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2:1~7절
한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올 한해를 되돌아보면서 어떤 분들은 잘 살았다고 평가할거고, 또 어떤 분들은 잘못 살았다고 생각할 겁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잘못 살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자신에 대한 평가기준이 극히 주관적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공적인가, 실패한 삶인가에 대한 기준이 중요합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평가함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성적 5등이 목표였던 학생이 있었는데 5등을 되지 못했다면 실패한 한해이었다고 평가할 겁니다. 그런데 목표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목표를 정했다면 비록 등수는 오르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다면 그는 성공한 한 해를 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이 올 한해는 부자가 되어야겠다고 목표를 정했는데 월급도 안오르고, 사업도 잘 되지 않았다면 실패한 한해이었다고 평가할 겁니다. 똑같은 환경이지만 올 한해는 성실이 살아가는 것이 목표이었다면 비록 부자는 되지 않았지만 성실하게 살았다면 그는 성공한 한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우리들에게 성공과 실패, 복과 화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는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즉 올 한해는 하나님을 많이 알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대한 지식이 자랐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커졌는가, 하나님을 신뢰가 믿음이 확장되었는가에 따라 성공한 한해이었는가 실패한 한해이었는가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성도의 평가기준이 바르게 세워지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의 평가기준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평가기준에 의한 삶을 살아갈 때 바른 인생관이 정립된다고 봅니다.
성경적인 평가기준으로 살아온 믿음의 선배들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어떤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들도 올 한해의 끝자락에서 어떤 하나님을 고백할지를 생각하면서 올 한해를 평가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다윗의 인생입니다. 다윗은 찬양으로 인생을 마감한 사람입니다. 그가 어떤 하나님을 찬양하는지에 대해 삼하 22장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백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2,3절에서 반복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반석은 기초입니다. 반석은 근본입니다. 반석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반석은 시작입니다. 반석위에 모든 것을 안전하게 쌓은 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모든 삶의 근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32절에도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47절에도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반석과 같은 하나님이 인생을 지켜줬음을 인생의 끝자락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평탄한 인생을 살지 못했습니다. 사울로부터 각종 압박을 받았습니다. 사막으로 동굴로 13년 동안 도피생활을 했습니다. 사막은 살 곳에 되지 못합니다. 풍족함과는 거리가 먼 곳입니다. 생명에 필요한 물조차 부족한 곳입니다. 다윗의 인생은 부족한 인생입니다. 부족으로, 긴장으로 인해 지쳤습니다. 그런 다윗을 안전하게 지켜주신 분이, 반석되신 하나님입니다.
또 각종 전쟁에서 지켜주신 하나님. 너는 피를 많이 흘려서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전장에서 잔뼈가 굳은 사람입니다. 다윗이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잘못하면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곳이 전쟁터입니다. 이런 곳에서도 반석 되신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흔들리지 않게 보호해 주셨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인생은 전쟁터로 비유됩니다. 동일하게 우리들도 지켜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식의 배반으로 하루아침에 왕궁을 버리고 피신해야 하는 상황에도 하나님은 반석이 되셔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다윗의 모습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배반과 힘든 상황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을 지켜주심 반석같은 하니님이 한해의 끝자락까지 올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무엘상하서는 원래 한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서는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마치는 성경입니다. 사무엘상 2장으로 보면 한나의 기도, 노래가 나오고 있습니다. 삼상 2:2절에 한나도 동일하게 반석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불임이라는 고통을 시간을 겪고 자식을 얻은 한나의 기도, 노래입니다. 그런 고통을 겪고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체험한 한나는 반석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모세도 반석 되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2장은 모세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느보산에서 여리고를 바라보면서 모든 인생의 여정을 마치고 부른 노래입니다. 그의 노래에서도 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그렇다면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반석은 무엇일까요? 아니 저와 여러분들이 일년 동안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반석은 무엇이었습니까? 다윗과 한나처럼 하나님이었습니까 아니면 무엇이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반석은 돈, 권력, 사람입니다. 돈이 반석입니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돈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돈의 위력 앞에 주눅이 듭니다. 그래서 더 많은 쌓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돈이라는 반석은 흔들리지 않고, 안전한 반석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권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의 힘은 돈의 위력보다 큽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사람의 원한도 풀어줄 수 있습니다. 또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누구의 이름만 대도 통하는 사회입니다. 요즘은 많이 민주화되기는 했습니다. 앞에 파출소가 제일 추원 26일에 개원을 했습니다. 경찰관들에게 한방차를 대접하면서 친해지고 있습니다. 화장실이용도 가능합니다. 비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민주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권력의 힘은 대단합니다.
또 사람들이 생각하는 반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람입니다. 인맥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맥관리를 위한 각종 책들이 출판될 정도입니다.
실력, 노력, 가문 등 다양한 반석들 위에 서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반석은 창수가 나면 없어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석되신 하나님의 주제는 구약에서만 끝난 게 아닙니다. 바로 반석이신 예수님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예수님이 반석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신령한 말씀을 믿는 자가 다윗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24~25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하나님을 반석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한해의 끝자락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올 한해 여러분들의 반석은 무엇이었습니까? 곧 여러분들이 성공이라고 생각한 기준이 하나님의 반석위에 굳게 서는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반석위에 굳게 서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도 이 반석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16:16~18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우리가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위에 서 있다면 어떤 음부의 권세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년에는 반석되신 하나님 위에 더 굳건하게 서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 때 한해의 끝자락에서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8~17절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원수를 심판하시고 붙드셨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 때 한해의 끝자락애서 찬양을 부를 수 있습니다.
한나의 기도,노래에서도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삼상 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땅을 창조
모세의 노래에서도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 32:6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인간창조
하지만 인간의 욕심과 야망이 우주만물을 만들고 인간을 창조하여 화복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또 이런 영향을 받은 우리들도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무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주하나님이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또 인생의 고난의 의미도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해결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욥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지구상에 욥처럼 한꺼번에 고난을 받은 케이스는 많지 않습니다. 이 욥이 고난의 해답을 찾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깨달을 후 이었습니다. 욥기를 이해하려면 31장이후에부가 중요합니다. 욥은 31장에서 법정의 증인석에 앉아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정직한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인격적으로 성숙한 자신의 모습을 말하면서 31:35~37절에서 의인이 고통을 받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한 욥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 36 내가 그것을 어깨에 메기도 하고 왕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리라 37 내 걸음의 수효를 그에게 알리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 하였으리라”
이런 의미에서 35~37절은 욥기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합니다. 35절은 욥이 하나님을 상대로 고소하는 장면입니다. 내가 죄를 지어서 이렇게 되었다면 전능자가 나의 죄를 지적하면서 대답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욥은 하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고발할 자가 있으면 고소장을 써서 하나님께 고발하라는 겁니다. 자신이 지은 죄가 있으면 증거를 대봐라고 말하는 욥의 태도가 35절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36절에서는 고소장을 써서 하나님께 제출한다면 고소장을 받아서 자기가 어깨에 메기도 하고 왕관처럼 쓰기도 하고 37절에는 고소한 사람을 왕족처럼 대우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자신은 이런 고난을 받을 만한 죄를 짓지 않았으니까 하나님께서 대답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고난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욥의 질문에 하나님의 대답이 38~41장입니다. 그 대답은 하나님이 욥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하는 질문은 욥이 현재 겪는 고난에 대한 내용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래 니가 겪은 고난은 이런 것 때문에 내가 준 거야”라고 친절하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욥의 친구들처럼 고난의 원인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욥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전혀 엉뚱합니다.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천지창조에 대한 말씀입니다. 38장:4 창조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 있느냐? 또 39:1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이 새끼 낳는 것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너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야생동물들을 누가 먹이고 누가 다스리는 줄 아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또 40장은 당시시대에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동물로 인식된 베헤못(하마40), 41장에는 리워야단(악어)도 내가 지었고 내가 통제하고 있다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천지만물을 지었고, 다스리고, 내가 절대주권을 갖고 통치하고 관리하고 있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숲속의 이름모를 나무와 풀조차, 깊은 바다속의 이름모를 물고기조차 내가 먹이고 다스리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욥 너는 의인이라고 하지만 너는 지상에 사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니가 고난을 겪으면서 천상의 세계에 이뤄진 일에 대해 질문을 하는데 지상의 세계도 모르는 존재인 네가 어떻게 천상에서 이뤄진 것을 알려고 하느냐 “네 자신을 알아라”고 하나님은 대답해 주시는 겁니다.
욥기 1장에서 기록된 하나님과 사탄과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죄를 지어 징계를 받는 고난이든, 훈련을 위한 고난이든 성도들이 받는 모든 고난은 천상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허락하에서 진행됩니다. 지상의 세계조차 모르는 인간인 욥 니가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뤄지고 있는 고난의 깊은 의미를 알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욥은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동안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다스린다고 들었지만 이번 고난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고, 고통이 하나님의 섭리, 목적 가운데 이뤄짐을 알게 되면서 고백하게 됩니다.
절대주권을 교리적으로만 배워 머리로만 알았는데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이젠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말씀이 42:2입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하나님은 무소불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모든 계획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은 고난 전에도 알았지만 그때는 머리로만 알았는데 이번 고난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한 욥은 5절에서 그 유명한 말을 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분들은 한해의 끝자락에서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탐험하거나 즐기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연은 위대하고, 자연은 신비하고, 힘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연만 알았지 그것을 창조한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올 한해 봄이면 꽃을 보내주시고, 가을이면 맛있는 과일을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실감하면서 살았습니까? 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과 별만 차이가 없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주시는 하나님의 각종 선물을 누리면서 인생의 끝자락에서 찬양을 하길 바랍니다.
세 번째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알면 한해의 끝자락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22:7절입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하시기를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부탁을 하면 들어주시지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부탁을 듣고 계시며 응답하시기를 즐깁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시로, 찬양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간구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의 삶이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하나님밖에 의지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기도의 소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도도 너무 수준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되고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향한 기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시는 분과 함께 합니다. 산기도-중등부 교역자시절, 도봉산, 4년여동안, 다시 산기도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한달에 한번이라도
다윗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8절 이후부터 보면 자신의 기도를 응답하시기 위해 천지만물을 흔드시는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기 위해 천지만물을 흔드시는 분이십니다. 이 분을 알면 한해의 끝자락에서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습니다.
올 한 여러분들의 기도는 얼마만큼 응답받았습니까? 올해보다는 내년에 더 많이 응답받아서 다윗처럼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다윗, 한나, 사무엘, 여호수아, 모세를 비롯한 믿음의 선배들도 우리와 동일하게 역경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니 우리들보다 더 심한 환경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다른 것은 그들은 그 환경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동일하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활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과정일 뿐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다시 발견하게 되고, 시실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합니다. 하나님만 섬기기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하기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삶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사람의 성공의 기준은 무엇을 성취했다고, 무엇이 되었다고,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성공기준은 바로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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