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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일설교

신앙의 거리두기(2)

by ysong 2020. 9. 6.

룻기 1:15~18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룻기는 징계로 시작됩니다. 1:1절입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사사들이 다스리는 시대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흉년은 하나님이 사용하는 징계의 수단입니다. 경제적인 손해, 어려움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이런 것은 제일 가벼운 징계입니다.

 

엘리멜렉은 징계를 받게됐는데, 모압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민을 가도 잘못 갔습니다. 그곳은 이방신을 섬기는 곳입니다. 모압은 영원히 저주받을 땅인데 그곳으로 갔습니다. 3절을 보니까 남편이 죽었습니다. 두 자식도 죽었습니다.

 

나오미가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향은 풍년을 맞이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고향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소망이 없어. 나는 그렇지만 너희들까지 그럴 필요가 없지, 너희들은 새 출발을 했으면 좋겠다.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해서 어떤 남자를 얻어서 아들을 낳아서 그 아들을 키워서 너희의 신랑감으로 할 때까지 어찌 기다리겠니, 게다가 나는 늙어서 남편을 만날 가망이 없어, 그러니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서 새 출발을 하면 돼라고 말입니다.

 

이에 대한 첫째 며느리 오르바와 둘째 며느리 룻의 반응이 14절입니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맞추면서 작별 인사를 드리고 떠났습니다. 오르바의 선택은 너무나 인간적인 선택입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것은 전혀 희망이 없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르바와 나오미의 관계는 보통 인간관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주고받는 조건적인 관계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정도의 인관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오르바에게는 신앙이 없었습니다. 15절을 보면 오르바는 이방신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머니와 같이 있을 때는 믿는 사람처럼 보였는지 모르지만 그는 신앙이 없습니다.

 

룻은 어떤가요? 룻은 소망이 없는 시어미니를 선택했습니다. 평생 과부로 살아가야 하는, 혹시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면 음행을 했다는 이유로 돌로 맞아 죽어야 하는 전혀 소망이 없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롯이 이렇게 선택하도록 한 힘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1:16, 17입니다.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도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까요? 갈등하지 않았을까요? 고향에 가면 친정어머니도 있고, 딸린 자식도 없으니 새로 출발할 수 있는 기회도 있는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자기마저 시어머니를 떠나면 시어머니가 너무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참 속이 깊은 여인입니다.

 

이렇게 속이 깊게 된 것이 룻의 신앙이었다는 겁니다. 룻의 밑바탕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가 언제 시집을 와서 하나님에 대하 알았을 텐데, 짧은 세월에 깊은 신앙을 갖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룻의 선택이 겉으로는 시어머니이지만 내면 깊숙이 감춰진 동기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룻을 생각하면서 코로나 시대에 신앙인들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추신 것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본질 되신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많은 것들이 본질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본질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분을 붙들고 견고하게 신앙생활을 했던 분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면서 코로나의 폭풍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시간을 정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 분들은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견고히 붙들고 새로운 믿음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광야에서 송아지 우상을 섬기고 징계를 받았습니다.

징계 후에 하나님이 너희들은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가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이 없는 가나안 땅에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없는 가나안 땅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보이는 것들에 너희 자신을 의지했던 허상적 신앙을 내려놔라.

여호와 하나님을 붙들라, 너희들은 살리라, 그리고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라고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룻이 현실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선택했던 것처럼 결단할 때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보다는 새로운 일들에 대해 영을 열어, 하나님이 이 상황 속에서 하시고 있는 일을 면면히 살펴봐야 합니다.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행하실 새로운 일을 기대했던 것과 같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했고, 에스라는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했습니다.

룻이 다니엘이, 에스라를 통해 코로나라는 고난을 통과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주님이 주님의 일을 이루실 것을 믿으며 이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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