와 같은 분들만 할 수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높은 신앙의 수준을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원수사랑에 대해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 중에 몇 명이나 이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까?

원수사랑하기까지 가기 위해 처음단계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오랜 세월은 아니지만 고민하고 묵상하는 중에 깨닫게 된 것이 있는데, 처음단계는 미움으로부터 자유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미움사람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고, 저의 부족함을 깨달으면서 용서를 조금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의 과거의 겪었던 이런 저런 사건과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그동안 정리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부담감과 진지하게 듣고 적용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산상수훈은 몰라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천하기 어려워서 어렵습니다.

38-구약의 원리입니다.

21:24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레위기 24:20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신명기 19:21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동해보복 조항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나친 보복을 맞는 것입니다.

큰 보복을 함으로 분노를 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한 대 맞으면 두 대를 때려야 분이 풀린다고 합니다.

복수를 또 다른 복수를 낳게 됩니다.

이 법은 사사로운 개인에게 복수를 실행할 권리를 부여하는 법률이 아닙니다.

이 법은 언제나 재판관이 형벌과 벌금을 정하는 기준으로 사용된 법입니다.

 

하나님이 이 법을 주신 본래의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도하신 목적을 철저하게 살려내시고 있습니다.

보복하지 않는 것은 수동적인 태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원수가 만들어진 3가지 사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39-오른손잡이가 상대방의 오른뺨을 치려면 손등으로 때려야 합니다.

이는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상대방에게 인격적인 모욕을 당했을 그 사람은 나의 원수가 됩니다.

물리적인 행동이든 말이든 자존심에 상처를 주면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40-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할 때 원수가 됩니다.

내 자산을 빼앗으려고 소송을 거는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법적인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법적인 소송, 경제적인 손실이 있을 때 원수가 됩니다.

 

41-억지로는 징벌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로마군인은 피지배민족의 아무나 징발하여 1마일(1.5Km)의 거리만큼의 짐을 다르도록 시킬 수 있습니다.

정치적 억압과 침략으로 인해 원수가 됩니다.

원수는 인격, 경제,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한 걸음은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동일한 모욕을 주겠다는 식으로 복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왼뺨을 대 주고, 겉옷까지 가지게 하여, 십리를 동행하여 원수를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있는 법적 권리라고 해서 다 주장하지 말고 필요하면 상대방을 위해 포기할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행하는 최소한의 의무 사항만 수행하지 말고 최대한 의무를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사적인 이해관계에 얽혀 다른 사람에게 복수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지 말라는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원수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을 43절과 44절로 갈라집니다.

율법학자들은 레위기 19:18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의 말씀을 재해석한 말씀이 43절의 말씀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하신 이 말씀을 재해석한 것입니다. 원수를 갚지는 말고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모욕과 폭력을 당하는 처지에서 가해자에 대한 증오가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분노의 감정을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현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44절에서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45절에서 하나님은 해를 악인이든 선인이든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동일하게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의 밭에만 비를 내리고 불의한 사람의 밭에는 비를 내리지 않는 것을 보셨습니까? 동일하게 대하셔서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악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비와 태양을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그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율법의 학자들의 가르침은 인간적인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세리, 이방인과 같은 세상적인 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48- 너희도 온전하라는 것이 결론입니다.

온전해지도록 하라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존재가 되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온전해지기 위해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온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람은 우리의 행위를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모델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모델이십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사람들이 서로 원수가 됩니다.

물리적 폭력과 인격적 모욕은 가해자를 원수로 만들고, 법적 다툼과 경제적 손실로 인해 서로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정치적 억압과 군사적 침략이 지배자를 원수로 만들기도 합니다.

 

나에게 있어 원수는 누구인가?

내 생존을 위협했거나 지금도 생존을 위협하는 사람입니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내 소유를 빼앗아가거나 아프게 하거나 상처를 준 사람입니다.

 

이런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할 것이 있습니다.

내 생존의 안전부터 찾아야 원수 사랑이 가능하게 됩니다.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용서할 수 가능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생존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 원수를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다음은 인간이해입니다.

사람은 다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다 미 성숙하다는 것입니다.

벧전 3:7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더 연약한 존재이고 남자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모두를 귀하게 여기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은혜가 찾아오고 점점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원수가 생존의 위기를 처했을 때 생존을 해결해 줘서 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45절의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을 정말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충만한 은혜를 주면 가능합니다.

 

여기까지 가기 전단계가 있습니다.

미움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내가 미움의 종이 됩니다.

미움이 내 인생을 어둡게 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짧은 목회를 하면서 조금 깨닫게 된 것입니다.

가능한 미움의 조건과 환경을 안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욕심도 미움도 줄어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럴 수 있지 배려하고 넓어지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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