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1-6
사데교회는 살았다고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교회입니다.
살았다는 표현에서 사데교회의 과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과거의 행위로 인해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주목할 만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신앙의 결실을 경험했습니다.
많은 부를 지닌 교인들과, 유명 인사들과, 화려한 외형적 교회 건물을 세웠습니다.
그 열매로 교회는 평온하여 어려움이 없는 상태입니다.
2) 본인들은 살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좋은 환경입니다.
왜냐하면 사데 교회는 황제 숭배의 강요로 인한 박해가 없었습니다.
니골라당이나, 이세벨주의의 간계나, 또한 유대주의의 악한 간계도 없었습니다.
정말 평안한 것같이 보이기 때문에 스스로 살아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3) 그러나 주님은 사데교회는 죽었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잠든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자극이 와도 반응하지 않고, 무감각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의지나 의욕이 발현되지 않는 무기력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부흥의 열정이 식어버려 무기력함에 빠진 교회들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행위가 있기는 한데 온전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행위가 완성에 이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무기력에 빠질까요?
여러 경우가 있지만 이런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뜻대로 안될 때, 무기력에 빠질 수 있습니다.
길이 막히고, 이래도 저래도 안될 때 무기력해지는 같습니다.
저도 교회를 개척하면서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저도 무엇을 해도 결과가 없어 보이고, 늘 반복되는 것과 같고, 변화는 없는 같아서 무기력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반대로 뜻대로 되어서 더 이상 부족함이 없을 경우입니다.
새로운 도전이나 열정이 없는 상태입니다.
일명 부자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무기력에 빠진 사데교회를 행해 주님은 두 가지를 요구하고 게십니다.
1) 당장 일어나 눈을 떠라, 정신을 차리고 죽게 된 것을 굳게 잡으라고 합니다.
‘정신을 차려 파수를 보라’는 군사적인 명령입니다.
‘깨어 파수를 보라’는 이 단어는 사데 시민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뼈아픈 말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나라의 성을 지키던 리디아 병사가 성루에서 졸다가 투구를 떨어뜨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떨어뜨린 투구를 다시 주어가기 위해서 성 밖으로 나있던 비밀 통로를 왕래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고레스 군인에게 발각되어 마침내 그 성이 함락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주전 549년 크리서스 왕의 시대였습니다.
그로부터 200년 뒤인 주전 218년, 안티오커스 전쟁 때에도 꼭 같은 파수꾼의 실수로 사데 성이 무너진 일이 있었습니다. 파수꾼의 방심이 성을 빼앗겨버린 결과였습니다. 사데 교회에는 영적 각성이 필요하다는 주님의 권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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