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8:16~20
올해 표어를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자’고 하니까 목적 지향적으로 드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푯대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성경이 전하는 푯대와 내가 생각했던 푯대를 비교하며 수정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끝에 가서 후회하지 않는 목표가, 푯대가 진짜 푯대입니다.
스피드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합니다.
푯대를 놓치면 방황합니다.
변치 않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방향을 잡으면 세상 사람들이 가는 목표에 관심을 덜 두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너무나 잘 아시는 말씀입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전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말씀은 반복되지만, 자신의 신앙이 깊어짐에 따라 다르게 들립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푯대에 관한 말씀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3가지의 위대한 명령을 실천하면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을 관통하는 3가지 위대한 명령을 실천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3가지 위대한 명령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달려갈 푯대이기도 합니다.
푯대에 관한 원론에 가까운 말씀입니다.
그 원론에 따라 각론이 여러 갈래로 전개됩니다.
문화적 사명, 지상명령, 위대한 계명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문화적 사명입니다.
이 사명은 이미 이루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명을 감당하는 분들도 있고, 감당해야 할 분들도 있습니다.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육하고 번성하라=이것이 복이다.
하나님은 께속해서 이 사명을 주시며 약속했습니다.
노아홍수 이후 약속-생육하고 번성하는 것
창세기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세기 9: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할 것을 명령하고, 더 이상 지상에서 물로 심판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그 증표로 무지개를 보여주셨습니다.
도장을 찍은 겁니다.
야곱에게 주신 동일하게 명령했습니다.
창세기 35: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그리고 이 약속을 일부 지키셨습니다.
출애굽기 1: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문화적 사명입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또 하나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사랑으로 돌보는 것입니다.
자연과 동식물을 사랑으로 돌보는 일을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문화적 명령입니다.
아쉽게도 이 명령을 유대교인과 무슬림들이 잘 지키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이 문화적 사명을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왜 사명을 등한시 할까요?
경제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명이며 푯대가 되는 겁니다.
두 번째 명령은 지상명령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설문조사에 알려진 사실은 비기독교인들이 싫어하는 것은 억지로 전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말로 전하는 전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입니다.
세례를 주고, 가르쳐서, 지키도록 해서 제자를 삼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세례를 주는데 이르게 할까요.
말로 전도하지 마세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세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느냐고 물으면 내가 예수쟁이라고 말하세요.
이것이 전도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오래 걸리고 쉽지 않습니다.
교회에 데려오는 것이 전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형식적인 세례가 아니라 내적인 확신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세례는 주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가르쳐서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궁극적인 목적은 지키게 하는 것이다.
군인을 훈련시키는 것은 전투하고 힘과 기를 길러주려는 것입니다,
선수를 가르치는 것은 경기를 치러내는 기술과 힘을 길러주려는 것입니다.
실전에 쓰기 위해 가르치는 겁니다.
생활에 쓰기 위해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부터 대단한 사람들입니까?
평균을 밑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직업만 보아도 어부 세리 등 적어도 엘리트 계층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3년 동안 데리고 다니시면서 가르쳤더니 당시 유대의 엘리트들은 물론이요 로마의 권력까지도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위대한 3대 랍비 중의 한 분입니다.
에스라가 존경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에스라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 에스라는 성경을 연구했다. 그 말씀대로 지켰다. 그리고 가르쳤다.
- 그는 가르치기 위해 편안한 생활, 명예, 직위에 연연하지 않았다.
- 페르시아의 높은 직위에 만족하지 않고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 반대와 방해를 무릅쓰고 말씀을 가르쳤다.
- 그는 지상명령을 실천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어떻게 실천했느냐가를 보여주고 있는 성경책이 사도행전입니다.
베드로, 빌립, 스데반, 바나바, 바울, 누가 마가 등등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했습니다.
가나안 교인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서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목사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발적인 가난을, 자발적인 겸손을, 자발적인 섬김을 해야합니다.
3. 위대한 계명입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입니다.
이것을 바꿔서 실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한복음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1서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계명은 10계명입니다.
압축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용서입니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이해해야 합니다.
오해하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많이 오해하면서 삽니다.
모든 오해는 자기식대로 상대방을 판단하는데 따라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판단한다는 것은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오해=판단=교만은 한식구입니다.
저는 나와 다른 경우를 만나게 되면 하나님이 다른 길을 준비하셨냐로 해석합니다.
사랑의 모양은 여러 가지입니다.
고전 13:4~7 “사랑은 오래 참고/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5.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cbs 최근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에 대한 신뢰가 14%라고 합니다.
각 종교에 대한 호감도 불교와 천주교는 50%에 달라하지만 기독교는 20%로 미치지 않는다는 설문입니다.
사람에게 신뢰를 주는 것은 말이 아닙니다.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3대 사명을 꾸준히 실천하면서 겸손하게 봉사하면 된다고 봅니다.
하박국선지자가 나도 의인인가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남야주성실교회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라도 잘 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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