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둠 속에 빛이 되는 교회
  •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교회
간단하게 보는 구약성경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법(레위기1)

by ysong 2020. 9. 2.

레위기 19:2

사람들의 고민 중 하나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에 물음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복지의 수준을 높여야 잘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복지, 복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수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가정을 꾸리고, 어떤 사회활동을 해야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해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미치지 못해 잘살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레위기는 이에 대해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사를 거야, 그것이 잘 사는 거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위기는 우리들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성경 중에 가장 인기가 없는 책 중에 하나일 겁니다. 재미없고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1~7장까지를 보면 짐승을 잡고, 잡고가 계속됩니다. 짐승을 잡는 이야기 때문에, 또 짐승을 잡는 것은 우리가 본 적도 없고, 왜 하는지 의미도 알지 못하니까, 어렵게 느껴져서 읽지 않습니다. 게다가 3500년 전의 제사와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지금도 이스라엘백성은 레위기를 제일 먼저 가르치고 있고, 성경의 중심에 놓고 있습니다. 또 레위기에 기록된 대로 먹고, 생활하는 유대인들은 세계에서 머리가 좋은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레위기는 사람들이 거룩하게 살게 하는 지혜가, 잘 살게 하는 방법이 들어 있습니다.

 

레위기의 핵심 단어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룩이라는 단어에 대해 오해하고 있습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가 가까이 하기 어려운 단어로 여겨집니다. 존경받을 만한 사람에게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룩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거나 기쁨을 주기 보다는 거룩하게 살지 못하는 우리들을 죄책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단어로 여겨집니다. 꼭 올무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우리들의 오해는, 거룩은 고상하고, 경직되고, 준엄하고, 초월적이고, 성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간혹 저분은 우리와 달라, 차원이 다르다고 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가 거룩입니다. 극단적으로 거룩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처럼 농담을 하거나, 사람들과 일상적인 말을 하면 안되는 것으로 여깁니다. 말도 별로 없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고상하게 공부를 하거나, 늘 말을 하면 도덕적이고, 성경말씀을 줄줄 나와야 거룩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이것은 거룩에 대한 오해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이어집니다. 초월적이고 멀리 계신 하나님. 우리와 관계없이 계신 분, 너무 위대하고 높아서 감히 처다 볼 수 없는 분, 거룩한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거룩은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처지와 현실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용서하시는 성막에 거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레위기는 거룩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있습니다. 거룩은 거창하거나 근접하기 어려운 단어가 아닙니다. 아주 상식적이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사용될 수 있는 단어임을 레위기를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는 레위기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일생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룩이라는 우리의 상식과 달리 죄인들과 음식을 먹었고, 들이든, 산이든, 우물가이든, 포도밭이든 죄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아무 곳이나 앉아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시장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길게 기도하고, 여유롭게 걸어가는 바리새인들이 거룩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온전한 분, 거룩한 분입니다. 레위기는 거룩에 대해 아주 쉽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룩은 어디서 사용되어야 할까요? 교회 안에서 사용되어야 할까요, 아님 세상 가운데 사용되어야 할까요?

 

거룩은 구별, 분리, 신분, 생각이 다르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수 믿는 신자들이 예수 믿지 않는 불신자들과 함께 살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교회 안에서 거룩하게 사십시오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다 거룩한 사람들이어서 구별되거나 신분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은 워낙 제대로 살지 못하니까 사용되는 겁니다.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너희는 거룩하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교회에서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사용할 때 사용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거룩하게 구별되게 살아갈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방인 가운데 구별된 사람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 레위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복된 삶이고, 모든 열방이 이렇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구원받은 백성에게 준 선물입니다. 그래서 거룩은 세상 가운데서 실천하는 겁니다. 교회는 당연한 겁니다. 당연한 교회에서 거룩하지 못해 다투는 것은 할 말이 없는 겁니다. 거룩은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겁니다. 이방문화로 채색된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