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둠 속에 빛이 되는 교회
  •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교회
오늘의 주일설교

순종의 불편한 과정

by ysong 2020. 9. 17.

:5:8~9

순종을 경험해야 합니다.

성경은 순종에 관한 사건과 교훈이 많습니다.

순종으로 하나님의 치료하심, 해결하심, 위로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순종의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불편한 과정이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 과정은 불편했습니다.

3일 길을 걸어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이기고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순종의 결과는 아주 긴박한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그 전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귀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해 하나 더 은혜의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제사에 드릴 양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준비하신 여호와 이레를 경험하게 됩니다.

 

2) 나아만 장군이 나병에 걸렸습니다.

전쟁에서 잡혀온 이스라엘 하인이 이스라엘은 선지자가 있다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나아만 장군은 예물을 준비하고 엘리사에게 찾아갔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을 대면하지 않고 요단강에 7번 몸을 씻으라고 합니다.

화가 난 나아만 장군은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부하 장군의 조언을 받아들여 요단강에 몸을 씻습니다.

6번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순종에 따른 불편한 과정입니다.

중간에 진척이라도 있으면 계속하기가 쉬울 텐데, 순종의 과정에 전혀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7번째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니까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이스라엘의 신의 위대함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은혜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에게 예물을 드리려했습니다.

엘리사는 거절합니다.

나아만 장군의 예물을 사례로 받아도 문제가 없습니다.

선교사학교를 운영하는데 이 예물을 귀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필요한 재정입니다.

만약 엘리사가 예물을 받았다면 나아만 장군은 답례를 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스라엘의 신이 자신이 섬기는 림몬신보다 조금 능력이 있는 정도로 생각했을 겁니다.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의 거절을 보고 이스라엘 신이 진짜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동을 받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에게 이후로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합니다.

나아만 장군은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해 준비하신 하나 더 은혜이었습니다.

 

3) 요한복은 9장에는 맹인을 치유한 사건이 나옵니다.

매인을 보고 제자들은 그가 맹인된 원인에 관심을 갖습니다.

누구의 죄로 인해 맹인이 되었느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부모의 죄도 아니고 하나님을 나타내고자 합이라고 하십니다.

 

그런 후에 맹인에게는 불편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씻으라고 합니다.

맹인이 실로암 못까지 가려면 얼마나 불편합니까?

진흙을 바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 말을 듣고 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혹시 가는 중간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면 순종하기 쉬었을 겁니다.

중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맹인은 불편한 과정을 통과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니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맹인을 위해 하나 더 준비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맹인을 불러 자초지종을 듣습니다.

부모를 불러와 묻기도 합니다.

부모는 출교가 무서워 자식에게 떠넘깁니다.

맹인은 바리새인들 앞에서 용기 있게 대답을 합니다.

누가 고쳐준 것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을 보니까 당신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고 싶어서 그런거냐,,,

이렇게 용기 있게 말한 맹인은 고침을 받았지만 출교를 당했습니다.

 

출교를 당한 맹인을 찾아가신 예수님은 그에게 인자를 믿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의 물음에 맹인은 믿는다고 대답을 합니다.

맹인은 심판을 면하게 되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순종의 결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고침을 받은 10명의 나병환자 중에 9명이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순종의 결과로 충분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 더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순종의 결과는 순종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정한 최종 목적지는 우리들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까지 가야 순종의 진정한 열매를 맛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순종의 열매 이후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엘리사와 같은 절제가 필요합니다.

맹인과 같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아만 장군과 같은 결심도 필요합니다.

 

순종의 열매 이후를 바라보시길^^

'오늘의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해  (0) 2020.09.25
벧엘로 올라가자  (0) 2020.09.21
흩어진교회  (0) 2020.09.13
무리에서 제자로  (1) 2020.09.10
신앙의 거리두기(2)  (0) 2020.09.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