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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완성)

복되다(2)

by ysong 2020. 10. 25.

1-누구에게 하신 말씀인가요?

두 부류가 등장합니다.

무리와 제자입니다.

중세까지는 12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영적 엘리트에게 하신 말씀으로 봤습니다.

왜냐하면 산상수훈의 말씀이 보통 사람은 지킬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도 돌려대라는 등등의 말씀을 보통 사람들은 지킬 수 없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고상한 경지에 이른 제자들만 지킬 수 있는 말씀이라고 하면서 제자에게 주신 말씀으로 해석했습니다.

 

산상수훈은 무리와 제자들이 섞여 있는 가운데 하신 말씀으로 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한적한 곳에서 따로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의도적으로 무리와 제자가 섞인 가운데 하신 것으로 봅니다.

 

이 무리들은 4:23~25절의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무리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제자가 될 잠재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산상수훈은 변화를 갈구하는 사람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은 무리와 제지들의 반응입니다.

7;28절에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놀란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들같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닮기를 원하는 평범한 성도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산에 올라가'란 표현도 의도를 가지고 기록했습니다.

누가복음은 6:17절에서는 평지에서 서서 전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인 산상수훈의 말씀을 전한 팔복교회를 보더라도 언덕정도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산에 올라가라고 표현한 것은 구약의 배경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를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모세를 염두해서 표현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받아서 가르쳤습니다.

모세는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실제이시며 말씀이신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실체인 예수님이 율법의 참 의미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마태는 산에 올라가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잘못 가르치고 해석한 것을 하나님이 주신 본래적인 의도를 가르치신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십계명 강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서서라고 했는데 마태는 앉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 랍비들은 앉아서 가르쳤습니다.

국가의 중요한 일을 공포할 때도 앉아서 했습니다.

앉아서는 권위를 드러내는 표현이며 공식적인 사역을 하는 선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교황이 중요한 것을 발표할 때는 앉아서 합니다.

 

3절을 원어에 가까운 표현은 이렇습니다.

복되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저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를 소유한 사람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소유자들이다.

 

복되다(마카로이)고 하는 이 복의 의미를 무엇일까요?

당시 사람들의 복의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는 헬레니즘이 사람들의 가치관을 지배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마카리오스)은 신들에 의해 얻어지는 것으로 부와 근심과 염려가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부자는 풍요의 신이 준 것이고, 예술은 예술의 신이 준 것이고, 지혜는 지혜의 신이 준 복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주는 풍요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에 근거로 복의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시편 1편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율법에 근거를 두었습니다.

신이 주시는 내적 평안함을 계승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은 의로움, 죄사함, 경건함을 통해 주어진 복을 누리기 위해 말씀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국에게 수탈되면서 복에 대한 개념이 변형되었습니다.

인간이 불행을 극복해서 신의 본성에 손길이 닺는 내적 상태라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복을 받는 조건으로 여겼습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고 있는 8복은 당시 생각하는 가치관과 거리가 머닙니다.

9번 등장하는 복(마카리오스)은 행복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자만이 얻는 기쁨을 말합니다.

1) 하나님의 동행을 추구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시편 23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 특정한 성품과 태도를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물질, 건강의 복이 아닙니다.

그것을 가지고 어떤 성품을 갖고, 태도를 갖고 사느냐를 말합니다.

힘과 권력을 갖고 있는데 연약한 자를 보호하고 의를 위해 사용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 안에 이 복이 충만하게 드러났습니다.

8복은 예수님의 성품, 인격, 얼굴입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닮아간다고 할 때, 8복의 성품을 지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처럼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비밀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도의 행복은 세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고 세상의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고통 중에서도 오히려 충만 즐거움이며, 슬픔과 비애가 지우지 못하는 즐거움이며, 눈물 가운데서 다가오는 즐거움이여 죽음조차도 빼앗을 수 없는 희열입니다.

이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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