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1~17절
5장~8장은 구원받은 성도에게 나타나는 표징이며, 살아가는 원리입니다.
이 사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화평을 누리자, 죄를 짓지 않을 자유를 누리다,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거룩의 열매를 맺으며 살자로 요약했습니다.
쉽게 생활에서 기억하고 적용하고 싶어서입니다.
아는 것으로 그치면 그것은 지식에 불과합니다.
지식의 내용이 자신에게 적용될 때 자기의 신앙이 됩니다.
그런데 잘 안되죠.
바울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이 사실을 로마서 7:22~24절에서 표현했습니다.
내가 지식을 전달하지만 나도 갈등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두 법이 있는데,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이길 때도 있지만 질 때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면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주는 성령의 내주하심이 성도의 안전을 보장해 줍니다.
우리도 말씀에 따라 살려고 하지만 쉽게 넘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은 우리도 바울처럼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자입니다.
8장이 성령의 사역을 소개하고 있기에 로마서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삶의 현실에서 성령님과 동행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혹시 성령을 무형의 능력으로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 교인들은 없는데, 간혹 어떤 교회에서는 성령을 힘, 능력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령인 하나님이며 인격이십니다.
먼저 성령은 우리를 새로운 법에 따라 살도록 합니다.
1~2절입니다.
우리는 23절의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마음의 법과 죄의 법이 갈등하는 자신을 보면서 24절에(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도다) 탄식하면서 살아갑니다.
사탄은 법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는 나를 늘 고발합니다.
사람이 만든 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데, 하나님이 만든 법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죄인으로 정죄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도 넘어지고 실수할 때마다 사탄은 나를 죄인으로 정죄하려고 합니다.
갑자기 형편없는 사람으로 여기도록 하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게 하고, 희망과 소망을 끊어버리게 합니다.
우리가 죄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을 느껴지도록 합니다.
이런 처지에 잠시 머물러 있는 우리를 향해 성령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너를 죄인으로 취급할 수 없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보내셔서 그 문제를 해결하셨다.
예수는 육신 안에서 활동하는 죄를 심판하셨다.
이젠 너는 너를 정죄하려는 사탄을 향해 이렇게 말하라.
나는 부족하고 넘어진다.
나의 힘으로는 사탄의 정죄를, 지적을, 영향력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 안에 있기에 안전하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살도록 하십니다.
이런 선포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9~10절입니다.
두 번째는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영원히 거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 자신도 됩니다.
성령은 개인의 마음 가운데 계십니다.
성령충만이라는 것은 5:5가 아니라 0:10입니다.
100%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무엇을 하실까요?
생각을 바꿔 주십니다.
5~7절입니다.
5절에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생각을, 6절에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을,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성령은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해서 인도하는 분입니다.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한 주 동안 무슨 생각으로 사셨어요?
이 땅에 발을 딛고 있어서 땅의 일들로 가득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 사람과의 관계 문제로 파생되는 여러 일들을 겪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런 것은 육신의 생각이야 필요 없어, 영의 생각만 하면 돼.
이렇게 말한다면 틀렸습니다.
육신의 일을 영의 일로 바꾸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말씀으로 해결하는 겁니다.
생각나게 한 말씀으로 해결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묻는 것입니다.
야곱처럼 묻는 겁니다.
야곱은 형의 미움을 사서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야곱은 자식 걱정과 같은 땅의 일로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보낸 수레를 보고 기운이 생겼습니다.
죽기 전에 요셉을 보겠다고 길을 떠났습니다.
온 가족을 이끌고 가난안 땅 끝 브엘세바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야곱에게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묻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애굽에 내려갈 것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야곱과 함께 애굽에 내려가겠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야곱은 땅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로 일을 처리합니다.
야곱은 성령의 법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령은 생각을 바꾸게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정치적으로 해방하여 모세가 세웠고, 다윗이 완성했던 메시아국가인 이스라엘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땅의 일로 바꾸었습니다.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임한 이후 제자들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땅의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땅의 일로 가득했을 때 두렵고, 실패자였던 그들의 생각은 복음의 능력을 가진 강한 용사가 되었습니다.
일상에서 겪는 모든 문제를 혼자 처리하지 마세요.
혼자 처리하고 잘못되어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세요.
먼저 물으셔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령이 생각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일상의 대화가 공유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성령님과 일상의 대화를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친밀하고 친숙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대화를 합니까?
시편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시편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이사야 35: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잠잠히 신뢰하며 주님을 바라봅니다.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만 삽니다. 산다는 사실입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면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이들에게 14절에 하나님의 아들, 자녀가 됩니다.
13, 14절을 종합하면 성령에 따라 육신을 죽이고, 성령에 인도함을 받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성령님이 인도하는 목표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되는 겁니다.
15~17절입니다.
아빠는 아버지를 뜻하는 아람어의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해 줍니다.
16절에 성령이 우리안에 계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줍니다.
17절 상속자라는 위치를 알려줍니다.
두려움이 없고, 사랑한다는 자신감이 있는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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