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타락한 시대에 좁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아합왕의 시대에, 가장 타락한 시대에 좁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고단한 여정과 삶의 태도를 배워보고자 합니다.
1. 좁은 길을 걷는 사람들
1) 사르밧 과부입니다. 17장에 기록된 인물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인 가뭄의 영향이 풍요의 도시 시돈에까지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과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들었을 겁니다. 어느 날 엘리야가 찾아와서 물 좀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조금 가져다가 마시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빵을 갖다달라고 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음식을 먹고 죽을 작정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눈치가 없는 것일까요? 아무튼 빵을 달라고 하면서 엘리야선지가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비가 내리는 날까지 기름과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거야. 사르밧 과는 엘리야 말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엘리야의 말대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기적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에게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재앙이 찾아왔습니다. 아들이 죽게 되었던 겁니다. 이 사건을 겪고 보니까 사르밧 과부는 자기의 죄 때문에 아들이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를 죄가 생각나냐고 회개하라고 하지 않고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이 살게 됩니다. 그런 후 사르밧 과부의 고백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왕상 17:24절입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기적의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여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두웠던 죄의식 속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여인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욥이 고난을 통해 이제는 하나님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게 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사르밧 과부는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의 말을 믿고 선을 베푼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가 고난을 겪은 후에 사랑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더 깊게 만나게 됩니다.
2) 오뱌다
아합과 이세벨이 이방신을 섬기는 종교문화를 만들어 국가를 새로운 틀로 조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탄압을 받는 제1 순위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높은 공직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18:3절에 기록된 오바댜라는 인물입니다. 우리나라의 관직으로 말하면 총리급정도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선택한 길은 18:13절입니다.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백 명을 숨겨서 떡과 물을 먹였습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물도, 먹을 것도 부족한 상황인데, 게다가 들키면 죽을 수도 있는 있습니다. 직장인들이나 공직자에 계신 분들은 오바냐를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바댜는 생명을 안전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어떤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을 보존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3) 미가야 선지자입니다. 22장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이 남유대 여호사밧왕과 연합국을 결성했습니다. 사돈지간이니까 서로 돕자는 겁니다. 여호사밧왕은 좋은 왕인데 나쁜 사람과 너무 친한 게 문제입니다. 친할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장단점을 잘 알기 때문에 이용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합에게 여호사밧을 이용하여, 여호사밧왕이 위험에 처하게 되기도 합니다.
아합왕이 아람 왕 벤하닷과 전쟁을 치뤘는데 2번이나 승리하게 됩니다. 결정적인 승리로 벤하닷을 죽일 수 있었는데 놓아주면서 요단동편의 길르앗라못을 돌려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자, 아합왕이 그 땅을 돌려받기 위해 전쟁을 치르려고 합니다.
보통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의 뜻인지 어떤지를 묻습니다. 여호사밧왕이 아합왕에게 부탁을 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에게 물어보자는 겁니다. 그랬더니 아합왕이 400명의 선지자들을 모았습니다. 그들에게 이번 전쟁이 하나님이 뜻인지, 싸우면 승리할 것인지를 예언하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400명의 선지자들이 똑같이 이긴다고 예언합니다. 이 예언을 들은 여호사밧왕이 가짜 냄새도 나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합왕에게 다른 선지자는 없는냐고 묻습니다.
그랬더니 아합왕이 한명 있기는 한데, 늘 부정적인 예언만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왕이 그 선지자가 진짜일 것이라는 생각에 그에게도 예언을 듣자고 합니다.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이 다들 왕에게 길하게 예언했으니까 당신도 그렇게 하라고 말을 합니다. 왕을 만난 미가야가 예언을 하는데 왕이여 전쟁을 하십시오.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졌는데 다들 길하게 예언했다고 하고, 나에게도 길한 것만 예언하라고 하니까 왕이여 전쟁에서 이길 겁니다.
무성히 하게 대답을 하니까 제대로 말하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미가야가 제대로 예언을 합니다. 자기가 하늘에서 어전회의를 하는 것을 봤는데, 천사들이 아합을 죽일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어떤 천사는 이런 의견을 어떤 천사는 다른 의견을 내 놓는 중에 어떤 천사가 묘책을 내놓았습니다. 천사가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모든 선지자들에게 거짓말을 예언하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그 의견이 채택되어 모든 선지자들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400명의 대표격인 거짓예언자 시드기야가 미가야에게로 가까이와서 뺌을 때립니다. 아합왕은 명령을 하여 미가야를 감옥에 집어 처넣으라고 합니다. 22:27절입니다.
감옥에 가면서 미가야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상 22:28 “미가야가 이르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진대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또 이르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 하니라”
미가야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했습니다. 그러나 손해보고, 뺌을 맞고, 왕따를 당하고, 감옥에 갇혀 고난의 떡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거짓선지자는 영을 분별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조금만 더 하나님께 가까이 했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 하나의 의견을 모으지 않았을 겁니다.
미가야는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의 예언대로 전쟁에서 아합왕이 죽게 됩니다. 누구의 말이 맞았습니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듣습니다. 특히 긍정의 힘이라는 시대의 유행에 따라, 바르게 지적하는 것조차 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좁은 길을 걷는 다는 것은 바른 것을 말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미가야선지자처럼 말입니다.
미가야가 이렇게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었던 것은 진실하신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거짓이 없으시고 진실된 하나님을 만났기에 고난의 떡이 기다려도 자신 있게 하나님을 말 할 수 있습니다.
4)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시골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고보서 5:17,18절에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인데 비기 오지 않도록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징계를 알게 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17:1절에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엘리야는 성경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 역사의 법칙을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백성들이 죄를 짓고 있는 것에 하나님이 진노하신 다는 것을 알고 걱정하고 슬퍼하는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만약 엘리야가 이같이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데 갑자가 나타나서 나는 하나님인데 했다면 엘리야는 그 분이 여호와 하나님인지 바알인지 헷갈렸을 겁니다. 엘리야는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왕에게 전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그 예언은 아합왕이 듣기 싫은 말입니다.
그리고 그릿 시냇가에서 숨어지내면서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으로 살았습니다. 물이 마르고 까마귀도 어렵다고(?) 해서 시돈에 살고 있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그를 숨겨줄 만한 사람이 없었던 겁니다.
징계의 끝에 이르자 하나님은 엘리야를 아합왕에게 보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를 보시길 바랍니다. 왕상 18:17절,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입니다. 나봇의 포도밭 사건 이후 엘리야가 아합을 또 만났는데 21:20절에 엘리야를 대적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엘리야에게도 위기 찾아옵니다. 불을 내리는 화려한 기적을 경험한 엘리야는 왕을 비롯하여 모든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정반대의 상활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성급한 기대감이 엘리야를 무기력증에 빠지도록 했습니다. 참고 인내하는 한계를 넘었습니다. 낙심한 상태에 빠져버린 겁니다. 위대한 엘리야도 이런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들도 별 수 없습니다. 이런 그가 어떻게 회복되는 줄 아십니까? 세미한 음성 가운데 게시는 하나님을 다시 만남으로 회복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있어 용기를 얻습니다. 죽으려고 광야에 들어간 엘리야를 천사가 먹을 것을 줍니다. 그래도 낙담에 빠진 엘리야는 40일 동안 걸어서 호렙산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죽을 생각을 한 겁니다.
엘리야는 혼자라는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19:14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7천명을 남기겠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좁은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자신만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들고 외롭습니다. 그때 동일하게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입니다.
엘리야는 불을 내려 심판하시는 하나님, 위로하시는 하나님, 조용히 말하시는 친절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했던 겁니다. 엘리야의 성정으로 심판을 외쳤던 세례요한을 보시길 바랍니다.
이처럼 좁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존재합니다. 사르밧 과부, 오바댜, 미가야, 엘리야와 같이 좁은 길을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손해를 감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합왕처럼 청지기가 스스로 집 주인이 체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짓선지자처럼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여리고성을 건축하는 히엘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볼까요? 중간에 머뭇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인가입니다. 36절에서도 불을 내리는 목적이 누가 하나님인가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겁니다. 그 결과로 39절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이 진짜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자신이 맡은 것이 무엇인가, 내 것이라고 할 것이 뭐가 있는가를 바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결국은 아합과 같이 되기 때문입니다.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입니다.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적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경건을 연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의 떡을 자처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그 길에서 만나시길 바랍니다.
'간단하게 보는 구약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적을 보는 관점(1) (0) | 2021.02.01 |
---|---|
유종지미 인생 (0) | 2021.01.13 |
중간에서 머뭇거리는 사람(1) (0) | 2021.01.07 |
진품과 모조품(2) (0) | 2020.12.23 |
진품과 모조품(1) (0) | 2020.12.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