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3~5절
8복은 세상적인 복이 아닙니다.
8복은 8가지 성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상에 돈이 많은데, 높은 권력을 가졌는데, 명예를 가졌는데 하루아침에 추락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성품이 부족하며 그것이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을 봅니다. 솔로몬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인간의 실상을 잘 아시고 계신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행복한 것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어떤 성품을 가지고, 누구를 위해 쓰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8복의 열쇠로 문을 열고 보물이 가득한 궁정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첫 번째 복인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복되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저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를 소유한 사람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소유자들이다.“
가난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가난은 사람에게 많은 부분에서 불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여기는 것은 없습니다
현대인들에게 불행의 조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은 가난이라는 단어를 복을 여는 열쇠로 사용했을까요?
경건한 자는 복이 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 구별된 자는 복이 있다로 시작한다면 훨씬 종교적이지 않습니까?
당시 가난한 자는 율법을 잘 지킬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가난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난한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부자는 율법 잘 지켰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고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들의 통념을 깨며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가난이라는 단어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프토코스, 페네스입니다.
페네스는 상대적인 가난입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상대방과 비교할 때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프토코스는 절대빈곤을 말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가난입니다.
예수님은 프토코스의 가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지의 형편, 부자집 앞에서 구걸하는 나사로 같은 사람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가난을 미화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난한 자가 되면 그의 심령이 가난한 해집니다.
가난하면 예수님을 쉽게 믿을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께만 구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비빌 언덕이 없고 오직 하나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구걸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심령이 부자인 자와 가난한 자를 잘 알려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8:9~14절
바리새인은 심령이 부자입니다.
자기가 의롭다는 것을 자랑합니다.
구별, 율법과 전통을 지키며, 자기 의에 대한 자랑 합니다.
세리는 죄인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얼굴을 들지 못하고, 애통하고, 구하고 있습니다.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나님께 구걸하고 있습니다.
고통 속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만 요청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이다고 고백한 세리가 의롭다고 칭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안된다고 하는 존재가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리와 같은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은 심령이 부한 자입니다.
사람은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되면 심령이 가난해질까요?
실패가 심령을 가난하도록 사용하는 도구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드로는 밤새 고기를 잡지 못했을 때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누가복음 5:5절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실패로 인해 말씀만 의지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기 위해서는 비움의 과정을 거치게 합니다.
어부로 잔뼈가 굳었는데 목수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데 이르게 됩니다.
자신 있는 전문분야인데 그 자신감을 내려놓습니다.
이것이 참 어렵습니다.
내가 누구인데가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바리새인이 됩니다.
심령이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해 지는 비움의 과정을 통해서, 실패의 과정을 통해서 8복으로 채워지기 시작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 대한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심령이 가나한 자가 어떤 상태인지를 가르쳐줬습니다.
이사야 61:1절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모든 빼앗겨 마음이 상한 자, 나라가 멸망하여 포로 된 자, 갇힌 자를 자유가 심령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들에게 구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회복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6: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내 말을 듣고 떠는 자가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마음이 가난, 물리적으로 고향을 떠났고, 노동의 착취를 당함, 예배를 할 수 없는 상태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내 안에 스스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자원이 아무것도 없구나
우리를 구원할 자가 있어야 할텐데, 능력을 바라게 됨, 메시아를 바라게 됩니다.
어떤 자원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밖에 구원자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자가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구약을 배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백성인데 포로로 끌려간 상태입니다.
가난하게 된 그들이 하나님만 구하게 된 상태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의미가 잘 설명한 말씀이 시편 40:17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비로 하나님의 도움만을 바라는 자입니다.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도와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신뢰하는 사람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조금 배워가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존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자기 것은 하나도 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참으로 무지한 자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이 가르치고 자 하는 핵심은 너희들이 추구하는 복은 피상적이라는 것입니다.
피상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한 영혼이 피폐해지며, 행복은 피상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길은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령의 가난은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이 심령이 가난으로부터 나옵니다.
토대, 기초가 되는 복입니다.
본질적이고 소중한 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자가 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한 조건이 작동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복이 천국이 저희 것입니다.
구원의 백성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심령을 다스리는 자가 되었다.
이 복의 시작은 심령이 가난으로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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