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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보는 구약성경

중간에서 머뭇거리는 사람(1)

by ysong 2021. 1. 7.

열왕기상 18:21절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일까요?

부자가 되는 것,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인기를 누리는 것,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일까요?

행복 지수를 따질 때 무시할 수는 조건입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들이 주는 기쁨은 일시적이라는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만면 성경은 영원히 누릴 기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데,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 어울리지 않는 조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영원한 행복의 조건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이라고 고집 세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누리는 복을, 참된 기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성경 인물들이 만난 하나님을 여러분들도 꼭 만나시길 바랍니다.

 

오모리왕조에 대한 기록은 열왕기의 1/3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왕상 17장부터 왕하 9장까지 길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의 저자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예레미야선지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사가는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이 걷고 있는 고난한 길을, 타락한 왕, 제사장, 거짓선지자들의 횡포를 다루면서 하나님이 심판하시게 된 원인과 결과를 가르쳐주고 싶었을 겁니다.

 

우리들은 어제의 약속도 잊지만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자손과 땅에 대해 약속하셨습니다.

자손에 대한 약속은 창세기 22:17절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후손이 별,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왕상 4:20절 성취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땅에 대한 약속은 창세기 15:1절8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라고 하셨는데 왕상 4:21 “솔로몬이 그 강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그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섬겼더라라는 말에서 하나님이 야속을 이루신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솔로몬시대에 성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부르심에 대한 목표를 성취하는 길로 가야했습니다. 그렇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가 열왕기의 내용입니다. 계속반복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루고 있는 오모리왕조는 타락의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기회를 주지만 악해지고 타락해지는 오모리왕조의 죄악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아합왕이 여로보암의 죄에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합왕이 이렇게 타락하도록 부추긴 인물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왕상 16:31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두로와 시돈에서 바알과 아세라신을 섬기는 나라입니다. 풍요와 다산의 신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무역으로 부강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의 공주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세벨은 외부적인 조건으로 볼 때 문제가 없습니다. 모든 남자들이 원하는 아내감입니다. 그런데 신앙이 달랐습니다. 신앙이 다르면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릅니다. 그러면 추구하는 삶이 다르고, 다르게 때문에 싸움이 잦아지게 됩니다. 성경은 그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믿는 사람끼리 결혼해야 합니다. 혹시 믿지 않는 자매와 형제가 있다면 결혼하기 전에 믿어서 세례를 받고 결혼을 하는 것이 신상에 좋습니다. 아합왕을 보니까 그렇습니다.

 

이세벨은 추진력과 능력이 뛰어난 여자입니다. 나봇의 포도밭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남편을 위해 술수를 써서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는 것을 보면 무서울 정도로 주도면밀한 정치적인 여인입니다.

 

얼마나 독하고 악한지 자식이 죽고 예후가 혁명을 일으켰는데도 눈 하나 껌뻑이지 않는 인물입니다. 왕하 9:30~31“30 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31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보통여자가 아니죠. 눈을 그리고, 너도 7일이면 끝난다고 한 말입니다.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는 더 악합니다. 남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8년 만 왕으로 있다고 일찍 죽습니다. 할아버지는 41년 아버지는 28년을 왕으로 지냈는데 말입니다.아들인 아하시야가 외삼촌 여호람왕에게 병문을 갔다고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서 도망하다가 죽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아달랴가 무슨 짓을 한 줄 압니까? 손자 70명을 죽이고 자기가 여왕이 됩니다. 그래서 신앙이 같은 형제와 자매들이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사건을 통해 아합왕을 더 많은 죄악에 빠지게 한 것이 이세벨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17~22장 아합의 죽음까지 내용입니다. 17장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입니다. 18장은 엘리야아 갈멜산전투를 하는 장면입니다. 17장은 이스라엘백성이 아닌 이방인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왕에서부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과 바울과 아세라를 섬기며 종교다원주의에 빠져 타락했지만 갈멜산전투를 통해 배성들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고백하고 있다는 겁니다.

 

가뭄의 목적 17:24, 갈멜산전투의 목적이 18:39절입니다. 회개한 백성을 보고 하나님이 복을 내리는 내용이 18: 41~46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을 바르게 이끌어야 할 아합왕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실망한 엘리야가 광야에서 죽겠다고 하는 내용과 더불어 다시 사명을 주는 내용이 1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사명은 하사엘을 기름을 붓고,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세우는 일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엘리야가 직접 기름을 부은 사람은 없습니다. 예후는 어떤 선지자가 이 일을 합니다. 엘리사를 만나서 기름을 부을 수도 있었는데 기름을 붓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주신 마지막 사명은 아합을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기적이 나타났는데 이세벨이 강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 악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에 실망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뜻은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하신 다는 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최후의 심판에 이르기 전에 아합왕에게 또다시 기회를 제공하는 내용이 20장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람과의 전쟁을 통해 알려줍니다. 1차 전쟁 20:13, 2차 전쟁 20:28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사울왕처럼 순종하지 않고 맘대로 행동을 합니다. 그러면서 21장에서 더 큰 죄악을 짓게 됩니다.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는 죄악을 범하는 겁니다. 엘리야가 다시 아합을 찾아와서 심판을 예언하니까 잠깐 회개합니다. 그러니까 하님이 21:29절의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보이시지 않습니까? 돌아오기를 바라는 하나님, 백성들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보이지 않습니까. 22장에 아합의 심판이 왕하 9장에 오모리왕조의 최후심판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아합왕의 이같은 행동에 참 바보처럼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한번 보세요. 아합왕은 36개월의 가뭄도 하나님이 내리신 것을 압니다. 또 갈멜산에서 불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봤습니다. 이후 비가 내리는 것까지 경험했습니다. 불과 비를 내리시는 분이 바알이 아니라 하나님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하나님이 누구신줄 알 것 같은데 말입니다. 혹시 왕이기 때문에 교만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일까요? 아무튼 아합왕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분명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깨닫지 못하는 아합왕을 보면서 참 어리석다고 말하고, 나 같으면 아합왕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도 아합왕과 비슷한 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많이 은혜를 주셨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자기의 고집을 부리며 실수와 잘못된 선택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현실에서 아합왕과 같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우리들 속에도 아합왕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7:22~23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아합왕과 같은 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아합왕과 엘리야선지자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겁니다. 누가 하나님인가를 선택하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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