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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완성)

더 나은 기준을 갖자

by ysong 2021. 2. 8.

마태복음 5:2737

바리새인들에게 잘못 해석되고 적용된 율법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리새인들 보다 더 나은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너희들은 세상보다 더 나은 기준을 갖고 살라는 것입니다.

 

요즘 목사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교인의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지금의 상태로 지속되면 교회는 많이 위축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기독교의 진리가 참이라고 믿습니다.

인간에 대한 정의가 정확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이런 고민도 없을 텐데 성경의 사실이 진실이기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교회가 회복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주님이 가르쳐준 산상수훈의 말씀에 답이 있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거창한 회개운동이나 집회도 필요하겠지만 말씀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3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간음, 결혼, 이혼입니다.

이는 우리의 현실의 문제이며, 당시 사람들에도 현실의 문제였습니다.

이 현실의 문제에 더 나은 기준을 갖게 된다면 교회 다시 회복과 부흥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21절부터 48절까지 6개의 율법에 해석을 하시면서 예수님이 반복적으로 말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입니다. 내 말은 구약의 율법과 다른 것이 아니라 율법의 진정한 뜻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곡된 율법의 참 의미를 말씀해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위기의 극복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 의미와 뜻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전 야구선수인 이승엽선수가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하는 뛰어난 타자입니다.

그런데 이 선수에게도 슬럼프라는 것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종교관으로 왜곡되고 비틀어진 말씀에 대한 하나님이 제정하셨을 때의 처음 의도와 목적을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7계명에 속하는 말씀입니다.

간음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이며, 지체의 문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음의 문제는 이혼과 음행과 연관을 맺고 있다고 하십니다.

이 모든 악순환의 출발은 어디입니까?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출발이 되는 마음의 간음까지 금하고 계십니다.

마음으로 품는 온간 악한 생각을 금하라고 하십니다.

이 부분에서 더 나은 기준을 갖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생각은 보고나, 듣거나와 같은 자극을 통해 발전하게 됩니다.

 

다윗이 여자의 목욕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사무엘하 11:2절에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이 여인을 심히 아름다워 보인다고 했는데, 정말로 아름답게 보였을까요?

저녁이고 가로등도 없는 집에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이 정말로 다 보였을까요?

그의 마음에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도록 합니다.

행동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출발은 보는 것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눈에는 요셉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요셉은 자리를 피했습니다.

이 문제는 맞서서 싸우는 죄가 아니라 피해서 이기는 죄라는 것입니다.

장담할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체의 지체를 통해 간음의 문제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간음에 빠질 수 있는 것을 제거해버리라고 하십니다.

유혹하게 하는 눈이 있으면 눈을 빼고, 유혹하게 하는 오른손이 있으면 손을 자르라고 합니다.

눈이 두 개 이어서 괜찮은 건가요? 손이 두 개라 괜찮은 건가요?

제거해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신체의 일부를 제거하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간음은 심각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간음의 문제를 지체로 해석셨을까요?

이는 결혼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9:3~6절에는 예수님이 결혼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습니다.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 결혼입니다.

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나누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2~32절에서 부부의 관계를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뉠 수 없는 관계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한 몸이듯이 부부도 한 몸입니다.

예수님은 한 몸이 나뉘게 되는 이혼의 문제로 전개합니다.

이혼은 아내를 버리는 것인데, 한 몸에서 제거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관념상 이혼을 대단히 혐오했습니다.

하나님은 말라기 2:16절에서 나는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실생활에서 이념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신명기 24:1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라는 말씀을 근거로 이혼증서를 써서 아내를 버렸습니다.

당시는 어떤 이유로도 자신의 남편과 이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들은 마음대로 이혼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랍비들은 수치스러운 일에 대한 해석을 했습니다.

크게 두 파로 나뉘었습니다.

샴마이 학파에서는 수치되는 일이 바로 음란을 의미하는 것이고 음란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힐렐 학파는 광범위하게 적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를 음식을 멋없이 만들거나, 머리를 가리지 않고 공중 앞에 나갔다든지, 거리에서 다른 남자와 말을 했다든지, 수다스럽다든지, 남편 앞에서 남편의 양친에 대해 무례하게 말한다든지 이혼을 허용하는 쪽으로 해석했습니다.

모세가 너희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아내를 버림을 허락했는데 이를 이용하여 이혼을 합법화했습니다. 이혼증서를 써 주라는 것은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32절입니다.

이혼 사유를 제안함으로 남자가 여자를 내보낼 수 없도록 했던 것입니다.

남자의 권한을 제한함으로 여성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입니다.

이혼을 제한하는 것은 여성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차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논란이 많은 문제입니다.

특히 성적인 타락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간음뿐만 아니라 동성애까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은 간음, 결혼, 이혼의 문제를 지체차원에서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내 몸의 일부가 아프면 온몸이 아픈 것입니다.

실체의 일부를 제거한다는 것은 엄청난 아픔입니다.

유혹이 찾아오면 선한 생각으로 충만하게 해야 합니다.

피해서 이기는 죄라는 것입니다.

맞서서 이길 수 있는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하나님의 법을 우선으로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을 단속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대해 깊은 의미를 깨닫고 적용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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