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13절,
그동안 1~5계명을 살펴봤습니다.
보통 1~4계명은 하나님 사랑에 관한 계명으로 불립니다.
5계명은 하나님 사랑에 속해도 무방합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리하기 때문이며, 하나님께 돌아가는 훈련에 해당 되기 때문입니다.
6~10 계명은 이웃사랑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이웃사랑은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명령으로 시작됩니다.
타인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생명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그러나 6계명은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으로 살인이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군인들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는 간단하지 않은 물음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누구든 어찌할 수 없이 살인해야 하는 경우 그것이 6계명을 어기는 것이 되는가에 질문에 간단하게 답을 할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은 전쟁터에서 살인이나 사형을, 정당방위도 6계명을 어기는 것에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우리도 살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6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살인과 죽음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살인하지 말라가 이웃사랑에 첫 번째로 꼽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래 하나님의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6계명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신명기 30:20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요 14: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롬 8: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이 깊고도 넓은 진리를 깨닫길 바랍니다.
생명이신 하나님은 우리들을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몇 군데 찾아볼까요?
너무도 잘 아시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9: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세기 9:7절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살아라는 사람을 창조한 후 첫 번째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서로 살려주라=살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살아라, 서로 살려 주면서 잘 살라고 하신 것이 하나님의 본래 의도입니다.
그래서 살안하면 안됩니다.
살인하지 말라가 이웃사랑에 첫 번째로 꼽은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작품입니다.
살인은 하나님의 작품을 망가트리는 결과가 됩니다.
이는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꼴이 됩니다.
화가가 가장 아끼는 작품을 파괴하는 것은 화가를 죽이는 행위와 같습니다.
모든 인간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존경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존경하십니까?
그러면 살리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살인하지 말라가 이웃사랑에 첫 번째로 꼽은 세 번째 이유는 무엇일까요?
차별, 멸시는 살인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21~26절에 6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21~22절에 모욕적인 사용된 언어도 살인이라고 했습니다.
화를 내고 모욕적인 언사가 살인이라는 것입니다.
분노는 심판을 받고, 욕하는 놈(멍청한 놈, 무가치한 놈)은 공회에 잡혀가고, 미련한 놈은 지옥 불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기 때문입니다.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욕하는 멸시는 무서운 행동입니다.
멸시는 분노보다 더 나쁜 악입니다.
상대방의 가치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인격적으로 멸시하게 되면 표정과 말로 나타납니다.
멸시의 가장 두드러진 형태는 욕설입니다.
그 마음의 분노가 욕이라는 행동으로 발전하고 살인하게 되어 지옥 불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분노와 인격적인 모독이 살인보다 가벼운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1절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입에 입는 상처보다 말로 입는 마음의 상처가 더 오래 가는 법입니다.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은 살인의 원천입니다.
제가 가깝게 지인들의 자녀 문제로 함께 기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되었지만 당시에는 심각한 기도의 제목이었습니다.
위 사람의 말 때문에 너무 힘들어했던 이야기입니다.
지인의 자녀는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카이스트 석사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어렵게 입학했습니다.
다들 축하하고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카이스트는 학생들이 각각 지도교수님을 밑에서 연구를 하면서 공부합니다.
이 청년의 지도교수는 최고의 대학을 나와서 교수가 되신 분입니다.
그러나 이 교수는 학생들의 부족한 면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향해 심한 비방과 모욕을 주었습니다.
이 청년은 견디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후에 우연히 힘들었을 때 쓴 일기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살의 충동을 느낄 정도로 모욕감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잘 견디어 준 자녀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결국 학교를 자퇴했고, 현재는 아주 좋은 곳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에 있습니다.
비방과 모욕이 살인에 이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가까운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지인의 자녀 이야기입니다.
이 자녀는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해서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직장생활이 쉽지 않았습니다.
직장 상사의 모욕을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핀잔과 비방의 말로 인격을 모독했기 때문입니다.
퇴사하고 다른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욕, 저주, 인간 대우해 주지 않는 것이 살인이라고 합니다.
6계명은 존재를 무시하지 말라고 교훈한 것입니다.
상대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은 곧 그의 영혼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6ㅖ명은 생명 보호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타인이 풍성한 삶을 살도록 돕고 노력해야 합니다.
6계명이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3:15절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형제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가 이웃사랑에 첫 번째로 꼽은 네 번째 이유는 무엇일까요?
죽음의 의미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과 관계 속에 결정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결과는 영혼의 죽음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육신은 살았지만 이미 죽은 것입니다.
육체가 살아 있다고 해도 영혼이 죽었으면 그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반대로 육체의 생명을 잃는 해도 영혼이 살았으면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6계명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에 대해 그 영혼을 죽이지 말라, 존재론적인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해석됩니다.
6계명은 단순히 육체적인 죽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6계명은 존재론적인 살인을 금지하는 계명입니다.
6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길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난주 오신 선교사님이 가깝게 지내고 있는 선배님의 가정이 있습니다.
그 선배의 형수는 자녀 교육열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형수는 딸을 조기유학에 보내서 미국의 좋은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자녀가 갑자기 학교에 가지 않고,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툭하면 자살을 예고하고 자신의 영혼을 어두운 방에 가두었다고 합니다.
4년 동안 형수는 딸에게 용서를 구했고, 그 사랑이 통하여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형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딸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다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사랑으로 다둠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살안하지 말라고 주신 계명은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이웃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면 멸시하지 않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 직장에서 이 계명을 지켜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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