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계시록 1:4~8절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11:15절로 세상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는 위대한 선포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영원토록 통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현재의 고난에 좌절하지 말고, 배교하지 말고 충성된 자로 살아가길 바란다는 소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언서이기도 하지만 서신서이기도 합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성령에 감동되어 속히 일어날 일들을 어느 주일날 봤습니다.
하나님이 불러준 대로 받아쓴 것이 아니라 보여준 환상과 말씀을 구약적 배경과 제자로 살았던 경험과 실력을 바탕으로 깨닫고, 이해한 것을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정리하여 편지로 썼습니다.
4절-계시록의 수신자는 아시아에 있는 7개 교회입니다.
여기서 아시아는 터키의 서부지역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데살로니가교회 빌립보교회 안디옥교회도 빠져 있습니다.
당시 아시아에는 10개 이상의 교회들이 있었는데, 7교회라고 표현했을까요?
7은 ‘완전, 온존, 완성’을 의미를 상징합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를 가리키고, 더 나아가 오고 오는 주님의 교회를 포합니다.
은혜와 평강은 어디서 오는가?
4~5절- 성부, 성령, 성자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문장의 동사시제의 순서를 보셔야 합니다.
보통은 과거, 현재, 미래를 써야하는 것이 맞습니다. 현재를 먼저 썼습니다. 요한의 의도적인 표현입니다.
“너희들의 현실이 하나님이 안계신 것 같은 고난의 한복판이지만 하나님이 지금 함께 계시니 힘을 내라”는 것입니다.
요한의 창조적인 표현입니다.
사도 요한을 통해 우리들에게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어두운 현실의 문제 앞에 있으면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속에 계신 하나님, 교회에만 계신 것으로 느껴집니다.
이제도 계신 하나님, 나와 함께 현재 계시는 하나님을 만져지지 않습니다.
우리만 그럴까요? 요한복음 11장 나사로를 살린 사건에서도 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주님이 늦게 찾아왔습니다. 마르다가 아쉬워서 “주님이 여기 계시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인데”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대한 마르다는 반응은 마지막 때에 다시 살아날 줄은 나도 압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오빠가 살아난다는 것을 현실이 아닌 미래적인 사건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현재, 이제 나사로 산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살려주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 하시는 영원하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은 과거나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지금 이 현실 속에서도 살아서 이 역사를 자신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 완성하시고 계시다. 요한은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이제는”는 앞으로 끌어왔던 것입니다.
8절에서 그 성부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되시며, 처음과 마지막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두거나 포기하지 않고 완성하십니다.
너희들만 포기하지 않고, 너희들만 조금만 참으면 알파와 오메가 되신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역사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처음과 마지막을 주관 하셔서 이루실 것입니다.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은 성령에 대한 표현입니다.
일곱 개의 영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온전하신 성령님에 대한 표현입니다.
이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사야와 스가랴서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이사야 11:2절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성령을 7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3:1, 4:5, 5:6절에서도 일곱 영, 일곱 별, 일곱 눈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완전하신 분이며, 성령님의 사역도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은 ‘보좌 앞’은 성령은 단독으로 일하시지 않고 성부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라는 뜻입니다.
성자 예수님에 대해 3가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충성된 증인입니다. 3:14절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증언한 내용이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8:37절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진리되신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증인의 내용은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셨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증인의 정체성은 왕중의 왕이며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시는 분입니다.
너희에게도 동일하게 죽음을 이기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은혜와 평강은 편지에 쓰인 상투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 상투적인 표현 속에 감추어진 보물입니다.
이 표현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위로의 말보다 백배 천배의 깊이가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은 성부, 성자, 성령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편지를 보면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을 것이라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진짜 평강은 땅에서부터 오지 않습니다.
삭개오는 돈이 평강을 줄 줄 알았습니다.
평생 돈을 모았지만 그에게는 평강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성자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에게 찾아온 평강이 있었습니다.
복음이 채워지면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 내려놓아집니다.
오늘날의 삭개오가 교회들마다 많이 있습니다.
복음으로 채워지면 자신이 집착햇던 것을 놓아집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인생의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선물입니다.
은혜와 평강은 삼위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가장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던 초대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듯이,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능력의 말씀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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