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5:1~8절
가을 날씨가 참 좋습니다.
소풍이라도 가고 싶을 정도입니다.
저는 가능한 외출을 자제하면서 교회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묵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행사로 교회를 유지했다면 이제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화려한 교회건물이나 음향시스템으로 안락한 환경을 우선시 했다면 이젠 골방기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야곱은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삼촌까지 속이는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우선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라헬의 미모에 반해 7년의 세월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야곱의 모습 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말씀으로 우리의 현실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상황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
하나님이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상황을 봐야 합니다.
34장의 사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세겜성에 정착했는데, 사랑하는 딸 디나가 성에 놀러 갔다가 성주의 아들인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합니다. 세겜은 성주이며 아버지인 하몰에게 디나를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세겜과 결혼을 가짜로 승낙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하몰에게 요구를 합니다. 성에 거주하는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요구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요구를 받아 들여 성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행하게 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성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성주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입니다. 피의 복수가 있었던 겁니다.
만약 이 소식을 가나안 땅의 족속들이 소식을 듣고 연합군을 일으켜 죽이려고 오면 야곱은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엄습해 오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2. 기억하게 하신 하나님
야곱에게 있어서 벧엘은 어떤 장소이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창세기 28:10~22절에 등장한 장소입니다.
에서 형을 피하여 삼촌 라반의 집을 향하던 어느날 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황량한 광야, 별들만 반짝이는 밤 하늘에 꿈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이 이름을 지었던 장소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벧엘은 하나님을 만난 장소입니다.
야곱이 단독으로 하나님을 만난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그 곳에서 함께 하실 것과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28:14~15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의 약속 받은 곳입니다.
우리들에게 벧엘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처음 만났던 장소, 사건입니다.
모태신앙은 이런 부분에 있어서 조금 밋밋합니다.
저도 있고, 사모도 있고, 여러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무감각해졌습니다.
야곱처럼 삼촌의 집에서 장가도 가고, 살려고 하다가 무감각해졌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 세상을 닮은 생각들과 태도로 익숙해졌습니다.
3. 결단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야곱이 다시 벧엘로 올라가면서 세 가지 행동을 취합니다.
1) 재단을 쌓아 예배를 드립니다.
결단의 예배, 순종의 예배, 회복의 예배입니다.
2) 이방 신상들을 버렸습니다.
아마도 라헬이 아버지의 집에서 가지고 온 드라빔도 여기서 버렸을 겁니다.
라헬이 훔친 드라빔은 의미가 있습니다.
드라빔은 집안의 상속자에게 대대로 전해진 신상입니다.
드라빔을 가진 아들이 상속권을 갖게 됩니다.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상속권이 보장됩니다.
라헬은 야곱이 상속받도록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4절에 귀고리들도 버렸습니다.
장식품은 신앙을 새긴 것들이었습니다.
마치 몸에 지니고 다니면 좋다고 여기는 부적과 같은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3) 정결케 하여 의복을 바꾸어 입었습니다.
익숙한 것을 버리는 정결입니다.
죄에 묻든 것을 씻는 정결입니다.
의복을 바꾸어 입듯이 새로운 마음과 태도로 출발을 결심합니다.
가나안의 연합군도 쫓아오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일행이 안전하도록 하나님이 막으신 것입니다.
드디어 야곱은 벧엘에 이르게 됩니다.
삼촌의 집에서, 세겜에서 보낸 30여년 만에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로 올라왔습니다.
야곱은 과거의 어린이와 같은 신앙이 아닌 시련과 연단을 통해 성숙한 모습으로 벧엘로 올라왔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적용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을 만났던 다소 어린아이와 같았던 우리들을 만나주신 은혜의 자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내가 이렇게 은혜 받은 사람이었다고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다시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의 감격을 잃고 살았던 자신을 돌아볼 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면서 이 날에 창조주와 구원주를 기억하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요즘 우리사회는 자신의 소견대로 행했던 사사시대를 닮아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사시대에도 사무엘을 준비하여 미래를 시작하셨습니다.
사사시대에도 이방 여인 룻을 준비하여 다윗을 준비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저는 우리들과 같은 작은 교회가 한나처럼, 연약해 보이지만 신실한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룻처럼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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