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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완성)

맹세가 필요 없는 인격

by ysong 2021. 2. 14.

마태복음 5:33~37

산상수훈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는 중입니다.

8복의 성품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태도로, 어떤 가치관으로, 어떤 윤리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이를 위해 예수님은 6가지의 율법의 재해석해 주셨고, 기도와 구제, 물질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더 살펴볼 내용들입니다.

 

지난주까지 2개의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재해석을 들었습니다.

첫째는 살인하지 말라의 말씀입니다. 분노가 살인에 이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분노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이 분노는 욕이나 모욕적인 언행으로 표출됩니다. 이는 폭력을 불러오고 급기야 살인까지 이르게 됩니다.

간음하지 말라의 말씀입니다. 간음의 출발은 마음이기에 마음을 지킬 것을 요구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들이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언어와 행동에 대한 교훈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한 번 만나자, 밥 한 번 먹자, 언제 한 번 보자는 말을 합니다. 꼭 만나고 싶어서 합니까? 형식적인 인사로 합니까? 아쉬움의 표현으로 쓰고 있습니까? 혹시 이런 말을 했다면 지키는 편입니까 아니면 잊어버리는 편입니까?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약속을 하면서 자신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지키지 않으면 성을 갈겠다, 목숨을 내 놓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수많은 맹세는 거짓말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맹세를 하면서 상대방이 자신을 믿어 줄 것을 강조하기 위해 쓰는 표현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맹세하지 말라의 말씀을 통해 맹세가 필요 없는 인격의 조건을 살펴보고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맹세는 약속, 서약, 서원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쓰이고 있습니다.

결혼 서약, 목사, 장로 서약, 취임 서약 등 많은 사람 앞에서 약속을 합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하겠다고 드리겠다고 약속인 서원이 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을 했습니다. 부모님의 서원으로 목사가 된 친구들도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사적인 약속인 맹세가 있습니다.

이처럼 맹세는 무엇을 해 주겠다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33절은 3의 구약 본문을 두 개의 명령으로 담은 것입니다.

1) 레위기 19:12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입니다.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거짓 맹세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속여서 갈취하기 위해 맹세하는 경우에 해당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민수기 30:2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에 많이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서원을 했으면 꼭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나실인 서약을 하는 경우에 해당됩니다.

바울처럼 일정 기간 나실인 서약을 하기도 하고 삼손이나 사무엘처럼 평생 나실인으로 살기로 서역하기 합니다. 이 기간 동안 머리를 자르지 않고, 술을 먹지 않습니다.

 

3) 신명기 23:21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예물을 드리겠다고 서원한 내용입니다.

이 문제만 해결되면 얼마를 드리겠습니다.

이 병만 고쳐주면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해결되면 잊고, 하나님께 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으면 꼭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3군데의 구약말씀을 두 개의 명령으로 요약했습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 맹세하는 것이고, 민수기와 신명기는 하나님께 직접 서원하는 것입니다.

거짓맹세하지 말고, 맹세한 것은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것입니다.

 

34절에서 예수님은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율법을 폐기하라고 하신 것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도 노아를 축복하면서 맹세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체포되어 대제사장과 대화하면서 맹세한 흔적이 있습니다.

바울도 맹세를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3절에서 내가 내 목숨을 걸로~”사도 바울도 맹세를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20하나님 앞에서 거짓 말이 아니로다라고 편지했습니다.

맹세를 하는 것은 성경에 어긋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어떤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일까요?

이는 레위기의 사례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경우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여 자신의 신뢰도를 높이려 한 경우입니다.

이런 헛된 맹세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선을 가리거나 사기성을 감출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진실성이 없는데 종교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심성과 절대성, 일관성이 없이 맹세를 했지 말라는 것입니다.

 

34~37절에서는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구체적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내 생명을 걸고” “나의 머리를 걸고”, “만일 ~면 결코 이스라엘의 위로를 받지 못할 것이라등의 말로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늘, , 예루살렘, 자신의 머리 등을 두고 맹세했으면 그 서약은 자연스럽게 깨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도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사용되면 그때는 하나님이 그 계약에 참여자가 된다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사용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이 계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맘대로 하나님을 참여시키거나 빼거나 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서 자신의 신뢰도를 높이려 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서 자신을 믿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어떤 약속, 서원, 맹세이든 하나님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거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입니다.

사람의 머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사람은 한 터럭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불리건 불리지 않건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거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16~22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가르친 맹세를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맹세해도 구속되지 않는 것들만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된 서약은 구속력이 있고,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사용하지 않은 서약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말장난을 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야 화가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런 구분을 하고 있지 않은가요?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과 관계하지 않는 부분이 있고, 하나님과 관계하는 부분으로 나누고 있지 않은가요? 교회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따로 있고, ,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따로 있지 않은가요?

이런 태도는 쉽게 말해서 바리새인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 있지 않은 어떤 계약, 서약, 서원, 맹세도 하나님의 간섭에서 피할 수 없습니다. 모든 약속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라고 합니다.

사람이 예라고 해야 할 때 예라고 하고, 아니오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의 진실성을 보증하고, 증명하는 맹세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지나는 것은 악으로 쫓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 속에 악이 없다면 서약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서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인간 본성에 악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서약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현 세계는 악한 세계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세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세계에서는 서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진실한 사람은 서약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의 진실과 그의 약속의 확실성에는 이러한 보증이 결코 필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옳으면 옳다고 진실만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진실만을 말하지 않고 덧붙이고 왜곡하는 것은 마귀로부터 난 것이라고 하십니다.

 

야고보고 5:12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정직하고 진실하다면 맹세가 필요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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