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21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절, 16절에서 마태는 족보를 정리하는 시작과 끝 부분에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서 구원할 자인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히브리어)입니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메시아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가기 이전에 하나님이 먼저,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행동하셨습니다. 그 행동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심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 되심이었습니다.
이 강력한 사랑의 메시지를 읽어야 합니다. 저희들을 향한 관심을 읽어야 합니다. 포기할 수 없는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이 된 하나님입니다. 그 사실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이런 체험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대인들은 한 사람의 유산, 기업, 권리를 분명히 하기 위해 광범위한 계보를 보존했습니다. 계보는 실제적인 역사입니다. 계보는 역사를 간단하게 정리하는 방법입니다. 이름 이름이 역사입니다. 실제적인 삶입니다.
창세기에 족보가 나옵니다. 아담의 족보, 가인의 족보, 노아의 족보, 셈, 함, 야벳의 족보, 아브라함의 족보가 나오는데 족보를 통해 역사를 간단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2~17절에까지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 살아간 사람만이 족보에 기재됩니다. 귀신이나 인간이 아닌 사물은 족보에 기록하지 않습니다. 족보는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으로, 유다 지파의 혈통에 따라 왕으로 오신 분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여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족보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자들이 족보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족보에 기록된 여자들은 비정상적인 여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유다는 다말과의 관계는 시아비지와 며느리입니다. 라합은 기생입니다. 룻은 이방인입니다. 당시 이방인여자는 기생보다도 더 못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밧세바는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모두 족보에 올리기 부끄러운 이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 당당히 올라 있습니다.
여자들이 족보에 기록된 것은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그 의도가 무엇일까요? “완벽한 속죄를 설명하려고 하심”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용납의 족보라고 봅니다.
성도 여러분! 다말을 이해해줄 수는 있습니다. 룻도 받아줄 수 있고, 라합도 밧세바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의 자녀가 다말과 같은, 룻과 같은, 라합과 같은, 바셋바와 같은 여자를 아내감으로 데리고 온다면 상황은 다릅니다. 족보에서 파 가라고 합니다. 창피한 사건이 됩니다. 감추고 싶은 사건이 됩니다. 저희 부모님도 불운하게 죽은 누이가 있다고 하는데 끝내 말하지 않고 돌아가셨습니다. 감추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가족마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들을 기꺼이 받아주셨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으시다는 듯이 말입니다. 아무리 더럽고 추해도, 아무리 허물이 많아도 하나님은 받아주십니다. 시편32: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여자들은 용서와 용납의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속죄를 보여줍니다. .
여자들이 기록된 것은 믿음으로 승리함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4명의 여인들의 삶을 살펴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고난을 통과한 여인들이었습니다. 삶의 고통이 폭풍처럼 몰려올 때,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했습니다. 고난을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로 역전시킨 믿음의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룬 여성들이었습니다.
이렇듯이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여성들은 한결같이 참신앙의 여성들이었습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삶이 어려워도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고난과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오뚜기처럼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믿음의 여인들이 보여준 인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여인들이 등장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바로 예수님을 바로 알 때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바르게 알 때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순종을 배울 때입니다. 오늘부터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변화를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야의 소리로 산 세례요한 (0) | 2020.08.19 |
---|---|
심령과 지혜가 강하도록 양육하세요 (0) | 2020.08.17 |
신앙은 어린 시절이 중요합니다 (0) | 2020.08.17 |
요셉과 마리아의 신앙 (0) | 2020.08.12 |
"나, 너 포기 못해" (0) | 2020.08.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