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7절
저는 한때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꽤 긴 세월 동안 기독교연합신문의 기자로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말했지만 내 안에 믿음이 없었습니다.
수없이 많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했지만 정작 내 안에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이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이 사랑을 통해서 앎을 전달합니다.
어느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믿어지게 되고, 지금 주님의 뜻을 전하는 종으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합니다.
1, 2계명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1계명은 누구에게 예배를 드려야 하느냐이고, 2계명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느냐이고, 3계명은 예배자의 자세에 관한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에 어울리는 삶을 살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어울리는 합당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하는 계명입니다.
3계명을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그에 합당하게 불러라”
또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불러라 그리하면 네가 자유롭게 되리라”
자신들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면 자유롭게 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절)고 하신 말씀처럼 진리 되신 예수님을 알면 자유케 되듯 하나님의 이름을 바르게 알면 알수록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생사화복을 다 맡길 수 있는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3계명은 이 자유함을 우리들에게 준 계명입니다.
이름이란 무엇인가요?
이스라엘 사람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름을 귀하게 여깁니다.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서열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항렬을 쓰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함자가 어떻게 되니?
그러면 송자 장자 호자를 쓰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민큼 이름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반증입니다.
어떤 분은 그분의 성격, 능력, 성품에 반응해서 호를 지어서 높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3계명을 받는 순간 자기에게 알려준 이름을 생각했습니다.
언제인가요?
하나님이 모세를 애굽에 보내면서 알려준 그 이름입니다.
출애굽기 3장의 내용입니다.
조상의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하면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을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 하나님, 이삭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언약하시고, 언약을 지키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조상의 하나님이 보냈다고 하면 충분했을 텐데 모세가 이런 질문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세가 이렇게 질문한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모세는 그 핑계로 애굽에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생각과 달리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십니다.
한 사람 모세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14절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상당히 어려운 구절입니다.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곧 나다, 자존자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어 “에히예 아쉐르 에히예”, I am who I am, 야훼,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양의 문이다, 빛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헬라어 에고 에이미와 같은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설명하는데 술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소개할 때 술어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송영락입니다.
저는 남양주성실교회 목사입니다.
일하는 역할과 직위로 나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술어가 없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요?
이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떤 자격이나 조건에 의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충분하신 분입니다.
혼자 있으면서 언제나 만족하시는 분입니다.
14절은 하나님의 성품의 골간입니다.
모든 신들은 인간이 붙인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본인이 스스로 밝힌 이름입니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흔쾌히 사용하도록 허용했습니다.
우리와 관계에서 알려준 이름입니다.
사실 이름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성품을 표현하기 위해 지은 호와 비슷합니다.
엘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이레(미리 예비하신 하나님),
여호와 라파(치료의 하나님)
여호와 닛시(승리하신 하나님)
여호와 샬롬(평강의 하나님)
여호와 삼마(거기 계시는 하나님)
알파와 오메가, 기묘자, 피할 바위, 피난처, 선한목자, 임마누엘, 예수, 구원자 등 다양하게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각 이름은 우리와 관계 맺으시는 방식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도행전 19:23절에 아덴 사람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알지 못하는 신과는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친숙한 관계로 이름을 부드도록 주신 3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욕먹지 않도록 하라고 주신 3계명입니다.
내 이름을 사용해도 좋아, 그런데 나의 이름에 걸맞게 사용하도록 주신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름을 오용하여 사기를 치면 안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저주하는 경우입니다.
레위기 24:10~16절입니다.
어머니는 이스라엘 사람이고 아버지는 애굽사람인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애굽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저주했습니다.
무리가 모세에게 끌고 갔습니다.
모세가 판결을 내립니다.
아버지가 애굽인 사람을 진영 밖으로 끌고 가서 돌로 치라고 합니다.
레위기 24:15~16절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담당할 것이요 16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두 번째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경우입니다.
에레미야 5:2~3절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사용한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 마태복음 7:22~23절입니다.
이름을 팔아서 사기치는 사람과 같습니다.
내가 누구를 안다고 하면서 남을 속이는 사람과 같습니다.
존귀한 이름이 조롱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이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바울을 통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랬더니 유대 제사장 스게와 일곱 아들이 바울을 흉내냅니다.
사도행전 17장의 내용입니다.
악귀가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너희들은 누구냐며 그들을 상하게 하고 옷을 벗깁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할까요?
영혼을 구원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면서 새 이름을 더 알려주셨습니다.
출애굽기 20:2절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다”합니다.
모세에게 가르쳐주셨는데, 그 이름으로 부르라고 하나님께 이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출애굽의 사건이 있기 이전과 이후가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에 차이가 생겼습니다.
신명기를 보시면 “네 하나님 여호와”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 이유입니다.(신명기 1:30, 2:7절, 2:30절, 3:18절, 3:20절, 4:10절, 4:23절, 4:30절)
이제는 자기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입니다.
마태복음 6:9절입니다.
거룩히 높여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성령을 주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이적을 베푸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수단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 이름을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죄사함입니다.
사도행전 10장 43절을 보면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2장 12절에도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라고 말하면서 ‘그의 이름’을 내세움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름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가르치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르쳐주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3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십계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게 해 주세요 (0) | 2025.04.27 |
---|---|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을 지켜라 (0) | 2025.04.06 |
하루 시간 내서 나와 같이 있자 (0) | 2025.03.30 |
나는 바르게 예배드리나? (0) | 2025.03.16 |
네 앞에 내가 있니? (0) | 2025.03.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