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7:1~7절
예배를 굳이 둘로 나눈다면 주일에 공동체가 모여 함께 예배드리는 예배와 각자 삶의 영역에서 드리는 예배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볼 때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예배와 생활 가운데 혼자 드리는 예배가 이율배반적이면 안된다고 봅니다. 두 예배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하나로 통합되어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온전한 영적성장을 이룬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삶을 드리는 예배는 어떻게 드리는 것인가?
삶을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삶의 드리는 예배를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들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절은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 대상이 등장합니다.
다름 아니라 여호와께 예배하러 들어오는 유다백성을 향해 전하라고 하십니다.
3절은 너희들의 길과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4절은 공동체가 드리는 예배만 있으면 된다는 성전숭배 사상입니다.
전통, 선민사상, 율법을 중심으로 해서 성전에 예배를 드립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예배만 하면 승리를 보장해 줄 것이고 생각했습니다.
온갖 범죄를 저지르면서 성전에 있다는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함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5절~6절은 삶을 드리는 예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삶을 드리는 예배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는 것,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는 것, 힘없는 사람들을 압제하지 않는 것,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릴지 않는 것, 다른 신을 따르지 않는 것들입니다.
7절은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와 삶을 드리는 예배가 하나로 통합될 때 영원히 살게 된다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나라가 멸망하기까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 성전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드리는 예배와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가 일치되지 못함으로 인해 그들은 그토록 자랑했던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삶을 드리는 예배에 성공한 이들이 있고, 실패한 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가인과 아벨입니다.
가인도 제사를 드렸고, 아벨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렸고, 아벨은 양을 드렸기 때문일까요?
창세기 4:2~6절에는 아벨은 첫 새끼를 드렸고, 가인은 제물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첫 새끼의 의미는 대표를 뜻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대표해서 드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습니다.(4절)
아벨의 삶과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아벨은 짐승을 목축하는데 하나님을 우선하는 하는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제물의 의미는 수 많은 것들 중 하나를 제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구별됨임 없었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는 것에 분을 내었습니다.
선악을 판단하는 주권을 스스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삶이 아니라 감정에 치우친 예배는 실패하게 됩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 제사와 삶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두 예배가 분리되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얼마나 실어했는지 몇 군데 말씀을 찾아볼까요?
이사야 1:11~12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아모스 4:4~5절(1278쪽)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5.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미가서 6:6~8절(1295쪽)
이스라엘백성은 실패한 가인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기쁨에 맞춰진 제사는 삶을 드리는 예배에 실패한 단면입니다.
삶을 드리는 예배자로 산 대표적인 인물은 에녹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세기 5:21~24절입니다.
에녹는 55세 무두셀라는 낳았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습니다.
특별한 계시를 통해 이름을 지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름의 뜻이 죽음의 온다입니다.
므두셀라의 죽음과 함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에 대한 히브리서 저자의 평가는 에녹은 삶을 드리는 예배자였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5~6절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에녹은 믿음으로 삶을 드리는 예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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