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1~3절
신학자이며 철학자인 김용규박사가 쓴 데칼로그(열 가지 말씀)라는 책을 읽으면서 기회가 되면 십계명을 함께 나눌 생각을 했습니다.
신앙의 기초를 튼튼하게 세워 드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는 데 물어보면 잘 설명하지 못하는 내용입니다.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처럼 익숙한 것부터 나눌 생각입니다.
십계명은 율법 전체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 완성하려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을 압축하여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기회에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하나님 사랑인지?
이웃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이웃 사랑인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이웃을 더 사랑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십계명은 대부분 4, 5계명을 제외하고 8계명은 ‘하지 말라’로 되어 있습니다.
생명을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렇게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경고성 계명을 주신 의도가 무엇일까?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광야에 도착합니다.
모세는 산에 올라서 하나님이 직접 써 주신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십계명은 종되던 애굽에서 탈출하여 자유인에게 주어진 생명의 법입니다.
1계명은 순서만 아니라 중요성에서 첫 번째입니다.
1계명을 어기고 다른 계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
1계명은 계명의 기초입니다.
밑에 있는 상자를 빼면 다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1계명을 지켜야 부모를 공경하고, 거짓도 하지 않고, 이웃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1계명은 이렇게 읽으면 어떨까요?
너는 이스라엘 백성이고 나는 하나님인데, 두 인격이, 약속의 관계자 사이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1계명에는 두 인격과 하나의 비인격이 등징합니다.
첫 번째 인격인 나는 누구인가요?
십계명의 너로 표현된 인간입니다.
나는 이전에는 애굽의 노예였습니다.
소망이 없는 자였습니다.
노역에 시달리는 자였습니다.
이젠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9:5~6절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줍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베드로전서 2장 9~10절의 말씀대로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흘을 얻지 못 하였더니 이제는 긍흘을 얻은 자”입니다.
에베소서 2장 12-13절의 말씀을 따르자면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
의 사람이요,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1계명의 나로 표현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
하나님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요한일서 4:12절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디모데전서 6:16절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볼 수 없는 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기록한 순서대로 보면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창세기 1:1절)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존재입니다.(출 3:14절)
하나님은 인격적입니다.(출 3:12절)
하나님이 인격적이라는 말은 감정에 대한 표현이 아닙니다.
창조한 모든 존재물의 생성과 소명에 사귀고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반려견을 인격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교제를 나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분입니다.(신 6:4절)
1계명으로 연결해서 읽으면 흥미롭습니다.
나는 창조주이니,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나는 유일한 자이니, 다른 신을 두지 말라로 읽힙니다.
하나님은 존재 자치이고 우리는 존재물입니다.
하나님은 반석이고 우리는 반석 위에 세워진 존재물입니다.
기초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만물의 기초이며, 우리 삶의 초석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위해 만든 우상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의 연약성 때문입니다.
사람은 우선 신체적으로 연약합니다.
그래서 불안합니다. 걱정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조차 신으로 삼습니다.
노예로 있을 때, 애굽에서 위로와 위안을 얻기 위해 신을 만들었습니다.
실제로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지만 불안한 인간은 신을 끊임없이 만듭니다.
우리가 생각으로 섬기기 때문에 무수한 많은 신들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 대신 다른 신을 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겁니다.
구체적인 예를 찾아봤습니다.
다윗이 범한 죄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의 범하고, 남편 우리아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아닌 밧세바를 가지면 정욕을 채울 것 같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위치, 명예, 자리 지킴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속임수를 쓰고, 우리아를 죽이는 살인까지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다윗이 회개하는데 좀 이상하게 합니다.
다윗은 시편 51:4절에 주께만 범죄했습니다고 고백합니다.
주님께만 죄를 지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뻔뻔하게 행동해도 된다는 식으로 들립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하고만 풀면 된다는 식입니다.
다윗의 고백은 마치 밀양에서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기에 사람에게 용서할 필요가 없다는 살인자의 말과 비슷합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다윗은 주께만 범죄했다고 했을까요?
하나님은 다윗의 고백을 왜 받았을까요?
이 다윗의 고백과 1계명을 어기는 것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나는 나쁜 놈입니다“이라고 자책, 고백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거기까지만 하면 참다운 회개가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 자리에 다른 것을 앉혀 놓은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죄가 하나님을 얼마나 무시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죄가 하나님을 얼마나 업신여긴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 자리에 다른 신을 두지 않겠다는 회개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한 주가 되면, 아름다움이 되면, 간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부족을 채우시는 분이면 무엇을 가지려고 속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정체성 발견한 사람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다른 신은 없습니다.
이사야 44:6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하나님만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이 아닌데 하나님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신은 이상하게 생기지 않았습니다.
가지면 좋아 보이는 것,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것, 행복해 질 것같은 것으로 포장되어 다가옵니다.
사람들은 자식, 남편, 아내, 성공, 인정을 받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목적이 되면 그것이 다른 신이 됩니다.
그것이 나를 지배하게 됩니다.
인생의 주인인가에 대한 대답을 갖지 못하면 성경의 하나님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속기 쉽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섬기든지 다른 신을 섬기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대신 하는 어떤 것이냐?
하나님은 존재 자체이고 우리는 존재물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고, 강력하고 지혜롭고, 거룩합니다.
반면 인간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불과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구분에 대한 표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갈라지는 지점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너와 나’로 대우해 주십니다.
그 사이에 무엇이 끼어 있으면 안된다고 하십니다.
오늘도 네 앞에 내가 있니, 나를 제외시키고 무엇을 하려고 하니라고 묻습니다.
너와 나 사이에 다른 것이 끼어 있으면 안된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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